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2년 주보

연중 제2주일 2012년 1월 15일(나해)

모든 2 2021. 4. 17. 15:04

 

「응시」(최선종신부,011 태안 솔향기길)

"와서 보아라."(요한 1,39)

 

  +  요한 복음 1,35-42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무엇을 찾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하시니,그들이 함께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의 선택과 부르심,그리고 응답의 삶 - "부르심과 응답은 은총"  -유현식 바오로 성모병원 행정부원장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주님,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응답한 사람들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부르심의 의미와 응답의 삶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는 것'은 삶에 연결될 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 의미가 빛을 낸다.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어린 사물엘을 선택하시고 부르시는 내용이다.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기 전,하느님의 특별한 도우심으로 이 세상의 빛을 본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 제1독서에 의하면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계속되는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다가 엘리 사제의 도움으로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하느님의 함께 하심으로 하느님 백성의 판관과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었다.(1사무 3,19 참조) 이렇게 볼 때 사무엘에 대한 하느님의 선택과 부르심,탄생부터 성무 수행까지 모두가 하느님의 개입과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따. 때문에 사무엘에게 삶은 하느님의 선택이고 부르심이며 은총이다. 하느님의 선택과 부르심이라는 거저 주어진 은총은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는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무지한 인간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양들 위에 군림하는 세속적인 권력으로 탈바꿈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은총이 은총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첫 제자들처럼 단순히 외적인 차원이 아니라 절대적인 추종이라는 차원에서 예수님을 따르고,주님에게 나는 무엇이고 나에게 주님이 무엇인지를 전지하고 깊게 성찰하면서 그분과 함께 묵어야 한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묵었다.'라는 것은 단순한 함께 있음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내밀한 인격적 만남을 통하여 나에게, 너에게,그리고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참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것이다. 이런 '아는 것'이 없으면,혹은 부족하면,그리고 머리로만 알며 '나의 열심과 봉사'는 이런 '아는 것'이 없으면,혹은 부족하면,그리고 머리로만 알면 '나의 열심과 봉사'는 지금 여기에서의 주님의 현존보다는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와 달리 안드레아는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그리스도)를 만났소."라고 전하고, 시몬을 예수님께 인도하였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에 의하여 값이 치러지고 속량된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인 자신의 영과 육(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1코린 6,20) 곧 하느님의 선택과 부르심이라는 은총에 응답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시니어 컬럼>

 

"나는 일흔네 살입니다. 나의 활동은 이제 시작입니다." 

 

  노년은 경제적,생리적,조건들로 인해 인간 이하의 상태로 떨어지지 않는 경우라도 노쇠 때문에 외모가 변한다. 그러나 외모가 변한다해도 역시 예전의 그 사람이다. 그러나 외모가 변한다해도 역시 예전의 그 사람이다. 한 사람의 말년은 대부분 평소 삶의 태도에 달려 있다. 노년이 존재의 완성으로 간주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그러한 일을 해낸 이들이 있다. 빅톨 위고(1802~1885)는 '레 미제레블'을 써 영원한 고전 작가 반열에 들었다. 그는 "지금 샤를 마뉴에 비견되는나폴레옹처럼,셰익스피어에 견줄 만한 시인이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라며 위대한 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그의 노년 역시 이러한 자세의 연장이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는 일흔네 살이네. 나의 활동은 이제 시작이라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그가 이러한 자세를 지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인간의 불멸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년에 "나는 하느님을 믿고,영혼을 믿는다. 죽는다는것,그것은 하느님과 만나는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나는 그 준비를 한다네."라고 말하였다. 자신의 삶을 지상에서 최고의 작가가 되기 위한 열망으로 살면서,죽어서도 하느님을 만날 준비로 스스로의 삶을 예비한 현인의 삶을 산 대가이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창조적인 힘을 간직하고 살아 자신의 삶을 완성한 사람이 있다. 말년까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에 봉헌한 미켈란젤로(1475~1564)이다. 그는 평생 병마에 시달렸다. 시스티나 성당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다 발판에서 떨어져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고, 소변을 볼 수 없는 결석증 때문에 밤이고 낮이고 쉴 새 없이 소리쳐 댔던 사람이다. 말년에 그는 "화살같이 흐른 나날들에, 그리고 내 거울에 나는 배신당했다."라고 적으며 세월의 무상을 한탄하였다. 또한 "기억과 지능은 다른 곳에서 나를 기다리기 위해 떠났다."라며 탄식하였다. 그는 '세계의 천박함은  나에게서, 하느님을 관조하기 위해 내게 주어졌던 시간을 앗아갔다.'라며 자신의 다소 불성실했던 삶을 후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술의 유일한 정당화는 하느님에 대한 봉사이며,사랑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것이 실제로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는 선의를 품은 예술가의 손을 이끄는 것은 하느님 자체로 여겼고, 조각이나 그림을 통하여 창조의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구원과 기도에 열중하였고,하느님께 끊임없이 몰입하였다. 끊임없는 과로와 근심 속에 평생을 살았지만 계속적인 창조활동에 게으르지 않았고,88세에 베드로 대성당의 둥근 지붕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영면하였다.

