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1년 주보

연중 제27주일 군인 주일 2011년 10월 2일(가해)

모든 2 2021. 4. 8. 18:06

 

「군인주일」(2011),김경희 글라라,대전가톨릭사진가회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필리 4,9)

 

 

  마태오 복음 21,33-43

 

<주인은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지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저자가 상속자다. 자,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하고 그들이 대답하자,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있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말씀의 향기>

 

  군일주일"삶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조성준 안드레아 십자가의 성요한 성당

 

  오늘은 연중 제 27주일이며, 군인주일이다. 십년 전 육군을 제대하고,두 번 다시는 군에 가지 않겠다던 마음을 잊고 공군에서 두 번째 군생활을 하고 있다. 기대와 걱정의 감정이 뒤엉켜 시작한 나의 군종신부 생활은 비록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이 시간은 신부이기 이전에 한명의 신앙인으로서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새벽이나 늦은 밤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성당에서 홀로 기도하고 있는 장병을 보면서,'저들은 무엇 때문에 신앙이 저리도 두터울까?"하는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얻은 정답은 "죽음"이었다. 어찌보면 저들은 신부인 나보다 죽음에 대해 더 생각하고,더 잘 준비 되어있는 사람들이었다. 직업의 특성상 이들은 항상 죽음이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물론 죽음이라는 단어가 불길한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익숙해야 하는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이들은 한 순간의 조작으로 쇳덩어리를 몇 백 미터씩 이동시키니 항상 긴장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삶 자체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신들이 선택한 길이기에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자신들의 삶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반성할 기회를 본다. 하느님께 우리에게 주신 그 많은 은혜를 어떻게 신앙의 삶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를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좋은 것만 받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 얻게 되는 더 큰 은총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경계해야 한다.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아니 오히려 더 가지려 노력하는 오늘 복음의 소작인들의 모습을 말이다.

 

 군에 오기 전에 "군에 신앙심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대부분이었으나,지금은 이 사람들의 신앙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최고의 응답을 드리는 이들의 모습을 말이다.

 

 

<세상 속 교회>

 

사회교리의 원리(1)

 

  사람은 자신의 삶을 이끄는 원리들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어떠한 원리 혹은 원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판단도 바뀌고 삶의 방식이 변하며 운명까지 결정될 수 있다. 사회교리 역시 자신의 고유한 원리를 지니고 있다. 사회교리의 원리들은 교호의 근원적인 샘인 성경과 성전으로부터 비롯한다. 인간의 존엄성의 원리,공동선의 원리,연대성의 원리,보조성의 원리,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원리,참여의 원리 등이 교회가 세상 속의 사람들을 보면서 활동하는데 있어서 방향타가 되어주는 사회교리의 원리들이다.

 

  사회교리의 원리들 가운데 인간 존엄성의 원리는 다른 모든 원리들의 근원이 된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신앙인이든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든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사람이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사람이 존엄한 이유를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비교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어떠한 이유에서도 양도할 수 없는 존엄함을 부여하셨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의 모든 분야와 표현의 중심이 인간이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고,교회는 사회적으로 일치되어 있는 인간들 안에만 있고, 인간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무엇보다도 침해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을 천명하는 원칙에서 발견한 것이다.

 

  인간 종엄의 기원인 하느님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 속에서 당신의 사랑을 인간에게 드러내신다. 즉 삼위일체의 친교는 하느님께서 삼위의 관계 속에서 온전한 내어줌과 받음을 통해 사랑을 완성하심을 가르친다. 사람은 하느님 사랑의 친교에 부름을 받은 것이고, 그 모습을 사람들 사이에서 살 때 참된 행복을 누리며 자신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공동선의 원리는 삼위일체의 친교 속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살도록 이끈다. 공도언이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자기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를 뜻한다. 모든 이와 각 개인에게 속하는 공동선은 함께 해야만 달성할 수 있고 증대할 수 있으며,미래에도 그 효력을 보존할 수 있으므로 '공동의'것이다. 한 개인의 도덕적 행위는 공동선을 이루는 것일 때 완전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다른 사람을 '위하여'존재하며,서로를 '위하여'비우고 내어주는 것처럼,그 모습을 가지고 창조된 사람 역시 같은 모습을 살아갈 때 참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박상병 루도비꼬 .전의 주임-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군인주일 기도에 대한 추억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베트남 전장을 거쳐 육군 병장으로 병역을 마친지도 어느새 4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군대 시절 논산훈련소 조교와 베트남 전장과 전방 철책선 부대를 두루 경험한 처지라서 각별한 군대 시절 추억도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나는 군 제대 후  10년쯤 지나면서 우리나라 군대에 관해 뼈아픈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1961년 5.16쿠데타와 1979년의 12.12쿠데타,또 1980년 5.17군사정변 등을 보고 듣고 겪으면서 군에 관한 뼈저린 성찰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에는 우리나라를 위한 기도 중에 우리 군을 위한 기도도 많이 바치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태안 본당에서 내가 미사해설을 도맡다시피 했는데 '신자들의 기도'때 절절히 기도를 바친 적이 여러 번이랍니다.

 

  오늘 또다시 '군인주일'을 지내며,내가 태안 본당에서 미사 중에 바쳤던 기도를 소개해 봅니다.

 

  「만군의 왕이신 주님,군인주일인 오늘,우리 대한민국의 국군을 위해 기도합니다. 조국의 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우리 국군을 축복하소서. 험난한 세월,피 흘리고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 온 그 충절이 찬연히 빛나게 하소서. 그러나 주님,우리의 국군으로 하여금 국토방위와 평화수호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성스러운 절대 명제에만 오로지 충실하게 하소서. 정치권력에 오염된 일부 정치군인들이 우리의 군을 지배하지 않게 하소서.

 

  정의이시며 진리이신 주님,군이 정치에 개입하고 권력을 탐함으로써 비극의 악순환,불행의 늪 속에 빠진 많은 나라들-군이 부당한 독재권력의 발판과 모체 구실을 하는 저 아프리카와 중남미 후진국들의 실상을 우리의 군이 교훈 삼게 하소서. 더 나아가 군이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국토방위에 전념하는 것만이 우리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오늘 새로이 깨닫고 확인하게 하소서. 우리의 길잡이이신 주님,우리의 국군으로 하여금 우리나라가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방해자가 아닌 보호자의 역할을 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우리의 국군으로 하여금,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근로자들은 일터를 지키라고 하는 것만큼 군도 제자리를 지키며,피로써 이룩한 군의 고귀한 명예를 더욱 찬연히 빛내며 지켜나가도록, 우리의 군을 보호하소서.」

 

  이 기도문은 1987년 10월 4일치 <대전주보>에 실리기도 했는데,유신 시절과 5공 초기에 더 신랄한 내용의 글도 실어주곤 한 <대전주보>에 지금도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