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2년 주보

연중 제15주일(농민주일)2012년 7월 15일(나해)

모든 2 2021. 4. 19. 22:43

「추수할 것은 많은데...」김택민 신부(2012)

"그들이 일한대로 거두고 흘린 땀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보편지향 기도'농민을 위한 기도'중)

 

 

+  마르코 복음 6,7-13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 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말씀의 향기>

 

더 이상 외롭지 않게 해 주세요 "온 누리에 생명이.." -강창원 마르티노 가톨릭농민회 담당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농민을 위한 기도를 바쳐봅니다.

 

○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 아버지,

  우주에 질서와 조화를 주시고

  햇빛과 바람과 비를 주시어,

  온갖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 농업이 경시되는 상화에서도, 땀 흘려 농사짓는 농민들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함께하고 있음을 깨달아, 용기와 힘을 잃지 않고

  농사일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 날이 갈수록 생명이 죽어가고,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모든 이가 마음의 고향인 농촌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온갖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데 앞장서게 하소서.

● 그리하여 사랑과 일치와 신뢰가 싹트게 하시고,

  농촌과 도시가 하나로 이어져 온 누리에 생명이 살아나게 하소서.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아멘

 

  점점 농촌의 작아지고 있습니다. 예전의 농촌 본업에 충실한 농촌이 아닌 또 다른 기능으로 인해(도시의 많은 기능들이 생성되고, FTA협약으로 인한 농민과 농지의 감소 등등) 작아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온통 생명에 대하여 떠들어댑니다.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그런데 정작 생명의 근원인 농촌은 외면한 채 말입니다.

작아만지는 아닌 그래서 외롭다 못해 힘을 잃은 생명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일구는 농님들은 더 작아지면서 외롭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근원은 어디입니까? 생명의 근원을 무시하고 외면한 채 생명연장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이 모순입니다.

 

  생명을 통한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이어가려는 이 땅의 농민들은 나와 다른 외국인이나 외계인이 아닌 우리의 가족입니다.

  농민 여러분! 여러분이 있기에 저희는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행복한 노년의 삶(2)>

 

묵주기도 부대가 되는 꿈

 

"이렇게 살아서 뭐한대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눈이 침침하니 책도 볼 수 없고, 귀가 잘 안 들리니 음악을 듣거나 대화를 나누기도 어렵고, 힘이 부치니 예전같이 등산을 하거나 좀 먼 길도 다니기 힘들어요."라고 탄식하는 어르신들을 자주 만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아서, 뭐라도 그저 맛난 것을 먹이고 싶어 안달을 하면서 지낸 그 세월, 어느새 훌쩍 자라서 제각기 가정을 꾸린 자녀들은 벌써 그런 나의 마음을 잊은 지 오래인 지금, 몸은 노쇠해지고 무엇을 한다고 해도 별로 기쁠지도 않고, 별로 슬프지도 않은 상태가 옵니다. 이루고 싶은 멋진 꿈을 더 이상 꾸지 않는 시기가 되는 것이지요.

 

  나이가 들었을 때 가질 수 있는 가장 풍부한 자산은 바로  시간입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충만한 시간,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나의 가족들의 생활과 나의 발전을 위해 모든 시간을 썼다면 지금 이 시간을 주신 것은 하느님과 진정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요?

 

  노년은 하느님을 만나 기쁨을 느끼는 묵주기도 부대가 되는 꿈을 꾸어 볼  숭 있는 시기입니다.

 

  여러 가지 일 중에서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내어주는 삶이 행복하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내어주는 삶에서 가장 으뜸은 바로 남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 신자공동체를 튼튼하게 받쳐주는 가장 중요한 분들은 끊임없이 기도를 해 주시는 어르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도 덕분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 한분 한분이 모여서 이루는 커다란 묵주기도 부대는 사심없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하여 신부님, 수녀님, 우리 가정과 젊은이, 그리고 세상을 위하여 하느님께 묵주기도를 올립니다. 이 분들의 기도 덕분으로 젊은이들이 바로 서고 가정이 건강해지며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고 행복해 합니다.

 

  특히 새 가족 찾기를 위한 기도에 어르신들의 기도 정성이 모아지면 얼마나 큰 기쁨들이 쏟아질까요?

 

-김종임 마르타, 충남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미사 속 숨은 보화>

 

본기도 : ③집회 기도, 그날의 기도, 대변기도

 

  개회식을 끝맺는 본기도는 '집회 기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고대부터 본기도를 라티어로 '콜렉타'(collecta)라고 부른 것처럼 집회의 기도를 하나로 모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본기도는 그날의 기도로 간주되어 왔는데 기도의 내용이 대체로 전례 시기, 축일, 거행하는 미사 등의 특성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전반부에서는 그날의 미사에서 기념하는 하느님의 본질이나 구원 업적 등을 묘사하며, 후반부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은총을 청합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그 미사의 대변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8) 김정한 신부. 내포교회사연구소장

 

배 아픈 약 주세요:

손경윤(제르바시오), 김계완(시몬)

손경윤
(제르바시오)
1760년 한양 출생
1802년 1월 29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42세)
김계완
(시몬)
한양 출생
손경윤과 함께 참수(나이 미상)

 

  손경윤과 김계완은 한양에서 약방을 운영하는 분들이었다. 조선시대에 의학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신분은 낮이 않았으나 양반들로부터 무시당하며 살았다. 자신들도 몸이 아프면 그들에게 몸을 맡기면서도 전문직 종사자들을 천시하던 풍토 때문에 우습게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약방을 운영하려면 글을 잘 알고 있어야 하므로 손경윤과 김계완은 교회 안에서는 요긴한 인물이었다. 초기 조선 교회의 교리서들은 대개 중국을 통해 들어온 한문 서적들이었으므로 이를 연구하여 가르치는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경윤(제르바시오)은 약방을 운영하는 일 외에도 큰 집을 매입하여 교우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술집을 차렸다. 바깥채는 술집이었으나 안채는 교우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교리를 배우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런 까닭에 손경윤은 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포도청에 수감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형벌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꿋꿋이 신앙을 지켰고 마침내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순교하기 전 최후 진술에서 "일찍부터 천주교에 깊이 빠져 하루아침에 이를 바꾸기 어려웠고, 일상의 고질병처럼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약방을 경영하는 사람답게 자신의 병을 잘 진단하였으니, 그 병명이 '고질병'이었다. 하느님을 믿는 고질병.

 

  김계완(시몬) 역시 박해가 일어나자 포도청으로 끌려가 형벌을 받고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그가 꿋꿋이 신앙을 고백하자, 관장은 유화책으로 사흘동안 집으로 가서 보내고 오라고 내보냈다. 사흘 후 돌아오자 관장이 "이제 마음을 바꾸었느냐?"라고 묻자 김계완은 "저는 물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결국 김계완도 사형선고를 받고 1802년 1월 29일 한양 서소문

손경윤과 함께 참수되었다.

 

  어려서 우리 동네에는 약방이 있었다. 시골이어서 약방 주인이 진단도 제조도 다 하는 아주 편리한 약방, 식구 중에 누가 복통이 나면 약방으로 달려가 "배 아픈 약 주세요!"라고 어리석게 말을 해도 알아서 약을 지어주는 곳이었다. 약방을 운영하셨던 두 분의 순교자들도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헤아리는 넉넉한 약방 주인처럼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전구해 주고 계시리라.

 

 

언제나 하늘을 그리던

농부의 어깨에

비가 내리면

 

그 마음 깊은 곳

가득한 생명력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