 

 우리 삶의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세상 끝날 때까지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길이다.

 

-한동성 갈리스토.노인사목부 전담 신부-

 

 

<미사 속 숨은 보화>

 

미사 본다? 참례한다? 어떤 것이 맞는 표현인가요?

 

흔히 미사를 '보러간다'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동적으로 대하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미사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제의 인사와 기도에 '아멘','거룩하시도다'등의 환호의 화답을 통해 신자들은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는 "바로 이때 온 회중은 모든 사람안에서 일하는 '성령으로 하나 되어'각자의 임무에 따라 '전례 거행자'가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사를 본다'라는 표현보다는 '참례한다'라는 표현이 합당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윤유일(바오로)과 지황(사바)-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

 

 윤유일   1760년 여주 출생

(바오로)  1795년 포도청에서 장사(杖死,35세)

 

 지 황      1767년 한양 출생

(사바)      1795년 윤유일고 함께 장사(28세)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이사 52,7)이라고 하며 구원의 소식을 가져다주는 파수꾼을 기다렸다. 한국 교회 초기 역사에서 이 파수꾼(밀사)의 역할을 한 대표적인 분들이 윤유일과 지황이다.

 

  선교사들이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에서 먼저 들어온 교리책들만을 읽고 신앙을 받아들인 한국 교회는 역동성도 있었지만 그만큼 모르는 것도 많아 가끔은 큰 실수를 범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성직자를 임의대로 임명한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이다. 교황,주교,신부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성직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서품되는지를 몰랐던 초기 교회 신자들은 명망이 있는 이들 10명을 뽑아 신부로 임명하여 세례,미사,고해성사를 거행하게 함으로써 나름대로 성사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잘못을 감지하고 확실한 것을 알아보지 위해 파견한 사람이 윤유일이었다 .처음에는 혼자 갔으나 두 번째부터는 지황을 동행하여 서울과 북경 사이를 오가며 두 교회 사이의 소식을 전하는 발이 되었다. 이들이 중국교회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전하는 자체로써 교우들은 큰 기쁨이었으나,그들이 가져온 가장 기쁜 소식은 '진짜'성직자가 파견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은 그 소식뿐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중국 교회에서 파견한 주문모(야고보)신부를 한국으로 입국시킴으로써 진짜 미사와 고해성사가 이땅에서 거행되도록 하였다.

 

  교회가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큰일을 한 분들은 그만큼 고통도 많이 받게 마련이었다. 두 분은 외국인을 끌어들인 주동자였기에 체포된 후 모진 형벌을 받았고 정식 사형절차가 아닌 방법,즉 죽을 때까지 형벌을 가하는 방법(장사)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겨울인 동짓날에 파견되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동지사(冬至使)일행을 따라 춥고 험난한 길을 동행하던 윤유일과 지황은 1795년 6월 28일 죽음의 순간도 함께 하였다. 걷고 또 걸어 서울과 북경을 오가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인지 두 분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다. 걷지 않고 유유히 흘러 하느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도록.

 

 

 

싸락눈 내리는

빈 새벽녘

어제는 오늘을 기도하고

오늘은 내일을 기도합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