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2년 주보

예수 부활 대축일 2012년 4월 8일(나해)

모든 2 2021. 4. 17. 23:43

 

 

+  요한 복음 20,1-9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사람이 함께 달렸는데,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의 향기>

 

부활의 삶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김희용 베드로 예산산성리 주임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충만한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몸부림치다 죽으셨던 주님은,싸늘한 시체로 무덤에 갇혔던 주님은 놀랍게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당신을 가두었던 무덤을 뚫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충만한 은총을 여러분 모두가 마음껏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해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깊이 반성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부활이 죽음을 이기고 무덤을 뚫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죽음을 물리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넘어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금으 세상은 우리를 무덤 속에 가두고 썩은 냄새가 나는 삶을 살도록 유혹합니다. 세상의 재물이 그렇고 권력이 그렇고 명예가 그렇습니다. 먹이를 찾아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호시탐탐 우리를 공격하고 끝내는 우리를 무덤 속에 가둡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무덤 속에 갇혀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생각하는 부활이란 바로 이런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화를,악습과 게으름을 과감하게 떨쳐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지시대로 과감하게 탈출을 시도하여 자유인이 되었듯이 우리도 한번 과감히 주님만을 의지하며 따라나설 때 부활과 해방의 삶을 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유혹에도,그 어떤 고통 앞에서도 당당하게 주님의 사람으로 사는 그런 생명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삶이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오히려 오리는 늘 본능에 지고,늘 세상에 집니다. 늘 육신이,혈육이 먼저입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을 먼저 찾으며 삽니다.안타깝지만 솔직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기쁘지만 내 모습을 보면 결코 기쁘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활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주님께서 몸소 우리의 부활을 기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네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나의 은총으로는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위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14)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윤운혜(루치아),정광수(바르나바),정순매(바르바라)

 

 윤운혜      정광수 아내/경기도 출생

(루치아)    1801년 5월 한양에서 참수

   정광수    윤운혜의 남편/여주 출생

(바르나바) 1802년 1월 여주에서 참수

  정순매     정광수의 동생/여주 출생

(바르바라)  1801년 7월 여주에서 참수(24세)

 

  위의 세 분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자신들의 삶이 된 분들이 또 있을까? 그 말씀은 이러하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루카 12,51-53)

 

  윤운혜(루치아)와 정광수(바르나바)는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신앙으로 맺어진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여주 시댁의 부모님이 모두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부모님의 반대로 서로 혼인문서도 주고받지 못한 상태에서 시집생활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금지되었던 제사 때만 다가오면 번번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정광수의 여동생 정순매(바르바라)는 오빠 부부로부터 교리를 배워 신자가 되었고,이후 동정을 지키며 살겠다고 시집가기를 거부하였으니 신자가 아닌 부모님 둘과 신자인 셋이 분열을 일으킬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다. 결국 정광수,윤운혜 부부와 정순매가 부모님 곁을 떠나 한양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셋은 한양 벽동에 거주하며 집에 따로 경당(chapelle)을 마련하고 주문모(야고보)신부님을 비밀리에 모셔 미사를 드릴 만큼 열성을 보였다. 옛날 열심한 공소 회장님들 집에서는 방 한 칸을 아예 따로 비워 교우들과 모이을 갖는 장소로 사용하였는데 규모는 작지만 충분히 '경당'이라 불릴 만한다. 정광수 부부의 집에 있는 경당 역시 이러한 형태였을 것인데 막 태동한 조선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요즘의 어떤 성당과도 견줄 만한 입장에서 보면 요즘의 어떤 성당과도 견줄 만한 '지극히 경건한 집'이었을 것이다.

 

  셋은 같은 집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함께하였건만 결국은 잡히게 되었고 순교한 시기는 각각 달랐다. 먼저 윤운혜가 1801년 5월 14일 한양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고,다음으로 시누이 정순매가 1801년7월 3일에 경기도 여주에서 참수되었다. 남매는 고향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자기 고향에서 참수 되었으니 바로 자신들의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예수님께서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신 것은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겪어야하는 엄청난 변화를 의미한다. 밀알이 죽어야 새 생명이 탄생하듯,자신과 이웃을 분열시키는 것과 같은 엄청난 변화가 없으면 참 생명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 교회사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어 버린 정광수와 그 가족들은 그 분열을 마음뿐만 아니라 삶 안에서 고스란히 겪었다. 그들은 어떤 생명과 평화를 얻었을까?

 

 

축 부활!

 

생명의 빛

천상의 문 열어

우리의  생명

거듭나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2012년 예수 부활 대축일 메시지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알렐루야!

