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2년 주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2012년 7월 8일(나해)

모든 2 2021. 4. 19. 22:28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신부님」유창연 신부(2012, 솔뫼성지)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 마태오 복음 10,17-22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교우들 보아라 "사랑을 잊지 말고..  김영근 야고보 논산 대교동 주임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이동하여 지내는 주일입니다. 한국 최초의 사제이기도 하고 순교로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기리는 주일입니다.

 

  성 김대건 아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태어났고, 1835년에 모방신부의 주선으로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서 1845년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중국 김가항에서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그 후 입국하여 만주에서 기다리는 메스트로 신부 일행을 입국시키려고 활약하던 중 1846년 순위도에서 체포되고, 같은 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오늘 대축일을 지내면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순교하기 전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중 일부를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의미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제 우리 조선에 성교 들어온 지 오 육십년에 여러 군난으로 교우들이 이제까지 이르고 또 오늘날 군난이 치성하여 여러 교우와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너희들까지 환난 중을 당하니, 우리 한 몸이 되어 애통지심이 없으며, 육정에 차마 이별하기 어려움이 없으랴."

 

  박해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모양만 달리 하지 역시 산재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할 해답을 옥중서간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이런 황황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잇기까지 기다리라. 여기 있는 자 이십 인은 아직 주은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너희가 그 사람들의 가족들을 부디 잊지를 말라.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하실 때를 기다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망에 찬 미래를 언급합니다.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야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말고 큰 사랑을 일워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잘있거라."

 

 

<행복한 노년의 삶(1)>

 

기쁨의 게임

 

만성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무릎과 발목이 굳어져 잘 걷지도 못하는 60대 초반의 여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프로 만져도 아픕니다. 이분이 진료를 받으러 오는 날은 다 아흔 사람들이라서 털끝같은 틈새만 있어도 본인이 먼저 왔다고 소리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의 진료시간이 되었는데도 뒷사람에게 양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먼저 오셨습니다." 하였더니 그 분이 "아니오, 먼저 들어가세요. 나는 다음에 하겠습니다."라고 양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의아해서 그 분께 차례가 되었는데도 왜 날 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하였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선생님, 저는 손가락도, 팔목도 잘 쓰지 못하고 무릎과 발목도 붙어버려서 잘 걷지도 못하고, 앉아 있기도 너무나 어렵지만, 저렇게 아파하는 사람에게 순서를 양보해주고 잠시만 더 기다려 주는일은 할 수 있지요."라고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하느님께서 주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던 젊은 날은 어쩌면 이 세상에 무엇을 주기보다 그 무엇을 주는 자리나 지위에 더 안주하여 지낸 날들이며, "나"라는 존재보다 그 자리가 "나" 인양 착각하며 보낸 세월이 아닐까요?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하느님 앞에 벌거숭이로 있었으며, 치열하게 살았던 그 젊은 날은 각종 직함과 나이가 들면서 사회에서 부여받은 각종 직함과 지위를 넘기고 나면 바로 그때 하느님 앞에 다시 벌거숭이로 서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이지요.

 

  "파레아나의 편지"라는 책을 보면 기쁜의 게임이 나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원하던 인형대신 솔잎지팡이가 왔을 때, 낙담하기보다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음에 기뻐하고,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아직도 세상을 볼 수 있음에 기뻐하는, 즉 어떠한 상황에도 하느님이 주신 기쁨이 있는데 이를 찾는 것이 기쁨의 게임입니다.

 

  더 아픈 사람을 위해 잠시 참고 진료 순서를 양보해주는 그 마음처럼 절망하지 않고 주님이 주신 기쁨을 찾고, 그 기쁨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종임 마르타. 충남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미사 속 숨은 보화>

 

본기도 :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바치는 공동체의 기도

 

  대영광송이 끝나면  사제는 양파라을 벌리며 미사에 참석한 교우들과 함께 공동체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초대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자신이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간청할 내용을 마음 속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본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제는 신자들을 잠시 침묵 중에 함께 기도하도록 초대하는데, 이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개인 기도와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기 위함이다. 이때 사제는 서서 팔을 벌리고 하느님을 향해 공동체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7) 김정환 신부. 내포교회사연구소장

 

현계흠(바오로)-새가 알을 품듯이

 

  현계흠   1763년 한양에서 출생

(바오로)   1801년 한양 서소문 밖에서 참수(38세)

 

  현계흠(바오로)은 대대로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길을 걷지 않고 약국을 운영하며 살았다. 일찍부터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이 조선에 입국하자 평신도 단체인 육회(六會)의 회원이 되어 신자들에게 교리를 천주교 지도자로 지목되어 그해 12월 10일 한양 서소문 밖에서 칼을 받아 순교하였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소개한 다른 순교자들의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으나 그의 '경탄할 만한 여정'은 순교 이후에 계속되었다. 현계흠은 세 자녀(혹은 네 자녀)를 두었는데 하나(혹은 둘)는 일찍 죽고 딸 현경련(베네딕타)과 아들 현석문(가롤로)만 살았다. 현계흠이 순교할 때 현경련은 8살,현석 문은 5살이었으니 그들은 아버지의 순교 후에도 어머니와 함께 신앙생활을 계속하다가 딸 현경련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였고, 아들 현석문은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하였다. 아들 현경련과 현석문은 학구 103위 성인으로 추대되어 공경받는 분들이다.

 

  아들 현석문은기해박해 때 순교한 분들이 행적을 적은 「기해박해」을 저술한 바 있는데 거기에는 자기 누이 현경련의 행적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한 대목은 이러하다.

 

"(현경련의) 부친과 시부는 신유 풍파에 치명하고 모친과 3남매가 살더니, 두 형은 출가하여 일찍 죽고 남매가 노모와 한 가지로 열심히 수계하니,집은 가난하고 군난(박해)이 자주 남에 경향으로 피신하여 다니니, 그 사이 고초는 어찌 필설로 다 기록하리오?"

 

  현계흠 집안의 역사를 '경탄할 만한 여정'이라고 표현한 것은 대를 이어 순교했다거나 103위 성인에 2명이 포함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얼룩도 제대로 모르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외적으로 보면 아주 불행한 역사를 겪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지켜나갔다는 것이 경탄스럽다. 이것은 마치 새가 알을 품어 새끼를 낳는 것과 같은 경이로움으로 느껴진다. 텔레비전에서 새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속에서 깨어난 새가 언제, 누구에게 저것을 배웠을까?"하고 경이로워하는데 그 감동이 이 집안의 역사에서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이나 긴 세월이 아니라 품에서 품을 통해 전달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있었으니 그것이 참 그립다.

 

 

온 대지 위에

푸르러 푸르른

하늘의 빛

거듭나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