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일 동안」(2012,최현정 마리아 작품),변윤철 신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5)
+ 마르코 복음 1,12-15
그 뒤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말씀의 향기>
40일간의 여행 "하느님의 사랑방식" -오명관 베네딕토 갈매못 성지 주임-
예수님이 광야로 들어가십니다. 사순시기가 되면 늘 만나는 주님의 바보 같은 모습입니다. 하느님이라면서, 세상 창조주라면서 왜 굳이 그리 어려움만 자처하는지요. 사탄마저도 그런 주님을 깔봅니다. 마태오 복음이나 루카 복음에서는 배고파서 힘드실 주님께 돌을 집더니 빵으로 만들어 보라고 하고, 권세와 영광을 줄 테니 엎드려 절을 하라고 합니다.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는 몸을 던져 보라고 합니다. 천사들이 떠받칠 것 아니냐고...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 얼마든지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있는 분임을 압니다. 보리빵 다섯 개로 수천 명을 먹이신 분이 그깟 돌을 빵으로 변화시키지 못하실까요. 물 위를 나비처럼 걸으시는 분이 아무리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 해도 다치시겠니까? 당신이 원하시면 오히려 하늘을 나셨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다 물리치십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탄의 의도를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말하는 겁니다. 당신이 하느님인데 왜 바보처럼 십자가를 향해서 가고 있냐고, 보란 듯이 하늘을 쪼개면서 호통 한 번 치면 이 오만한 인간들 다 무릎 꿇릴 수 있으면서 어리석게도 굳이 이 거친 곳에서 고생하고 있느냐고, 십자가에 정말 매달리려는 거냐고...
사탄마저도 시기하고 있는 하느님 방식의 사랑! 우리는 그 사랑의 깊이를 알지 못합니다. 얼마나 큰 사랑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바다 냄새와 산(山)냄새를 구분하듯 어렴풋이 느끼고 누리고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맞이한 이 사순 시기는 바로 그 사랑을 본격적으로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닌가 합니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외면했던 주님의 사람! 내 삶의 이유이고 내 기쁨의 원천인 그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행 말입니다. 신앙인이면서도 그럭저럭 살고 있는 나를, 인정과 성공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 있던 나를 교회의 성령님은 광야로 이끌고 계십니다. 내 본질을 찾아 떠나라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40일간의 여행입니다.
옛 수도승들처럼 주님을 찾아 사막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수방(修房)에 앉아 문을 닫아걸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말을 줄이고 기도하며 살 수는 있습닏. 사막의 생활처럼 거칠게 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 더 검소하게 조금 더 불편하게 살 수는 있습니다.
우리의 이 여행이 정말 은혜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시니어 컬럼(4)>
노년기 청각의 변화
나이 들면서 나타나는 청각의 변화는 40세경에 청력손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6세가 넘으면 크게 손상 정도가 커집니다. 특히 주파수와 강도를 구부하는 능력이 떨어져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노인성 난청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여성 노인보다는 남성노인에게,오른쪽 귀보다는 대개 왼쪽 귀에 먼저 나타납니다. 남성노인들은 젊었을 때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리에 노출되었던 정도가 전업주부로 살아오신 여성노인보다는 더 많았기 때문에 청력이 약해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르신의 청력손상은 사람들과의 대화나 텔레비전 시청 같은 것들을 어렵게 합니다. 잘 듣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목소리를 크게 말씀하시고 어르신 스스로 남들과의 대화를 피하시려고 하고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기가 쉽습니다. 주위에서는 이렇게 듣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시는 어르신께 보청기를 해 드리게 되는데, 보청기는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보청기를 끼면 듣기를 원하는 소리뿐만 아니라 발생되는 모든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오래 끼고 있으면 노인이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처럼 보여 보청기 착용을 꺼리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귀가 잘 안 들리는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목소리의 통을 낮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들으시는 어르신께는 크게 말해야 알아들으실 것으로 생각하는데, 낮은 톤으로 부드럽고 상냥하게 천천히 그리고 발음을 또박또박해서 말하면 웬만한 말은 다 알아들으십니다. 또한 어르신과 말하려는 내가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 눈이 마주친 상태에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르신을 뒤에서 부른다거나 말을 걸면 어르심은 무의식 중에 뒤를 돌아보시게 되는데 갑자기 몸을 돌리시다가 낙상을 하실 수 있습니다. 마침 그 순간에 바닥이 미끄럽다든지 걸려 넘어질 만한 줄이나 물건 같은 게 있으면 더욱 위험하기 때문에 뒤에서 부르거나 말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어르신과 대화를 하려면 눈높이를 맞추라는 입니다. 어르신께서 의자에 앉아 계시면 나 또한 의자에 앉거나 무릎을 굽혀서 눈높이를 맞춘 다음에 대화를 하셔야 합니다. 이때 어르신과 나 사이는 서로 1미터 반경 안에 들어가 있을 정도의 거리가 가장 좋습니다. 이 거리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면서 말할 수 있고 듣는 사람 역시 상대가 하는 말을 잘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몸동작입니다. 여기에 재치를 더한다면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르신께서 잘 이해하실 수 있는 쉬운 단어로 말하되 손을 잡고 웃는 얼굴로 어르신께서 사용하시는 고향 사투리를 섞어가며 대화를 하신다면 친금감이 절로 꽃피지 않을까요?
