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1년 주보

주님 공현 대축일 2011년 1월 2일(가해)

모든 2 2021. 3. 27. 10:20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마태, 2,8)

 

 

  +  마태오 복음 2,1-12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말씀의 향기>

 

나는 메시아를 만날 수 있으려나?  -지경준 시몬. 홍성 주임

 

  우리가 정말 필요한 다이어트는 육체의 다이어트가 아니라 영혼의 다이어트다. 탐욕과 집착이 얼마나 해로운 뱃살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영혼의 뱃살을 뺄 수 있을까?

 

  '위대한 여행'은 러시아의 한 왕(아르타반)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떠난 여행을 그린 짧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아기 예수님은 베들레헴에 태어날 무렵, 그 탄생 소식이 아르타빈에게도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탄생하신 분이 '박해 받는 이들을 보호해주고, 억압당하는 이들을 다시 일으켜주며, 의로운 이들에게 보답을 줄 수 있는 분'이라는 약속은 그를 여행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런데 값진 예물을 들고 예수님을 만나려던 계획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아기 예수님에게 바치려고 했던 예물들을 여행길에서 만나는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었고 긴 고난의 여정 끝에 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늙은 거지가 되어 있었다. 늙은 왕은 그렇게 고대하던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지만 먼발치에서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께 드리려고 했던 모든 것을 낭비했습니다. 용서하소서! 그러나 주님, 저의 마음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저는 버릴 것을 모두 버렸습니다."

 

  '예수님에게 바치려는 것이 있거든 바로 가장 굶주리고 버림받은 네 이웃에게 바쳐라.'예수님을 향한 왕의 여정은 우리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왕의 여정은 예수님이 살아서 가르친 바로 그 길이었다. 왕은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그분에게서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메시아를 찾아가는 다섯 번째, 여섯 번째의 동방박사요, 또 다른 아르타반이다. 우리 인생은 주님을 만나기 위한 나그네 길이다. 누구는 일찍 주님을 만나 한 평생 축복의 길을 은혜롭게 걸어가고 또 누구는 평생 걸어도 그분의 흔적조차 만나지 못하고 고달프게 살아가지만 주님은 우리가 평생 찾아가야 할 별이고, 평생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 길 위에서 내 영혼의 뱃살인 탐욕과 집착을 모두 버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들어 있는 예물 상자들을 헐벗고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날씬한 영혼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은 어떨까?

 

  "주님, 저의 마음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저는 버릴 것을 모두 버렸습니다."

 

 

<시복 시성을 준비하며>

 

현대의 시복시성(1)

 

  요즈음 우리 교회 출판물을 주의 깊게 보신 분들은 '시복시성'이나 '하느님의 종'등 생소한 단어들을 볼 것이다. 이런 말들은 현재 한국 교회에서 한창 진행 중인 시복시성 과정에 사용되는 특수한 용어들이어서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시복시성'이란?

  시복시성은 시복(諡福)과 시성(諡聖)이 합쳐진 말이다. 시(諡)라는 한자는 '죽은 자의 생전 행적에 대해 임금이 사용할 경우에는 임금님이 아니라 교황님 혹은 교회가 죽은 이를 높여준다는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시복이란 누군가를 복자(福者)로 높여주고, 시성은 성인(聖人)으로 높여준다는 뜻이다. 우리 교회는 시복식이나 시성식을 통하여 누군가를 추대하는데 흔히 '복자품에 올린다.', '성인품에 올린다.'라는 말로 쓴다.

 

  복자란? 성인이란?

  성인(聖人)이라 함은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 아버지와 더불어 영복을 누리고 있는 모든 분들을 일컫는다. 그 성인들 중에는 베드로, 안나, 김대건 안드레아 등 성인품에 올라 우리 교회가 공적으로 공경하는 이들이 있는데, 대개 좁은 의미로 이러한 분들을 성인이라 부르며 이름 앞에 '성(聖)이 란 말을 붙여 '성 베드로'와 같이 부른다.

 

  복자(福者)라 함은 하느님 나라에서는 성인들과 똑같은 분들이지만 지상 교회 안에서는 다소 제한적이다. 성인이 온 세계교회 안에서 공경을 받도록 허락된 분들이라면, 복자는 한 국가나 특정한 지역에 국한된 분들이다. 먼저 복자품에 올려 한 지역에서 공경을 받도록 한 후에 공경이 확산되면 성인품에 오르도록 하기 때문에 '시복', '시성'의 순서로 용어를 사용한다.

 

  '하느님의 종'이란?

  누구나 다 시복시성의 대상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그 덕행으로 인해 성덕의 명성을 누리거나 순교로 목숨을 바쳐 명성을 얻은 가톨릭 신자가 대상자가 된다. 이런 이유로 시복시성 안건이 시작된 이를 일컬어 '하느님의 종'이라 부른다.

 

   -내포교회사 연구소장 김정환 신부-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

 

  우리 집에 왜 왔니?

 

 

   빠른 다리보다

   열린 귀가 멋진 토끼처럼...

 

  해가 바뀌는 이맘때쯤이면 제 나이에 맞지 않게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가수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남들은 일부러 새해 첫 날 처음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해돋이 관광도 간다는데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라니...

 

  다소 의아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끝까지 듣다보면 제 마음을 이해하실 거라 생각해봅니다. 노래가 끝날 무렵에 반복되는 '제대로 살고 싶어'라는 후렴 부분이 참 묘한 여운을 남기거든요. 한 해를 시작하며 '제대로 살고 싶다'는 이 말만큼 확실하게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요?

 

  지나간 날들의 실수를 다 털어 버리고 일말의 후회라도 남기지 않는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한결같은 태양이라도 새해 첫 날이면 유난히 더욱 더 크고 붉게 보이는 까닭도 바로 그 간절한 소망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어린 시절 자주 하던 놀이 가운데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놀이 모두 아시죠? 올해는 제대로 살고 싶다는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그 놀이를 하루도 빠짐없이 해 보려고 합니다. 술래는 하느님이시고, 그분이 제게 다가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실 겁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당신께서 만드신 이 '지구'라는 집에 네가 온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물으시는 그 물음에 한 줌 부끄럼 없는 답을 내 놓고 싶습니다. 2011년은 '토끼'의 해라고 합니다. 거북이를 무시하는 오만함과 제 꾀를 믿는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그런 토끼가 아니라,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그 큰 귀를 항상 열어 놓는 그런 지혜로운 토끼로 한 해 동안 한 번 제대로 달려보고 싶습니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 교수

 

 

 

 

2011년

사랑하는 일

회합하는일

치유되는 일

그리고

이루고자하는 소망들

모두 외롭지 않게

이루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