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1년 주보

부활제4주일 (성소주일) 2011년 5월 15일(가해)

모든 2 2021. 4. 6. 15:12

 

「나를 따라라(요한 1,44)」(2011),대전가톨릭사진가회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0)

 

 

  +  요한 복음 10,1-1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돠.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 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듲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말씀의 향기>

 

  성소에서 성소가 나옵니다! "성소의 싹에 생명을!"  -백현 바오로.성소국장

 

  어느 날인가 저녁식사를 하고는 교구청에 함께 사는 신부님들과 휴게실에서 TV를 보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나오고 아이가 사는 집과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나오고... 다들 무슨 프로그램인가하고 보고 있는데 분위기가 점점 심각해집니다. 보신 적 있으신지요? 문제아의 행동을 고쳐주려고 만들어진 TV 프로그램,'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말은 안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신부님들의 모습이 장가 안 가기를 잘했다는 표정들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아이의 행동에 기가 찹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계속 보다보니 문제는 대부분 그 아이에게 있지 않고 엄마와 아빠에게 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달라지면서 순식간에 좋아지는 아이의 모습에 놀랍니다. 프로그램 명칭이 달라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우리 아빠가 달라졌어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단순히 아이 없다는 것이 다행인 것이 아니구나! 더 큰 몫이 주어져 있구나! 신부님과 수녀님이 부모의 모습으로 살아야 할 텐데,어떤 모습으로 보여질까? 달라지지 않으면서 달라지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

 

  오늘 예수님은 목자와 양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목자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목자를 따릅니다. 양들이 목자를 졸졸졸 따라가는 모습이 아무 생각없는 본능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양들은 낯선 사람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 달아납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습니다. 목자의 음성,양들은 그 속에 사신들이 먹을 풀밭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백성이 지도자를 목자로 부르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씀을 목자로 불리고 있는 바리사이들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너희가 목자라 불릴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양들을 먹일 풀밭이 있고 생명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전합니다.

 

  성소를 담당하면서 작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성소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성소를 소중히 가꾸고 돌볼수 있을 때 바로 그곳에서 또 다른 성소가 싹트고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단순한 진리가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분명 성소의 싹에 생명을 불어 넣으시는 분은 주님이시기에 부족함 속에서도 큰 희망을 품습니다.

 

 

<나눔살이 풍경>

 

우리의 존엄

 

  다람쥐와 토끼가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암수 한쌍의 개들이 정겹게 부대끼고, 할머니들은 토끼먹이 주시고,할아버지들은 장터 가서 막걸리 한잔 걸치고 오시고.. 아침기도,미사,묵주기도,저녁기도가 수도원처럼 되풀이 되는 곳! 바로 전의 '요셉의 집'입니다.

 

  전의 '요셉의 집'은 1992년 대전교구 황용연신부님(현 법동주임)께서 혼자 살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시설의 필요성을 통감하시고 많은 분들의 후원을 모아 비인가시설로 시작한 노인요양원입니다. 당시만 해도 양로운 하면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계시는 곳으로 인식되어 혐오시설 취급을 받아 '요셉의 집'이 오는 것에 대해 동네의 반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양원에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불효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구조가 핵가족화되고,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전됨에 따라서 예전과 같은 가족부양을 기대하기는 점점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2008년 노인요양보험제도의 도입에 따라 보험금 납입을 통해 국민 모두가 노인을 부양하는 제도로 바뀌었고,더불어 수많은 시설들이 생겨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부모님을 어디에 모셔야 가장 좋을지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좋은 곳에 모시려는 노력 자체가 효도가 불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의 '요셉의 집'도 기초생활수급자 어르신뿐 아니라 일반 어르신 또한 함께 모시는 중입니다.

 

  '요셉의 집'에는 장수하는 어르신들이 많으십니다. 60분중 104살 루시아 할머니를 피두로 101살 어르신 1분,90대 어르신이 10이십니다. 104살 루시아 할머니는 아직도 정정하셔서 혼자 화장실 가시고, 혼자 식사하러 나오십니다.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되고 첫 번째 받은 평가 때에는 건강이 좋아져 등급이 내려가신 어르신이 9명이나 되어 심사위원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한분은 등급이 아예 안나오셔서(너무 건강해지셔서!!) 할 수 없이 퇴소를 해야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나왔습니다. 22명의 직원들이 밤낮없이 헌신적으로, 부모님 모시듯 어르신을 모신 결과들입니다.

 

  모든 이가 석양의 노을과 같이 푸른한 말년을 꿈꾸지만 노인이 되어 아프게 되면 많이들 불쌍한 모습을 띠게 됩니다. 전의 '요셉의 집'은 그 모습을 존엄의 옷으로 감싸드리려 합니다.

 

  살아온 가치를 인정 받고, 힘든 삶의 무게를 지고 온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게 해 드리는 것이 우리 '요셉의 집'이 추구하는 최고의 돌봄입니다. '요셉의 집'은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후원자들의 따스한 마음과 존중을 합쳐 병자이기도 하고, 장애인이기도 한 노인들,가장 약한 예수님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 돌봄의 순간은,어르신의 존엄을 드러내려는 바로 그 순간은 우리의 존엄,우리의 '따스한 심장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많은 분들이 '요셉의 집'에 오셔서 자신의 따스한 심장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041)862-8268~9 http://www.josephmaul.org 

 

 

<문학 단상>

 

성소의 사람들

 

  "스키장 다녀오는 길인데 아이들 20명 정도 식사할 수 있습니까?"

 

  신부님의 전화다. 전화를 끊고 40분 정도 있으니 신부님께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오셨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스키복을 차려 입고 올망졸앙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니 봄ㅣ운에 가득 돋아난 화단의 새싹을 보는 것 같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무슨 좋은 일이 그렇게 많은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떠들었다. 신부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이들을 그렇게 신나게 하는가 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봇물 쏟아지듯 몰려나온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는 똘망똘망한 아이들을 보내고 빈집이 되어버린 듯한 방을 치우면서 신부님의 돌봄을 받는 아이들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속한 성당에는 교구사제가 다섯 분 나셨다. 그분들은 사제가 되고 나서 한결같이 어린 시절 신부님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그때 성소를 갖게 되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사를 하며 스키장을 다니며 등산을 하며 신부님처럼 되겠다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단다. 사제는 우리 신자들에게 보석 같은 존재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주님께서 던저주신 보석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본당신부님을 중심으로 부모의 기도와 희생,신자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얻어진 열매다. 어린 시절과 사제가 된 지금의 그분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 다듬고 다듬어져야 하는지,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기초를 놓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바르고 각자 다른 능력으로 어느 부분을 담당해 집을 지어내듯이 모두의 노력과 정성으로 지어낸 성소인 것이다.

 

사제가 없는 교회,수도자가 없는 교회를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의 숫자가 적어지고 편하고 좋은 것을 찾아 누리는 이 시대에 미래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묵상하게 된다.

 

  불 꺼진 신부님의 방을 보면 왠지 마음까지 빈것 같고 수녀님이 안 계시면 성당에서 찬기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신부님과 대화라도 나누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수녀님의 관심어린 말씀 한 마디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이 분들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신자들에게 위안이 되시는 성소의 사람들이다. 많은 사제와 수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또 그분들의 교회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예수님을 닮을 수 있도록 미사 중에 기억하고 기도하는 건 교회공동체 우리 모두의 몫이라 여겨진다.

 

 -안병숙 카나리나.대전 가톨릭 문학회-

 

 

 

 

'찬미예수'

 

오월

늘 푸른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