「참된 양식」김택민 신부(2012, 제주의 소리)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 6,52)
+요한 복음 6,51-58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질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말씀의 향기>
참된 양식, 참된 음료 "그리스도의 몸" "아멘" - 이상규 야고보 궁동 주임
1. 오리게네스:"우리 주님 구세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 예수께서는 참으로 진실 되시니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은 거룩하며, 그분이 하신 말씀 또한 진리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살과 피는 진정코 음식이며 음료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참된 음식과 음료가 되는 그분의 살과 피로 우리는 허기를 채우고 갈증을 해갈합니다. ..예수님을 이어,제자들인 베드로와 사도들이 스승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었고, 사도들의 제자들도 (매 미사를 통해)그러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이는 나름대로 공로와 영적인 순결함을 통해 이웃을 위한 진정한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 모든 사람은 자신 안에 음식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그분의 살에 참여하여 이웃에게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선하고 좋은 것을 마음의 보석상자에서 꺼내어 이웃에게 준다면 그것은 좋은 음식이 될 것이지만,반대로 악한 사람이 악한 것을 준다면 그것은 이웃에게 상한 음식을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의 몸!'을 이해라려면 '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지체들입니다.'(1코린 12.27)하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인 이상,우리는 제대 위에 우리 자신을 거룩한 신비(성체)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성체를 통해)'아멘'이라고 답하면서,그리스도의 몸인 동시에 우리 자신을 (성체로)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진정한 지체가 됨으로써 우리의 '아멘'이 진실한 것임을 드러냅시다."
3. 요한 크리스토무스: "우리는 천사들이 떨면서 바라보는 바로 그분을 먹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뒤섞여서 한 몸,한 육체가 됩니다."
4. 이레네우스: "땅에서 나온 빵이 하느님께 축성된 후에 더 이상 평범한 빵이 아니라 지상적인 것과 천상적인 두 요소로 이루어지는 성체가 되는 것처럼,우리의 몸도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영원한 부활에 대한 소망을 지니기 때문에 더 이상 평범한 몸이 아니다."
5. 예루살렘의 키릴루스: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의 사지(四指) 전체에 퍼지기 때문에,우리는 그리스도를 지닌 자들이 됩니다. 따라서 복된 베드로가 표현했듯이,우리는 신적인 본성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어르신 진료 일기(3)>
진료실의 어르신 눈물
할머님의 검사 결과에 큰 이상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불편하신 증상이 너무 많다.
"할머님,마음 쓰시는 일이 있습니까?"
"사는 것이 다 그렇지 뭐,큰일은 없어." 분명히 마음 쓰시는 일이 있따는 말씀이다.
"바깥 어르신은 어떠십니까?" "그 양반은 괜찬아."
"자녀분들은요?" "아들 하나,딸 둘이여."
"아드님은 어떠세요?" "...그 애가 문제여.."
"무슨 일이 있으셨군요?"
"이런 이야기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그 애가 얼마 전에 이혼을 해서..."
일단 말씀을 시작하시니 아들,며느리,손주,그 동안 살아오신 인생 역정 등 꽁꽁 매듭지어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이 눈물을 타고 줄줄 흘러내린다.
어르신들은 자식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고통스럽게 출산해서,힘들게 키우고,어렵게 학교 보내고,궁색한 살림 긁어 모아 결혼시키고, 그 후에도 끊임없는 애프터스비스..자녀를 위하는 마음은 좋지만 걱정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 흔히 걱저아는 것을 '속 썩는다'고 표현하는데 의학적으로 딱 맞는 말이다. 걱정으로 인해 안 생기는 병이 없다. 위염,위궤양,면역력 저하,고혈압,당뇨,근육통,두통,불면,우울증,암..
자식은 육체적으로 나의 분신이지만,영적으로는 나에게 잠시 맡겨진 소중한 한 영혼이다. 자녀가 품안에 있을 때야 이것저것 부모가 다 챙겨주어야 하지만,자녀가 성인이 되면 당연히 부모와 자녀는 심리적으로 각자 독립하고 주님과 삶의 의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각자 자신의 삶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과 1:1의 영적 관계를 갖는다.
