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 김택민 신부(2012)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마르 4,30)
+ 마르코 복음 4,26-34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왔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 나라의 비유" -나의 삶이 작은 겨자씨가 되어..-김창선 안드레아 당진 성모병원장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과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큰 가지가 되어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나 성공에 집착하여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현대인들에게 참 하느님 나라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람들이 가치와 기준과는 다릅니다. 가끔 신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묵주기도를 얼마나 했는데, 미사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았는데,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실망입니다. 믿음이 약한가 봅니다." 하며 하소연합니다. 인간적인 노력에만 매달리는 부족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에서 씨앗은 사람이 뿌리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하느님 몫임을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내가 하느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는 우리 가가자가 한 알의 겨자씨가 되어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사명을 생각하게 합니다. 신앙인인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 줍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큰 나무가 되어 그늘을 만듭니다. 아주 작고 무은하고 보잘것없지만 큰 나무가 되어 세상을 덮을 수 있습니다.
저는 병원에 근무하는 관계로 임종하시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그분들의 임종을 보면서 '내가 이런 처지에 놓이다면 과연 당당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묵상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할머님이 하느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죽음에 참 대범하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모든 것을 그 분은 자신의 죽음에 참 대범하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편안히 임종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을 통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 분의 죽음을 통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결코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 인간적인 잣대로 보지 말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그분은 내가 잘 자라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인간적인 조급함이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내가 하는 일이 아주 작을 수 있지만 큰 나무가 되어 모두가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의 삶이 작은 겨자씨가 되어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보여줘야겠습니다.
<노인과 영성(5)>
미사의 말씀 전례 안에서 노년 영성
사람은 시간 안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시간은 무자비하게도 멈추지 않고 빨리 지나가기에, 옛 로마 시인은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이 날아가 버린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시간의 흐름 속에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노년을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조명해 보면서, 신앙 지침 안에서의 성찰과 더불어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었던 신앙의 성장을 회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노년에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수많은 은총을 상기하고 기념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면서, 노년의 하루하루를 올바른 지침 안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 미사의 말씀 전례 시간을 경건하게 가져야 합니다. 미사 안에서 말씀 전례는 하느님의 자녀가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아들여 회개의 삶을 살아가고자 결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완성 시기인 노년에 하느님께 당신의 자녀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미사의 말씀 전례 안에서 주의 깊게 경청하고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노년의 신체와 정서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그 뜻을 마음에 새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노년은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고 변화하려 하기보다, 지난 삶에서 본인이 체득한 관점과 사고를 강하게 유지하려 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름다운 노년을 원한다면 노년에 접어들기 전부터 꾸준히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되새기면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노년에 접어들기 전부터 말씀을 알아듣고 가까이 지내기 위한 성경공부,성경읽기,성경필사 등은 유익한 노년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잘못을 하고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말씀으로 다가와 친절하게 물어봐 주시고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늙어서도 열매 맺으며 수액이 많고 싱싱한"(시편 92,15)노년이 되기 위해 미사의 말씀 전례의 의미와 가치를 잘 알고 참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매일의 미사와 말씀 전례 안에서 절제와 기품과 신중함 가운데 건실한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지니고, 남을 험담하지 않고 술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 선을 가르치는 사람(티토 2,2-4 참조)이 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노년을 인격 성숙의 마지막 단계이면서 동시에 구원 여정의 완성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김경호(바오로)신부.전의 요셉의마을 원장-
<미사 속 숨은 보화>
대영광송:
③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축제의 노래
대영광송은 그 기원이나 내용으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축제 성가로,주일,축일,대축일 및 지역의 성대한 축제 때 교우들이 함께 노래합니다. 그러나 사순시기의 주일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속죄하는 참회시기이고,대림시기의 주일은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경건히 기도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대영광송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또한 대영광송은 말씀전례에 들어가기 전에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교대로 부르는 것에 큰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공동체가 모두 함께,또는 교우들과 성가대가 계응으로 노래하는 것이 원칙으로,결코 성가대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4) 김정한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유항검(아우구스티노)-집마저도 물로 씻었으니
1756년 전라도 전주에서 출생
1801년 10월 24일 전주에서 순교(45세)
옛날에는 흔히 "그 집 땅 밟지 않고는 그 동네 못 지나가"라는 식으로 큰 부자를 묘사했다.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집안이 바로 그러햇으니 전주 인근 10여 개 고을에 대략 15,000마지기 (9,900,000㎡)의 토지를 소유한 어마어마한 부자였다.
아무리 부자라 해도 고민 없이 살아가는 집안은 없다. 유항검은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에 걸맞은 지위는 가지지 못했다. 신부은 양반이었으되 정권에서 소외된 남인(南人)에 속헤 있어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아가는데 자주 제약이 따랐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그는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학문으로 여기던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신앙 수용의 계기가 되었다.
유항검은 178년 어느 날 경기도 양근에 사는 유명한 학자인 권철신(암브로시오)을 찾아갔다가 천주교 서적과 성물(聖物)을 처음 보았다. 이후 그 아우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을 통해 천주교를 배울고 그를 대부로 하여 이승훈(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호남 최초의 신자가 된 유항검은 '호남의 사도'로서 고향에 복음을 전하여 전주 일대에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유항검의 집안은 무사할 리 없었다. 그를 비롯하여 온 집안 식구들과 그의 영향으로 신자가 된 무수한 사람들이 잡혀 들어갔다. 유항검은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모진 형벌 속에서도 끝까지 신아을 지켰으나 그에게는 다른 죄목도 추가되었다.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집에서 머셨던 점,서양이 배를 끌여들이려 했다는 혐의도 추가되어 역적의 죄로 다스려 사지를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의 형벌에 처해졌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식솔들은 함께 처형되거나 각 지방 관청의 노비로 팔려갔고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다. 더하여 그가 살던 집은 대역죄인의 집이라 하여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연못을 파서 집을 수몰시켜 버리는 형벌인 파가저택(破家瀦宅)도 추가되었다.
유항검의 고향에 조성된 초남이성지(전북 완주군)에는 그의 집터에 상징적으로 작은 연못을 파놓았는데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박해의 잔혹함을 떠올리며 '어쩌면 저렇게까지?'라는 생각도 들지만,'유항검의 집안은 그 집마저도 물로 씻어 세례를 받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은총에
푹 빠진 유월
빛,바람,물
그리고 초록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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