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2년 주보

부활 제4주간 (성소 주일)2012년 4월 29일(나해)

모든 2 2021. 4. 18. 23:27

 

「부르심」대전가톨릭사진가회(2012)

"나는 착한 목자다,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 10,14)

 

+  요한 10,11-18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은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말씀의 향기>

 

만족하십니까? 그 속에 성소가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백 현 바오로 성소국장

 

  여기저기서 성소가 줄어든다고 걱정들을 해주십니다. 걱정은 함께하면 반으로 줄어든다는데 걱정을 해 줄수록 성소를 맡고 있는 저의 걱정은 더욱 커지니 그것이 걱정입니다.

  얼마 전 방송에서 관심이 가는 뉴스를 보았습니다.'직업만족도'라는 것을 조사했는데,759개의 직업 중에 현직에 종사하고 있는 2만 6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는 겁니다. 별 생각 없이 보고 있자니 신부도 그 조사에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솔깃한 마음 반,사제를 직업 중의 하나로 구분하는 것에 쓸쓸한 마음 반,뉴스를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신부들의 직업만족도가 꽤 높게 나와 있었습니다. 수많은 직업들 중에 신부라는 직업(?)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 겁니다. 사실 이 뉴스가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은 신부가 높은 서열에 들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제3자가 그 일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말하지 않고,각자가 느끼는 자기 일에 대한 만족도를 직접 표현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신부님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자신들이 걷고 있는 이 길을 긍정하고 있구나!' 성소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작아졌습니다. 이 길을 걷고 있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자신의 성소를 긍정하고 만족하고 있다면,성소의 싹은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사실 사젣로서 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 그런데 성소주일 오늘의 복으만 나오면 늘 마음이 찔리고 작아집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만족이라는 것은 자신으 기에 대한 충분한 '받아들임'인데 과연 나는 나의 이 길을 착한 목자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니면 삯꾼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제자들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제자들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과연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일 수 있을까? 야들이 아닌 나에게만 관심이 있는 삯꾼이지 않을까?"

 

  그러다 베드로가 생각났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시는 주님의 물음에 사랑한다고 답하면서도 슬퍼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그제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그렇구나! 양들을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목자로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누나!'

 

  무엇이 먼저일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만족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삯꾼을 바라면서 이 길을 걸으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면 삵꾼이 되어가는 자신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많은 서오자들을 달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적더라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이들을 청합니다.

 

 

<시니어 컬럼(11)>

 

장모 -사위 갈등

 

성별과 신분에 따른 교유기회의 차별이 극심했던 전통사회와는 달리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학력수준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그 결과로 여성 의 취업률이 증가하여 우리나라 여성의 절반 이상이 취업여성이며,취업여성 중에 미혼여성보다도 기혼여성의 수가 많습니다. 여성취업으로 인한 가사활동이나 자녀양육 문제,여권신장으로 인해 처가와는 자발적이고 친민한 관계를 가지는 경향이 보입니다. 우리사회가 과거의 부계사회에서 조금씩 모계사회 쪽으로 이동하여 현재는 양계사회의 모습을 보이는 증거이기도 한데요.결혼한 딸이 친정 보무님의 도우을 받기 위해 친정 가까이에 살거나 아예 살림을 합치는 경우가 흔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갈등을 경험하는 장모와 사위가 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친정에서는 출가외인으로,남편으로부터는 시댁에 충성하도록 강요받은 여성의 심리적 허탈감은 자신이 낳은 자녀에게 집착하게 되고, 자녀를 통한 대리만족은 자녀의 성공이 곧 어머니의 성공이 됩니다. 어머니로서 헌신하여 잘 기른 딸을 통해 아쉬움을 달래고 보상을 받으려는 장모가 증가하면서 딸을 떠나보내지 안으려는 친정어머니들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녀를 분리시키지 못하는 것은 이미 가정을 꾸린 딸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장모 사위 갈등은 장모의 심한 간섭,의존적인 딸,가부장적인 사위의 의식 모두가 총체적인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장모는 맞벌이 하는 딸을 가까이에서 돕다보니 자연스럽게 딸네 집을 자주 들락거리며 사정을 알게 되고, 그런 와중에 딸을 고생시키는 사위가 원망스러워 자꾸 잔소리를 하며 감 놔라,대추 노라라 간섭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위들은 장모님의 도움은 고맙지만 그런한 도움이 자신의 도움이나 간섭이 달갑지 안은 사위는 장모를 피하고 싶고 종말에는 부부갈등으로 발전하게 되지요. 장모님 입장에서는 맞벌이하는 딸에게 도움이 되어주고자 자처한 일이 가족불화의 원인이 되었으니 억울하고 배신감을 느낍니다. 아무리 허물엇는 가족이라 해도 부모와 성장한 자녀세대 간에 명확한 경계가 설정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족구성원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진정한 의미의 건강한 관계가 형성되지요. 따라서 부모는 성인자녀의 가정과 부부관계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말고 든든한 지원자로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웃어른으로서 존경을 받게 되는 길입니다.

