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윤용식 신부(2012)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6)
+ 루카 복음 1,57-66.80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말씀의 향기>
아기의 이름은 요한 "그분은 커지시고 나는 작아지고.. -김성헌 사도 요한 옥계동 주임
유아 세례 때 아기의 세례명을 지으려고 할 때 흔히들 아기의 생일에 맞추려고 합니다.
장차 이 아기가 성인 성녀의 모범에 따라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편의성에 맞추려고만 합니다. 또한 적지 않은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공부는 물론이고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자신의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녀는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고귀한 선물이라고 여긴다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고귀한 선물로 주어진 자녀의 진정한 주인은 부모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깨닫는 지혜가 참으로 필요합니다. 자신의 자녀를 통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기다리고 인내하면서 사랑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오늘 복음에 세례자 요한의 부모 즈카리야와 엘리사벳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아기 요한의 이름을 친척들과 이웃들은 오랜 전통을 따라서 '즈카리아'라고 지으려 합니다.
예로부터 근동 지방이나 서양에서는 아기의 이름을 정할 때 아버지나 할아버지 혹은 조상들의 이름 중에서 그대로 이어받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는 관습, 풍습에 따라서 아이들을 자신의 가문에 편입시키려는 무의식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부모는 천사를 통해 하느님께 정해주신 이름인 '요한'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자신의 가문에 전혀 없었던 이름인 '요한'('하느님은 자비하시다'라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정합니다.
즈카리아가 작은 서판에 '요한'이라고 이름을 썼다는 것은 이제 이 아기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키우겠다는 뜻으로 하느님께 봉헌한 것입니다. 아기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아기는 장차 즈카리야의 가문을 빛낼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훗날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는 말씀처럼 자신을 낮추면서 주님의 일을 묵묵히 수행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그러한 모범적인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의 부모 즈카리야와 엘리사벳을 통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늘 찾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인과 영성(6)>
미사의 성찬 전례 안에서 노년 영성
"The Grace"(은혜)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어떤 사진사가 소박한 음식 앞에서 감사기도를 드리던 가난한 노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찍은 사진을 그의 딸이 그림으로 그려 유명해진 작품입니다. 사람만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노년은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시기가 되어야 합니다. 한편 노인에게 있어 물질적인 선물은 오랜 시간 큰 기쁨과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노인이 진정으로 갈망하며 원하는 것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기에게 응답해 주는 '존재'의 필요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미사의 말씀 전례 안에서 하느님과 자녀로서 깊은 대화를 하고, 성찬 전례 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어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성찬 전례의 예물 봉헌, 감사송, 감사기도 안에서 물적 예물과 더불어 본인들의 신앙을 봉헌해야 합니다. 특히 노인은 사제와의 교송 안에서 본인의 온 삶과 존재를 머리와 이성을 넘어 '마음을 더높이' '주님께 올리며'봉헌하고,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드림을 '마땅하고 옳은 일'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신앙의 신비 안에서 흠숭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더불어 영성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고 주님을 내 안에 모시면서, 노년을 더욱더 주님과 함께 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미리 준비시켜 주심에 감사드리면서, 비록 지력과 활동력이 감소되는 노년이지만 삶 안에서 주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가 드러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노년에 하느님의 집에서 하느님을 경외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미사의 성찬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은총의 시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노년에 사람을 놀라운 은총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영적인 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하도록 촉구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성요한은 "(인생의) 저녁에 여러분을 사랑에 따라 측정될 것"이며, "사랑하는 것만이 나의 피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노년을 맞이하는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봉헌의 삶이자 당신께서 직접 측정하시는 사랑의 삶을 위한 본을 어디에서 찾고 그 힘을 어디에서 얻어야 하겠습니까? 오늘도 주님께서는 미사의 미사의 성찬 전례로 당신의 자녀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김경호(바오로) 신부. 전의 요셉의 마을 원장-
<미사 속 숨은 보화>
대영광송:
④근본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대영광송
대영광송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노래입니다. 과거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로마 황제 시대에 신자들이 이러한 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지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신앙의 선조들이 박해 앞에서도 결연한 믿으으로 왕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영광송을 노래했듯이 지금 우리들의 입을 통해서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며, 찬미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주님이시며, 홀로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님'께 대한 참된 믿음의 찬송이 될 것이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5) 김정한 신부. 내포교회사연구소장
피 묻은 쌍백합:
유중철과 이순이 동정 부부
유충철 (요 한) |
1779년 전주 초남이 출생 1801년 11월 전주에서 순교(22세) |
이순이 (루갈다) |
1782년 서울에서 출생 1802년 1월 전주에서 순교(20세) |
1791년 결혼,1798년 부모 앞에서 동정 서약 |
유중철과 이순이 동정 부부를 일컫는 '피 묻은 쌍백합'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삼류 영화 제목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내용을 알고 나면 흠모의 마음이 생긴다.
전통적으로 백합꽃은 주님을 위해 몸과 마음을 봉헌하여 동정(童貞)을 지키며 사는 이를 상징한다. 쌍백합은 두 분의 동정자를 지칭하고, 그 앞에 '피 묻은'이란 수식어가 붙었으니 순교하신 분이란 뜻이다. 그런데 쌍백합이란 말이 참 묘하다 이는 동정 부부의 은유적 표현으로 '동정'과 '부부', 즉 부부이지만 동정을 지키며 산다는 말이니 서로 모순이 된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초창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성인전에 나오는 분들처럼 동정을 지키며 살기를 원했다. 이수니(루갈다)도 그 중 하나다. 그녀는 14살에 첫영성체를 준비할 때 나흘 동안 집안에 들어 앉아 침식을 마다하고 열심히 준비하였다. 주문고(야고보)신부님으로부터 첫영성체를 한 그녀는 한 번 모신 성체를 보존하기 위해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신 것을 그분과의 결합, 즉 결혼이나 마찬가지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한편 전주 초남이에는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아들 유중철(요한)이란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그도 동정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고 있었다. 주문모 신부님은 이를 떠올리고 같은 뜻을 가진 유중철과 이순이를 결혼시키지고 제안했다. 이 제안대로 1797년 둘을 결혼시켜, 당시 민간의 풍습을 따라 유중철이 서울 처가에서 1년을 지내고, 다음 해에 이순이와 함께 전주 초남이로 내려왔다. 이때부터 둘은 시부모 앞에서 동정 서약을 하고 순교할 때까지 4년간 동거하며 오라비와 누이처럼 지냈다. 형태는 부부이지만 사실상의 수도생활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온 집안 식구들이 잡혀 들어갈 때 유중철이 먼저 잡히고, 몇 달 후 이순이도 뒤를 따랐다. 이후 유중철이 먼저 순교했다는 소식을 이순이가 옥에서 듣고는 어머니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마침내 편지 한 장이 집에서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러한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요한(유중철)의 옷 안에서 자기 누이(즉 아니 루갈다)에게 보내는 쪽지가 발견되었는데, 그 쪽지에는 '나는 누이를 격려하고 권고하며 위로하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옛날 이순이가 영성체를 한 번 하고 예수님을 잘 모실 생각에 동정을 결심했다는 것이 너무 과도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지금은 너무 준비 없이 영성체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떠올려 본다.
이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삶의 향기는 어디서 오는지
숨을 고르고 호흡하며
이 땅의 기운을
믿고 싶습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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