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세상]
모든 것을 생명으로 만나는 은총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 사람들
갈마동성당 한얼관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와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 사람들
2020년 9월 1일부터 내년 10월 4일까지 전 세계의 그리스도 가족은 '지구를 위한 희년'을 보내게 된다. 그동안 극심한 소비주의 때문에 무한정 뿜어낸 온실가스로 성한 곳 없는 지구에게 이제라도 안식년을 주자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지구를 쉬게 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에너지를 아끼는 절전 활동과 화석연료 대신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가장 시급하고 또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교회 내에서 유일하게 협동조합 형태로 이러한 에너지 절약과 전환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갈마동성당(대전교구)신자들이 운영하고 있는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이다. 올해로 설립 2년 차를 맞아 왕성한 에너지 자립 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합을 찾아가보았다.
갈마동성당으로 조합원들을 만나러 가는 날,아래에서는 9호 태풍 마이삭이 올라오고 있었다. 코로나에 이어 폭염과 폭우,태풍까지 겪어내면서 기후위기시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여야겠다는 조급함이 밀려왔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자 교육관(한얼관)옥상에 설치된 커다란 태양광패널이 보였다. 한달 평균 전기생산량이 2,200kw,11가구(4일 기준)가 쓰고도 남는 규모라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발전 시설을 조합원 스스로 만들고 운영해 온 것이다. 성당 카페에서 만난 조합원들에게 남다른 자부심을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다.
어떤 계기로 조합이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 '불휘'라는 이름은 조합설립을 추진하며 임상교 신부(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장)가 지었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에너지 정의를 바로 세우는 '뿌리'가 되자는 의미를 담았다. "에너지 정의,즉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만들고 나누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는 일"이라는 취지에 뜻을 같이한 여섯 명이 지금 조합의 씨앗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합이 추구하는 기본 원칙은 생태영성의 실천이라고 강조한다. "생태영성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생명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생명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을 만든 분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거죠."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의 조합원이자 생태영성강학회 회원들.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임상교(대건안드레아)신부,권군호(안드레아),최경애(마리아)
김정희(헬레나),이가용(안나),문서영(말가리다),윤방수(베드로)씨.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의 핵심 사업은 태양광발전을 비롯해 주택용 태양광 보급,발전소 모임 운영,EM제품 보급,에너지 교육 등이다. 특히 본당 공동체가 모여 공부하고 만든 태양광발전 시설에서 전기 에너지를 상업 생산한다는 의미는 크다고 권군호(안드레아)이사장이 귀띔해 준다. "에너지 생산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책임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에너지 생산을 통해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거기에 조합원의 수익 창출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적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실제로 조합은 지난 8월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고 앞으로 발전 수익금을 쪽방촌 어르신들의 전기료 보조와 같이 소외된 이웃을 돕는 데에도 쓸 계획이다. 사실 이런 선순환이 잘 이루어지려면 태양광발전시설을 더 많이 세워야 한다. 그래서 성당과 수도원,초등학교 옥상 등 유휴부지를 확보하여 제2,제3의 발전소를 설치하려고 협의 중에 있다.
조합원 문서영(말가리다)씨는 본당에 태양광발전소가 있어 뿌듯하단다.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태양광을 설치해서 에너지 자립을 조금이나마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성당에서 한다고 해서 기뻤고,자연으로부터 순수한 에너지를 얻는 일에 공동체 안에서 참여한다는 게 의미가 커요." 내친 김에 조합원들은 얼마 전 성당 입구에 태양광 휴대폰 충전소도 설치했다. 적정기술 교육을 받고 나서 패널과 납땜 작업까지 스스로해서 그런지 성취감은 두 배였다.
조합원들이 성당 입구에 만든 태양광 휴대폰 충전소.
신자뿐 아니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조합은 본당 신자뿐 아니라 외부에도 알려지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출자한 조합원이 90여명,출자금은 5천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에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었다고 교육이사를 맡고 있는 최경애(마리아)씨는 털어놓는다. "올바른 일이면, 또 원하면 다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일반 시민들의 태양광 인식이 아직은 부족하고 무엇보다 발전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더라고요."특히 성당에 발전소를 지을 때는 누수 위험이나 디자인 등 견해 차이 때문에 쉽게 결정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조합은 전기 생산보다 전기를 줄이는 양이 훨씬 많다. 조합원 서른 가정이 '절전소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모임은 쉽게 말해 가정생활에서 절전을 즐겁게 하는 모임이다. 함께 모여 한 달 동안 절전량을 합산해서 비교하고 공유한다. 조합원들은 이러한 절전 활동이 모여 우리나라의 예비전력을 줄이고 그것이 결국 화석연료 발전시설을 줄여나가는 첫걸음이 될 거라 굳게 믿는다.
발전소 모임원 중에 일명 '절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가용(안나)씨는 가족들의 변화가 가장 큰 행복이라고 꼽았다. "회사에 다니는 아들에게 멀티탭을 오프할 때마다 지구를 살리는 거라고 설명해주었어요. 작은 일 하나도 알려주니 습관이 되더라고요. 달마다 전기요금 고지서를 확인하는데,동일면적평균 전기 사용량이 계속 줄어 신기했어요."
절전하면서 신앙이 더 깊어진다는 최경애 씨는 "절전이 기도"라고 말했다. 절제를 통해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 기도이듯 절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느님이 주신 선물들을 아껴 쓰다 보면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단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인다면 내 가정,내 이웃의 환경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임상교 신부와 조합원들은 2년 전,월평공원의 생태숲을 파괴하는 아파트 대단지 건립을 막아냈던 때를 기억한다. '자본과 결합되면 가장 아름다운 곳에 집을 짓고 사유화하려고 하더라고요. 본당 신자들뿐 아니라 지역 시민단체가 한마음이 돼서 저지했는데 참 잘한 일이지요."사실 임 신부가 부임한 곳마다 사대강사업(진잠성당),석면광산폐기장건립(청양성당),등 지역의 환경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그때마다 그는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대열에 앞장섰다. 임 신부는 그 현장에서 혼자가 아니었다. 생태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던 본당 신자들이 늘 함께해주었다고.
올 가을 갈마동성당은 친환경 김장 담그기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청양성당에서 생태농부들이 준비한 무농약 배추와 청정 양념으로 건강하고 맛난 김치를 담글 것이다. 임상교 신부는 자신이 머물렀던 성당 신자들이 적정기술을 배우고 생태농을 하고 환경운동에 나서는 걸 지켜보면서 늘 드는 생각이 있다고 했다. "미안하죠. 그게 참 힘든 길이라는 걸 잘 아니까요."
'OECD 국가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 1위,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하위 2위,석탄발전 비중 상위 4위', 한국이 '기후악당'이라고까지 불리는 이유이다. 이제 기후행동을 하느냐 마느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주변을 둘러보자. 에너지자립을 위해 뛰고 있는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 같은 생태공동체가 있다면 적극 참여해보자. 우리가 지구에게 진 "생태적 빚"을 갚는 또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글:서의규 편집장. 사진:김숙 기자
《생활성서》 2020년 10월호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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