자녀가 다 컸는데도 부모-자녀가 심리적으로 서로 붙어 있는 밀착 관계는 정신적으로 좋지 않다. 예전에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마마보이'가 문제였지만,요즈음에는 어찌된 일인지 자녀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자녀에 집착하는 부모님들이 오히려 눈에 띄게 많다. 자녀를 통한 대리 만족은 건당하지 못한다.
자녀가 성장한 뒤에는 자녀에게 심리적으로 독립하여 자신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자녀의 삶에 집착하지 말고,간섭하지 말고,자녀의 삶을 주님께 맡기고,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응원의 기도를 해주는 것이 건강한 자녀 사랑이다. 주님 앞에 자녀의 삶은 자녀의 것으로 의미가 있고, 나의 삶은 나의 것으로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미사 속 숨은 보화>
말씀전례:
③독서와 복음의 선택기준은 무엇인가요?
말씀전례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건을 상기하고 기념함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하신 일을 마음에 느끼고,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얻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전례에서 성경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복음에서 선택한 후,그것을 중심으로 구약에서 미리 예언된 것을 택하고,그 복음의 말씀을 어떻게 생활화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사도들의 서간에서 선택합니다. 말씀전례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3) 김정한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아빠와 아들' 다시 보기:
홍인(레오),권상문(세바스티아노)
홍인 (레오) |
1758년 한양 출생 1802년 1월 30일 경기도 포천에서 참수(44세) |
권상문 (세바스티아노) |
1769년 경기도 양근 출생 같은 날 경기도 양근에서 참수(33세) |
요즘 텔레비젼의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아빠와 아들'코너가 인기다. 아빠와 아들 사이로 등장하는 뚱뚱한 두 개그맨이 '먹는 것'만을 소재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처음 시작할 때는 소재가 바닥이 나서 금방 막을 내릴 줄 알았는데 참 다양한 이야기가 매주 펼쳐진다.
우리 한국 교회사에서도 아빠와 아들의 관계가 참 많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신앙을 아들이 물려받아 순교의 길을 함께 가는 내용들인데 몇몇 특정한 사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기록들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오늘 소개하는 분들도 그러하다.
홍인(레오)는 1801년 4월 순교한 홍교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아들이다. 아버지 홍교만이 천주교에 관심을 갖고 아들에게 알려주었으나 먼저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아들 홍인이었다. 천주교를 알려준 아버지가 오히려 신앙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자 아들은 '효성을 다하는 길은 아버지를 신앙으로 이끌어 들이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망설이는 아버지를 신앙으로 이끌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둘은 함께 체포되었으나 옥살이는 따로 하게 되었다. 옥에서도 효도를 다하고 싶은 아들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었으나 어느 곳에 있든지 둘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둘은 처형지도 달라 아버지 홍교만은 한양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고, 아들 홍인은 경기도 포천에서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권상문(세바스티아노)은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아들이다. 권일신은 초창기 조선 교회가 설립되고 확산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아들에게도 신앙을 잘 전수해주었다. 아들 권상문은 1791년 아버지가 신앙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이후 한동안 교회를 멀리하였으나 주문모 신부의 입국으로 다시 회복하여 올곧은 길을 갔다.
박해가 일어나 체포되어 심문을 받으면서 권상문은 "(아버지가)형벌을 받아 죽었으니 마음을 바꾸고 의도를 고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그러나 끝까지 뉘우치지 않고 그대로 미혹된 것은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습니다."라고 하며 아버지로부터 배운 신앙을 버릴 의향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아빠와 아들, 개그 프로그램에서처럼 먹을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기도 하지만 신앙을 함께 나눌 사이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를 더 잘 알 수 있도록 해주는 분은 나를 낳아주신 아빠이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루카11,12)는 말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내 아빠의 덕분이다.
웃음은
우리의 삶에서 쉼표이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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