  새봄을 맞아 죽은 듯이 보였던 대자연이 새로운 생명을 움틔우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평화와 기쁨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하시는 일에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특히 가난하고 소외당하며 고통받는 이들과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1. 공동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요한 16,16)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을 전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흘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절망에 빠져 있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함께 빵을 나누는 순간에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해주셨고(루카 24,13-35참조),제자들이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때 그들 한가운데에 나타나시어 평화의 인사를 전하셨으며(요한 20,19-23 참조), 고기를 잡고 있는 일곱 제자들에게 손수 빵과 물고기를 구워주며 함께 아침식사를 드셨습니다.(요한 21,1-13참조)

 

  부활의 삶은 더불어서 함께 사는 삶입니다. 제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함께 목격하고 체험하였듯이, "하늘의 시민"(필리 3,20)인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로마 6,8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는 세상의 불의한 구조마저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치로 돌려놓아야 할 책임이 따릅니다.

 

  2. 혼란한 사회 속에서

  우리가 생활하는 사회의 현실은 많은 어려움들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런 현실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으로 찌들어 있는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나에게 이익이 되면 선이고,내 편이 아니면 적이며,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면서도 부분별한 개발이 지속되고 있고,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나만 행복하려고 하면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계층,지역,세대 간의 골이 깊어져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티없이 뛰어 놀면서 꿈을 키워가야 할 학생들의 폭력 소식을 접하면서 놀라움으로 할 말을 잊었습니다. 학교가 서로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인성교육에 바탕을 둔 교육이 아니라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입시만을 위한 경쟁교육으로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하고 걱정하면서 이래서는 안된다 바뀌어야만 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탐욕 그 자체를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콜로 3,5 참조) 탐욕이 하느님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이 세상,탐욕의 질서가 생명의 질서를 지배하는 이 세상은 죽음의 길목에 서있는 듯싶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요한 5,24) 부활의 증인인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권력이 진실을 호도하고 생명을 유린할 때 정의와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3. 공동선을 증가시키는 총선거

  며칠 후에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습니다. 헌법 제 1조 1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합니다. 국민은 자유롭게 선출한 대표들에게 주권의 행사를 위임하지만,그러한 통치 임무를 맡은 이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잘못하면 그들을 바꿈으로써 주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395항 참조)국가의 중요한 결정들을 국회의원들이 결정하기에, 국회의원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합니다. 백성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정치를 기대하기 위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올바른 마음과 냉철한 자세로 후보자를 검증하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참조하여 그 중에 가장 나은 사람에게 투표하여야 합니다.

 

  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합시다. 정치에 대한 체념이나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깨어있는 의식으로 투표의 권리를 행사하여야 합니다.

 

  나) 국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공동선의 실현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지연,혈연,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나라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국민을 속이는 자를 가려내고, 도덕성을 갖춘 사람을 뽑으면 그만큼 정치 질서도 나아질 것입니다.

 

 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읍시다. 반드시 신자들을 뽑으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창조질서를 보존하며, 국민의 생각을 인내하며 경청하고, 대화하고, 조정할 줄 아는 열린 사람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고통받는 이들의 '손과 입과 발'이 되어 줄 수 있는 이들을 뽑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라) 공정한 선거 관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언론은 공정보도를 통하여 공정선거를 담보하여야 합니다. 공직자들도 사리사욕을 버리고 국민을 섬기며 공동선을 실현하여야 합니다. 유권자들도 공명선거를 해치는 온갖 비리와 불법 행위를 적극적으로 고발하여, 깨끗한 정치 풍토를 가꾸는데 최선을 다합시다.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정치를 합니다. 올 해 두 차례의 선거로 투명하고 깨끗한 선거풍토를 조성하여 정직하고 도덕성을 갖추지 않고는 정치 지도자로 나설 수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킵시다.

 

  4.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진정한 평화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의 삶은 완전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미움과 불의를 조장하는 악의 세력에 맞서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엄청난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섬김의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도 4,24)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세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해 나갔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정의와 평화를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우리에게 닥치는 미움,폭력,불의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겨내는 길을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배우면 좋겠습니다. 평화에 이르는 첫 번째 길은 "법"이며,사람들에게 그 법을 존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정의를 완성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정의와 사랑은 때때로 반대세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사실 이 둘은 동일한 실재의 양면일 뿐이며,서로 통합되어야 하는 인간 삶의 두 차원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의 2004년도 평화의 날 메시지,10항)

 

  미움,이기심,불의로 얼룩진 현실 앞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건설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며,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지혜를 주십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이 지혜는 영혼과 생각의 눈을 열어 주시며, 이 세상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공동체 안에서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는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가 부활한 삶을 살 때에 주님을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

 

2012년 4월 8일 예수님 부활 대축일에

+ 유 라자로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 흥 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