-임송은 헬레나. 대전보건대학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미사 속 숨은 보화>
미사 때 여성들이 미사보를 쓰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여성의 머리카락은 세속적인 사치성으로 인식되었기에 신앙인으로서의 소박한 생활과 정숙한 몸가짐을 표현하기 위해 미사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기도할 때 머리에 무엇을 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1 코린 11,5-6 참조) 그러나 그것은 당시 풍습일 뿐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기 때문에 미사보를 써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고 거룩한 미사를 봉헌할 때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회개했다는 마음의 표현으로 머리에 미사보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세례 때에 받는 흰 수건도 죄를 깨끗이 용서받았다는 표시로 회개와 용서, 속죄의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8) 김정한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 정약종(아우구스티노),김완숙(골롬바)
정약종(아우구스티노) |
1760년 경기도 광주 출생 1801년 4월 서울에서 참수(41세) |
강완숙(골롬바) |
1761년 충청도 내포 출생 1801년 7월 서울에서 참수(40세) |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오랜 방황 끝에 주님을 알고 나서 한 말씀이다. 이 말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정약종(아우구스티노)과 강완숙(골룸바)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하느님 아버지를 알기까지 두 분의 삶이 꼭 그 성인을 빼어 닮았기 때문이다.
정약종은 당대 최고의 경지에 이른 학자 중 한분이었으나 벼슬길에는 관심 없었다. 진리에 목말랐던 그는 학문에서 그 길을 찾기도 하고, 도교에도 심취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에 다다르려 했으나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참된 길이 아니라 하며 비난도 하였으나,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4,5년 후에 받아들이고 나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망설임 없는 길을 갔다.
강완숙 역시 마찬가지였다. 삶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 때 불교에 몰두하여 속세를 떠나 출가할 결심도 했으나 만족을 얻지는 못하였다. 이후 결혼을 하여 평범하게 사는 듯하였지만 당시 내포지방에 널리 퍼졌던 천주교를 알게 되면서 삶이 바뀌었다. 그녀는 "천주교"라는 이름을 듣고서는 '천주라면 하늘과 땅의 주인일 텐데, 종교의 이름이 정확하니 그 교리는 참돌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책들을 청하여 보고서는 가뭄 끝에 비처럼 받아들였다.
두 분은 늘 갈망하다가 늦게야 깨달은 소중한 진리를 나누어 주기 위해 애썼다. 정약종은 서민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주교 요지」라는 한글 교리 책을 직접 지어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신부의 구분 없이 대함으로써 몸으로도 가르쳐 주었다. 강완숙은 조선시대의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여자의 몸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디든지 갔으며, 탄탄한 지식과 언행으로 남자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동정으로 살 뜻을 둔 처녀들을 모아 사실상의 수도생활을 하며 일꾼들을 양성했다.
두 분은 죽음의 순간까지 거침이 없었다. 정약종은 "하늘을 바라보고 죽고 싶다."며 얼굴을 땅으로 향하도록 하는 관례를 거슬러 칼을 받았고, 강완숙은 사형수의 웃옷을 벗기는 관행을 거슬러 "옷을 입고 죽기를 청합니다 "라고 당당히 요구함으로써 정숙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겁내지 마라,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이지 이분들을 통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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