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준 신부(2012,베드로 성당)
"보라,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 마태오 복음 28,16-20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내가 너희에세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예쁜 신자가 되자 "사랑의 십자성호" -유충식 라파엘 예산 주임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때론 신자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많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들과 식사를 할때 성호를 긋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신자라면 무슨 일을 할 때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성호경을 외우며,십자성호를 그어야 합니다. 이는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또한 하느님은 성부,성자,성령,세 위(位)로 계신다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신자라면 이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동계 올림픽 때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의 십자성호를 긋는 예쁜 모습이 전 세계로 중계되었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성호경 하나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전 셋계에 증거한 것입니다. 이 예쁜 모습을 우리도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하느님에 대해서만 이해하고 말할 뿐입니다.만약 인간의 지성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신비를 인간의 지식으로 다 이해하려 한다면 이단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에 대하여 집요하게 연구하였던 아우구스티누스도 마지막 결론에 가서는 "삼위일체의 신비는 너무나 깊은 신의 내적 생명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신비의 내용이다." 하며 두 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세 위격이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신다는 하느님의 신비를 신앙으로 고백하며,고백한 바를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가 될 수 있는 기본원리는 바로 '사랑'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로 일치해야 하는 이유이자 좋은 모델입니다. 폭력으로 분열된 학교 현장,파괴되어 가는 가정,지역주의와 대치된 남북관계 등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가 되어 나갈 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증거하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예쁜 신자들이여! 사랑이 십자성호를 자주 그읍시다. 오늘도,내일도,그 다음 날에도...
<노인과 영성(3)>
교회문헌 안에서 노년신앙
성 에프렘 교부는 인생을 손가락에 비유하면서 인생은 겨우 한 뼘의 길이에 지나지 않고,인생의 각 단체는 서로 다른 손가락처럼 각각 독특한 특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하느님 안에서 짧으면서 무상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삶을 경험하기에 각기 다른 노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노년은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의미있고 품위 있는 삶이 될 수있겠습니까? 106세가지 살았던 '린다'라는여성은 101번째 생일에서 정신적으로는 못할 게 없지요.. 노년에도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 안에서 노년을 보내는 거지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그리스도인은 노년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집으로 인도하시는(요한 14,2 참조)여정의 한 단계로 받아들이고,신앙을 통해서 그리고 믿는 이들의 희망(로마 5.5참조)안에서 살아가야 됨을 의미합니다.(「교회와 세상안에서 노인의 존엄과 사명」참조) 또한 보가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신앙는 죽음의 신비를 밝혀 주고 노년에도 평온함을 잃지 않게 해 줍니다... 노년은 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믿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노년은 더욱 열렬한 기도와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의 봉사에 헌신함으로써 영성생활을 강화하고자 창조적으로 보내야 할 시기"(「노인들에게 보내는 서한」라고 말씀하셨듯이,그리스도인은 노년에 있어 신앙의 중요함을 되새겨 보야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교회는 노인들의 신앙성장을 돕는 구원 희망의 지평을 열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화와 재복음화에 있어서는 예수님께서 늙은 니코데모에게 권고하신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요한3,7)라는,끊임없는 거듭남의 영성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라는 그리스도인의 소명 의식 안에서,그 어느 때보다도 꾸준히 거룩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1984년에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노인들을 접견하시는 자리에서 말씀하신 바를 모두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적인 고독의 유혹에 당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과 떨어지는 기력.. 이해가 부족한 이기적인 사회,이러한 것들이 현실이라 하여도..여러분은 정신적으로나 인간적으로 풍요로운 삶의 한 시기에 살고 있는 능동적인 주체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아직도 완수하고 이바지하여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Insegnamenti di Giovanni Paolo II,vII,1)
-김경호(바오로)신부.충남가톨릭사회복지회장-
<미사 속 숨은 보화>
대영광송:①삼위일체께 올리는 영광과 찬미의 노래
대영광송은 하느님 아버지와 어린양을 찬양하고 간청하는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찬미가로서 성탄날 밤에 천사들이 노래한 성경 구절(루카 2,14 참조)로 시작됩니다. 먼저 성부이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 다음,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천주성과 구언 업적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성령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며 삼위일체 조화로 끝을 맺습니다. 이와 같이 대영광소은 그 명칭이 암시하듯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시작되어 영광송으로 끝을 맺는 장엄하고 긴 "대영광송"입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2) 김정한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우리 본향(本鄕) 어디메요:
한정흠(스타니슬라오),김천애(안드레아),최여겸(마티아)
한정흠 (스타니슬라오) |
전라도 김제 출생 1801년 8월 26일 김제에서 참수(45세) |
김천애 (안드레아) |
출생지 미상 1801년 8월 27일 전주에서 참수(41세) |
최여겸 (마티아) |
전라도 무장 출생 1801년 8월 27일 무장에서 참수(38세) |
한정흠,김천애,최여겸은 모두 전라도 출신으로,김정득(베드로)과 같은 날 서울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분들이다.
한정흠(스타니슬라오)과 김천애(안드레아)는 '호남의 사도'로 불리는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영향으로 신앙을 가졌다. 전라도 김제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한정흠은 유항검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스승이었고,김천애는 유항검의 하인이었다. 둘은 같은 집에 살고 있었으나 신분으로 치면 가히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런데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함께 붙잡혀 전주 감옥에서부터 서울을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동료가 되었다.
전라도 무장 출신의 최여겸(마티아)은 처가가 한산(충남 서천군)인데 그곳에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 교우가 된 후 고향으로 돌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박해가 일어나자 잠시 처가에 피해 있다가 한산에서 체포되어 무장을 거쳐 전주로 압송되었는데 거기서 한정흠과 김천애를 만나 동료가 되었다.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세 동료는 결국 서울로 이송되었고 거기에서 충청도 출신의 김광옥과 김정득을 만나 동료 둘을 더 얻었다.
이렇게 다섯이 된 동료들은 같은 날 사형판결을 받았는데 천주교에 대한 경고의 표시로 각자 고향으로 보내어 참수하도록 지시했다. 이들의 고향길은 멀고 멀었다. 이미 여러 차례 고문을 받으며 만신창이 된 몸으로 서울에서 충청도와 전라도로 가야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쁘게 걸어갔고 고향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처형되었다. 충청도의 김광옥과 김정득은 8월25일에,전라도 김제의 한정흠은 8월 26일에,전주와 무장의 김천애와 최여겸은 8월 27일에 각각 하느님 품으로 갔다.
옛 교우들이 가장 즐겨 부르던 천주가사(天主歌辭) 중에 사향가(사향가)가 있다. 본 고향(鄕) 하느님 나라를 그리워하며(恩) 부르는 노래(歌)이다. 그 첫마디는 이러하다.
어화우리 벗님네야 우리본향 찾아가세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곳이 본향인고
어떤 때는 아무 뜻 없이 한 소리가 예언자의 말이 될 때가 있다. 사형판결을 내린 이가,"그들을 고향으로 보내 처분하가."고 하였는데 이말이 그 순교자들을 '참고향'으로 보냈다. 그분들은 "우리본향 찾아가세"하며 멀고 먼 길을 즐거이 걸어갔으므로.
언제부터
이 길이 아름다웠을까
길 위에 핀
이름 모를 꽃들 위로
언제부터
내 마음이 가 앉았는가.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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