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2년 주보

연중 제19주일 2012년 8월 12일(나해)

모든 2 2021. 4. 19. 23:48

「샤를 드 푸코 기도모임(예수 까리따스)중 성체 현시」

변윤철 신부(2012)

"아버지를 보았다"(요한 6,46)

 

나는 생명의 빵이다.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48-51)

 

 

+  요한 복음 6,41-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말씀의 향기>

 

우리는 진정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가? "인생은 영원을 향한 여정"  -최교성 세례자요한 서산 예천동 주임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착한 사람' 되라는 말씀을 어른들한테서 자주 들었다. 어제부턴가 그런 마른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다. 사회가 그만큼 각박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착한 사람이 살아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 말은 선하신 하느님 편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말도 되기에 씁쓸해진다. 상대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원하는 사람이 점점 적어진다는 말도 된다. 사회는 점점 치열해지고 경쟁적이며, 돈과 권력을 향해서 돌진하고 있는 느낌이다. 모두가 행복을 돈과 권력이라는 틀 안에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고  살아가는 듯하다. 마치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인 듯...

 

  교회 안에서마저 '모든 것이 다 잘되리라'는 슬로건으로 복음을 전하고 성공비결을 부추기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진다. 사회도, 교회도, 영원한 생명을 구하기보다 성공만을 추구하는 신앙이 늘어나고 있다. 예수님께서 과연 성공한 상위 1%를 위한 기쁜 소식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을까?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조건과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세속적 행복은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인간은 매일의 양식을 얻기 위해서 인생의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모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는 평균 연령이 120세가 된다고 하니 한편으론 섬뜩해지기도 한다. 노후걱정에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수록 더 정신적으로 더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는다면 비참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적인 것,보여지는 것에, 경제적인 것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비참해질 것이다. 세상의 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지는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인생은 하느님을 향한 여정이요,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매일의 양식은 그 여정을 돕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그 수단을 목표인 양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리기 십상이다. 거기에 인간의 불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만나를 먹었지만 죽었다'는 거은 지상의 것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한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빵을 먹는자는 죽지 않은다고 하셨다. 지나가는 세상을 지나치게 두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미 영원한 생명의 씨앗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늘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하늘에서 오는 빵, 성체와 기도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다.

 

 

<어르신 진료 일기(2)>

 

사랑하는 마음이 치료약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뒤에 아들과 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용히 서 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글쎄, 내가 술을 많이 마신다고 애들하고 집사람이 가자고 해서... "

  "네."

  "내가 술을 좀 좋아하기는 해도 가족들에게 피해준 것도 없고, 건강에도 문제가 없는데..."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면서, 뒤에 서 있는 아들과 부인을 힐끔거리신다.

 

  15년 전에 정년퇴직하셨는데, 술을 거의 매일 드신다. 술을 드시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고, 땀이 나고, 손이 떨린다고 한다.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이다. 주변의 가족들이 지켜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에 병원에 모시고 왔다.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은 뇌의 변화로 인해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커지는 반면, 타인을 배려하는 관계 중심의 마음이 작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본인의 술 때문에 어머님이 속을 끓이시다가 돌아가셔도 계속 술을 마시고, 부인이 떠나가도 계속 술을 마시며, 자녀가 가출을 해도 계속 술을 마신다. '나는 가족에게 패해준 것 없다.', '나는 애주가이지 술 중독이 아니다'라는 마음을 갖고 계속 술을 마시면서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한다.

 

  약물치료도 음주 충동을 없애주고, 관계 중심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이 알코올 중독의 치료 방향이다. 관계 중심의 마음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약물 치료를 받으면 치료 효과가 두 배이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회복되면 치료 효과가 무려 14배나 된다.

 

  검사 결과, 어르신은 그 동안의 과음 때문에 당뇨병도 생겼고, 간 기능 수치도 나쁘다. 술로 인한 문제는 본인의 건강도 문제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사랑이 무너지고 서로 비난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 가족은 환자, 자녀, 부인에게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어르신, 아드님과 부인께서 어르신을 염려하여 이렇게 모셔온 것은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어르신께서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금주를 결심하셔야겠습니다."

