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1년 주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2011년 9월 18일(가해)

모든 2 2021. 4. 8. 17:58

 

「순교의 영광」(2011),황영준 신부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9,24)

 

 

+ 루카 복음 9,23-36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말씀의 향기>

 

비워야만 채워지는 삶  -김선태 야고보.삽교 주임

 

  세상 사람들은 높은 것,많은 것,큰 것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높은자리를 차지하고 많은 재산을 모으고 큰 평수의 집에서 살기를 원합니다.이러한 조간을 갖춘 사람을 보면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김없이 순교자 대축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가 기리는 순교자들 역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처럼 더 큰 것,많은 것,높은 것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달랐습니다.

 

  먼저 순교자들은 세상의 것과 하느님 나라의 것을 비교했습니다.  세상 것이 아무리 크고,많고,높다 해도 하느님 나라만큼 크고,하느님의 은총만큼 많고,하늘나라만큼 높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분들은 얻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높은 것을 얻기 위해선 철저하게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최고로 낮아지신 것처럼 낮아지지 않고서는 높이 올라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예수껫 말씀하신 '높아지려는 사람은 낮아지고 낮아지려는 사람은 높아질'이란 뜻을 알았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채우고 또 채워도 차지 않는 욕망 속에 사로잡혀 살고 있을 때 이분들은 자신을 비우며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비워야 만이 그 안에 가득 채울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크고 좋은 거소다는 보잘것 없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에 감사했습니다.

 

그 결과 이 분들은 천상으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습니다. 이 세상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에서 살게 됐습니다. 이 세상 전부보다 훨씬 많은 천상의 선물을 가지게 됐습니다. 즉,하늘나라를 선물로 주셨고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받게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무조건 경쟁해서 얻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때 거져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오늘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의 삶을 반성해보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천상에 계신 순교자들께 나약한 나 자신과 우리 모두를 위해 당신들을 닮은 굳은 믿음,항구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전구해주시기를 청하며 기도합시다.

 

 

<사회 속 교회>

 

  사회교리의 역사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담고 있는 사회교리는 어떠한 역사를 가지고 있느가? 사회교리는 역대 교황님들의 대사회적인 회칙과 함께 발전해 왔다. 1891년 5월 15일 교황 레오 13세는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반포한다. 이 회칙에는 주로 노동자의 문제들이 다루어졌기 때문에 '노동헌정'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당시 서구하회는 산업화에 따른 사회 문제,특히 노동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되었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유럽사회를 산업사회로 변모시켜가고 있었다. 신생공업국들의 정치 및 경제체제는 모두 시장 안에서의 자유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모델을 채택하였다.

 

  당시의 자유주의 정치,경제체제는 전례 없는 문제들을 발생시켰다. 사회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분열, 양대 계급간의 심각한 갈등,노동자에 대한 사용주의 무자비한 착취,소수 독점 자보과 대다수의 빈곤 등의 문제로 병들어가고 있었다. 더욱이 자본가 계급은 자신의 이윤들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을 무자비하게 운영하고,국가의 정책과 입법을 좌지우지하면서 자신들의 이권을 추구해 나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유 시장과 노동자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등장한 것이 마르크스주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당시의 사회문제들이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시장 운영 방식에서 비롯한다고 비판하면서,자유주의와는 정반대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시장 안에서의 완전한 자유 경쟁이 아닌,생산 수단의 국유화와 국가에 의한 경제 통제와 계획이었다. 이 사상은 극도의 빈곤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던 노동자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 노동자뿐만 아니라 많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교회는 침묵할 수 없었다.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혼란은 교회에도 커다란 도전이고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레오 13세 교황은 새롭게 발생되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정리하였고,그것이 「새로운 사태」라는 사회교리의 주요한 근간이 되어,역대 교황들은 이를 기준으로 당대의 또 다른 사회 문제들에 접근하면서 회칙을 발표한다.「새로운 사태」반포 4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된 비오 11세의 「사십주년」,요한 23세의 「어머니요 스승」과 「지상의 평화」,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과 「팔십주년」,요한 바오로 2세의 「노동하는 인간」,「사회적 관심」그리고 「백주년」,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표된 현 교황의 「진리안의 사랑」등의 회칙들은 사호교리를 이루는 중요한 근간이 되는 것이다.

 

  사회교리는 막연한 세상이 아닌 구체적인 삶의 조건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빛을 제공한다. 따라서 신앙과 세상 속에서의 삶을 분리 시키지 않아야 하는 우리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구체적인 우리의 삶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병 루도비꼬.전의 주임-

 

 

 

<문학 단상>

 

야,오늘 나가자

 

  활짝 웃으시는 얼굴로 어머니께서 "야 오늘 나가자"그러신다."어디로요?"하자 "내가 산송에 국수 먹다가 둔 것이 있는데 머저 먹어야지."라고 하시기에 "오늘 감기가 심하시니까 내일가면 어떨까요?"라고 달래드리자 어머니는 아쉬운 듯 머리를 긁적이신다.

 

  딸은 늘 걱정이다. 치매가 있는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어떻게 신앙을 간직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 "어머니,손은 왜 두 개일까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어린이처럼 빤히 쳐다만 보신다. 내가 "이쪽 손은 예수님 손잡고,저쪽 손은 성모님 손잡아야 하니까 두 개예요."하자 고개를 끄덕이신다. "하느님 집 잘 찾을 수 있도록 예수님 성모님 한번 불러 볼까요?" 하였더니 어머니께서 "예수님,성모님~:하고 따라 부른다. 주님께 고맙기만 하다.

 

  요즌은 삶으 질이 높아지고,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고 치매를 앓게 되는 노인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부에서 2007년부터 9월 21일을 '치매의 날'로 정하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치매 예방 및 치매 퇴치를 위하여 치매연구 및 관리 사업을 하고 있지만,사실 실생활에서 치매 환자와 더불어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치매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말들은 대체로 이렇다."배고파 죽겠어","내 돈지갑 어디 갔어?","내약 어디 있어?"라고 묻기도 하고 화장지를 찢어 차곡차곡 가방에 챙겨 넣고 두루마리 휴지를 또  찾으신다. 여름에는 긴소매 옷을 입고,가을에는 춥다고 하면서 반 팔 옷을 고집하시기도 한다.

 

  치매초기에 약을 복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조언하지만,많은 경우 가족들이 치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내버려두기 쉽고,나중에서야 치매 증상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게 된다. 시설에서 치매환자들과 지내다 보면 대화할 때 맞고 틀렸다는 이치를 따지기보다는 얼굴을 쓰다듬어 드리면서 "예쁘요."라고 말씀드리고 꼭 껴안아 드리면 좋아하신다.

 

  가정에서 치매환자들과 지내는 것은 더욱 어렵겠지만,긍정해주고 웃으면서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사랑의 향기는 가정과 이웃에게 감동을 주고 하느님 말씀을 전파할 수 있는 참 통로가 될 것이다.

 

-배 우슬라 수녀(거룩한 말씀의 회).대전 가톨릭 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