 

-임송은 헬레나.대전보건대학교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미사 속 숨은 보화>

 

입당송: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를 영접하다.

 

  미사를 사작하면서 입당송이나 입당성가를 노래하는 것은 대제관이신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이끌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입다옹을 통해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대리해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를 장엄하게 영접합니다. 신자들이 주례사제를 맞이하여 한목소리로 입당송을 노래함으로써 신자들의 일치와 친교를 강화하고, 전례시기에 합당한 성가를 부름으로써 전례시기와 축제의 신비를 깨닫도록 그 마음을 준비시켜 줍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17)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오래 오래 주님 궁에서 살으오리다."(시편 23,6) :

강경복(수산나)과 문영인(비비안나)

 

  강경복    1762년 출생

(수산나)    1801년 7월 2일 한양에서 참수(39세)

 문영인    1776년 한양 출생

(비비안나) 강경복과 함께 참수(25세)

 

 강경복과 문영인은 궁녀(宮女)다. 텔레비전에서 궁녀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때로는 로맨틱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궁녀는 왕권의 그늘 아래서 피었다. 시들어 버리는 꽃잎과도 같은 존재들로 평생을 왕과 왕실을 위해 시중을 들다가 이름 없이 사라지는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왕과 결혼한 사리도 아니면서 '왕의 여자'로 여겨져 평생을 홀몸으로 살아야하는 존재들이었다.

 

  궁녀들 중에은 신자가 되는 이들이 많았다. 성경에 보면 '가나한 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이 잘 받아들여졌듯이 조선시대의 궁녀들도 화려해 보이면서도 가난한 존재들이었기에 복음을 잘 받아들였다. 강경복과 문영인은 그런 궁녀들 중 대표적인 순교자들이다.

 

  강경복(수산나)은 '폐궁'이라고도 불리는 '야제궁'의 궁녀였다. '폐궁'이란 궁궐에서 쫓겨난 왕실의 친족이 거처한던 집을 일컫는 말이니 강경복은 궁녀 중에서도 제징 열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떤 셈이다. 궁녀들 안에서도 좋고 나쁜 자리의 철저한 구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경복은 양제궁의 주인인 송 마리아의 권유로 신자가 된 이후 주인과 함께 강완숙(골롬바)의 집으로 가서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이 주례하는 미사에도 참석하고,박해가 시작되자 주문모 신부님을 양제궁에 숨겨주기도 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문영인(비비안나)은 한양에 거주하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 일곱 살이 되던 1783년에 궁녀로 뽑혔다. 이른 나이에 궁에 들억ㄹ수록 더 좋은 지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 궁녀의 세게였으나 문영인은 천주교를 믿음으로써 그런 기회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21살이 되던 해에 병에 걸려 잠시 궁궐에서 나와 있던 사이 천주교를 알게 된 그녀는 강완숙의 집을 드나들며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이후 다시 궁궐에 들어갔으나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발각되어 궁에서 쫓겨났고 박해가 시작되자 체포도었다.

 

  강경복과 문영인은 궁녀의 몸으로서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때문에 둘 모두 한때 배교하였으나 다시 번복하고 순교의 길을 갔다. 문여인이 진술한 대로 "첫 번째 진술에서는 비록 천주교를 배척한다고 했지만,돌이켜 보건대 입으로는 배척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실제로 배척을 하지 않았습니다...여러해 동안 독실히 믿어 온 신앙인데,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라고 한 것이 그들의 진정한 마음이었다.

 

  '주님은 나의 목자'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시편 23장의 한 구절은 성무일도에서 "한평생 은총과 복이 이 몸을 따르리니 오래오래 주님 궁에서 살으로리다."라고 멋스럽게 번역되어 있다. 강경복과 문영인은 자신들이 믿어떤 신앙의 힘으로 지금은 주님의 궁궐에서 진정한 궁녀가 되어 오히려 그분의 시중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분은 주님이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던 분이시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 열고 귀 기울여

어제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오늘을 살며

내일을

꿈 꿉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