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벙의 정신은 사랑」(2011),유창연 신부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40)
+ 마태오 복음 22,34-40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말씀의 향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여라! -최교선 토마스.천안쌍용3동 주임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전교'하면 떠오르는 성가가 있다. 가톨릭 성자 406번이다.
"세상에 외치고 싶어 당신이 누구신지/세상에 외치고 싶어 깊고 크신 사랑
세상사람 다 알게 되리 왜 늘 기쁜가/진정 그들은 놀래리라 내겐 두렴 없음을"
바쁜 일상 속에서 '사는 게 뭐지'라는 물음과 함께 밀려드는 답답한 마음이 들 때,이 성가를 부르면 왠지 내 안에 어떤 새로운 힘이 느껴진다.
신자들이 성당을 편안하고 쉴 수 있는 곳으로만 생각하려는 것을 볼 때마다 신앙생활이 어떤 취미생활이나 여가 생활의 일부분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성당은 세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편하하게 해 주는곳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 성당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짓게 되는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고, 그 죄를 어떻게 속죄하는지를 가르치고,하느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그리고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다. 죄를 지은 사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신앙생활은 세상이 주는 편안함을 누리기 위한 여가생활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하느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이고,주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보면서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전교'는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주님이 보여주신 사라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승천하시기 전에 당신이 이루신 구원의 업적을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국한시키지 않으시고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레를 주어 사람들의 모든 죄를 ㅏㅅ해주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당신이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고 명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태 5-7장의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다. '참행복'의 산상설교로부터 시작되는 주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전교'는 이처럼 우리 자신이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이웃에게도 그 가르침을 따를 수 있도로 도와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세상 속 교회>
평화와 사회교리2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의 문제를 교회의 시각에서 바라보자. 우선 해군기지 후보지 선정에 있어서 비민주적인 절차를 살펴보자.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유치를 위해 최초로 논의가 된 것은 2007년 4월26일에 열린 임시총회였다. 당시 임시총회에서 마을회장은 주민 86명을 모아 놓고 만장일치로 기기 유치아을 가결시켰다. 그런데 당시 주님 대부분은 총회에서 해군기지 문제가 논의되는지조차 몰랐다. 강정마을의 투표권이 있는 주민으 1200여명인데, 86명의 의사가 모든 주민의 의사로 둔갑한 것이다. 그 이후로 해군기지 유치안은 마을 주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해군기지로 진행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교회는 민주주의 가치들을 높이 평가하여 왔다.하지만 참된 민주주의는 단순히 일련의 규범들을 형식적으로 준수한 결과가 아니라,모든 인간의 존엄,인권 존중,정치 생활의 목적이며 통치기준인 공동선에 대한 투신과 같이 민주주의 발전에 영감을 주는 가치들을 확신 있게 수용할 때 가능할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제주도 해군기지 유치 과정에서 간과하고 무시했던 과정들을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미 지난 주에 제주도의 생물학적이고 자연 유산 측면으로서의 가치를 언급하였다. 따라서 제주도의 해군기지 건설은 4대강 사업에서도 무시 되었던 것처럼,환경을 지키고 본조하여야 하는 의무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책임을 맡기신 것은 자연
과 온갖 생물을 함부로 다루거나 무분별하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현명한 임금이 자기 백성을 돌보고,목자가 자기 양들을 돌보듯이 자연을 돌보아야 함을 교회는 늘 가르쳐왔다.
마지막으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반대하는 교회의 입장에는 평화의 문제가 그 가운데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과학 무기의 발달은 늘 전쟁을 억제하기보다는 공포와 잔혹성을 증가시키며,무차별한.파괴를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무기의 비축을 가상의 적에게 전쟁을 단념하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의 생각에 대하여 비판하면서,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음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다. 또한 교황 바오로 6세는 군비 경쟁에 열을 올리는 현실에 개탄하면ㄴ서,그 비용을 가난한 사람들과 미족들의 발전을 위해 평화의 기금으로 돌릴 것을 강력히 호소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은 군비의 증대가 평화의 섬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은 심각한 해악임을 반성하게 한다. 또한 많은 주교님들과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신자들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주도의 강정 마을을 방문하여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하고 있음을 함께 기억하자.
-박상병 루도비꼬.전의 주임-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묵주기도 중에 뭘 먹기도 한답니다.
평소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며 살지만,대체로 '재미있게'하는 편입니다. 노친을 위해 장만한 안마기가 있는데,나도 매일 한두 차례 사용을 합니다. 한 번 작동에 7분이 소요되는데,반드시 묵주기도를 합니다. 대개 3단을 하지요. 의료기 위에 누워 15분 마사지나 40분 종합마사지를 선택했을 때도 묵주기도를 합니다. 잠이 드는 때도 있지만,대개 10단 이상을 합니다.그냥 안마기 앞에 앉거나 의료기 위에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는 게 너무 아까워 그 시간에도 묵주기도를 하는 거지요.
걷기운동을 하거나 장거리 운전을 할 때는 꼭 사탕이나 과자 따위 먹을 것을 챙깁니다. 당뇨환자 처지에서는 그것이 필수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혈당이 떨어지는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장거리 운전의 경우 졸음을 쫓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운전과 묵주기도와 먹는 일,세 가지를 동시에 병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묵주기도에 열중하기 위해 음향기기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여간 걷기운동을 하거나 운전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하고,묵주기도를 하면서 뭘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확고한 원칙이 하나 있답니다. '고통의 신비'를 바칠 때는 절대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거지요.'빛의 신비'다음 '고통의 신비'로 들어갈 때는 씹던 껌도 뱉습니다. 그래서 내가 묵주기도를 하며 아무 것도 먹지 않을 때는,옆 좌석의 집사람도 내가 '고통의 신비'를 바치는 중임을 쉽게 알아차린답니다.
'고통의 신비' 외에는 바담 없이 껌도 씹고 사탕도 먹고 과자도 먹습니다. 특히 '환희의 신비'중 제2단을 할 때는 마리아님과 엘리사벳님이 오랫만에 만나 즐겁게 음식을 나누는 장면을 떠올리며 나도 그 자리에 동참할 마음ㅇ로 뭘 먹고 제3단을 바칠 때는 마리아님의 해산 후 몸조리를 생각하면서 먹습니다. 재4단을 바칠 때는 마리아님이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시면서 음식도 가져가셨을 것을 상상하며 먹고,제5단을 할 때는 잃었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을 떠올리면서 뭘 먹습니다. 또 '빛의 신비'중 1단을 바칠 때는 옛날 추억 속의 '보례떡'을 그리워하면서 먹고,제2단을 바칠 때는 가나 혼인장치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 함께 한 기분으로 뭘 먹습니다.
이렇게 묵주기도를 하면 기도가 재미있지 싶습니다. 이미 수수만 번 바치는 기도인데도 기도는 늘 새롭고 즐겁습니다. 내가 기도에 열중한다는 것은 기도 '지향'의 실체를 상상하는 것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지요하(소설가.태안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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