 

  몇 달 후 아드님, 부인, 어르신께서 함께 오셨는데 모두 밝은 얼굴로 행복한 모습이다.

  "김 교수, 이제는 술을 완전히 끊었어! 집사람과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라고 하시면서 법정 스님이 쓴 '일기일회(一基一會)라는 책을 감사의 선물로 주고 가신다.

 

  우스개 소리로 술을 '주님'이라고도 한다. 흥미롭게도 술 '주(酒)님'과 우리가 믿는 '주(主)님'의 영어 단어도 같다. 양주(증류주)도 spirit, 성령도 spirit이다. '술 주님'중독에는 '사랑의 주님(성령)'이 가장 큰 치료약이다.

 

-김종성 요셉. 충남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미사 속 숨은 보화>

 

말씀 전례:

②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의 5가지 의미

 

  말씀전례에서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에는 5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1)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직접적인 말씀. 2) 구원 능력을 지닌 하느님의 말씀. 3) 하느님 구원업적의 기념과 선포. 4) 믿음을 낳고 기르는 말씀. 5) 참 생명을 주는 영적 양식. 이러한 의미를 담고 말씀전례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현재까지도 영속적으로 반복되어 계시되고 있습니다. 말씀은 항상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교우들에게 구원의 신비를 열어주며, 영적인 양식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2) 김정한 신부. 내포교회사연구소장

 

얼음과 눈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이경도(가롤로), 홍익만(안토니오)

이경도
(가롤로)
1780년 한양에서 출생
1802년 1월 한양 서소문 밖에서 순교(22세)
홍익만
(안토니오)
경기도 양근에서 출생
이경도와 함께 순교(나이미상)

 

  이경도(가롤로)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장남으로서 집안을 책임질 뿐만 아라 가족들이 신앙생활을 이끌어 주는 역할도 하였다. 동생 이순이(루갈다)가 동정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원하자 온갖 비난과 곤란을 무릅쓰고 동생이 유중철(요한)과 동정부부로 살아가도록 길을 마련해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울의 명문 양반 집안의 딸 이순이와 시골 양반의 아들 유중철이 결혼을 한다는 것은 성사될 수 없는 조건이어서 친척들이 완강히 반대하였으나 이경도는 동생의 신앙생활을 위해 적극 나서서 이 일을 성사시켜 주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이경도는 체포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자 투옥되어 2월부터 이듬해 1월 말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보냈다. 그가 옥중에서 어머니에게 쓴 편지의 한 대목은 참으로 겸손하다.

 

  "나약한 저는 용기 있는 결심을 할 수가 없어서 자주 이렇게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 '특별한 은총을 입어 내게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면, 그것은 크나큰 복이리라.'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하느님께서 제 바람대로 저를 도우시니, 이것이야말로 은총 중에 가장 큰 은총이 아닙니까."

 

  이경도와 같은 날 함께 순교한 홍익만(안토니오)은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하여 살면서 신앙을 갖데 되었다. 그의 집은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이 숨이 지내던 양제궁 맞은편에 있었기 때문에 신부님을 자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자기 집에 초대도 하였으며, 명도회에 가입하여 교우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으니 박해가 일어나자 지도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심문 과정에서,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있으니, 마음을 바꾸어 신아을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죽음밖에는 따로 진술할 말이 없습니다." 하며 신앙을 분명히 고백하였다.

 

  이경도와 홍익만이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당한 날은 1월 29일이다. 이날 다른 교우 7명도 함께 처형되어 총 9명이 함께 순교하였다. 가장 추운 겨울의 한 중간에 일어난 이 분들의 순교 장면을 떠올리며 다니엘서에 나오는 "얼음과 눈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고 찬미들 하라."(다니 3,70)는 찬미가를 읊어본다. 이 구절은 뭇 사람들에게 모함을 받아 죽음으로 내몰린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 세 청년이 펄펄 끓는 화덕 속에서 한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 중의 일부이다. 이경도, 홍익만과 동료 순교자들에게 딱 맞는 찬미가를 성경의 인물들이 오래전에 대신 읊어주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