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1년 주보

故 경갑룡 요셉 주교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모든 2 2021. 1. 10. 19:39

故 경갑룡 요셉 주교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그분은 갈수록 커져야 하고

나는 갈수록 작아져야 합니다"(요한 3,30)

 

 

  여러분의 목자로,여러분의 주교로,여러분의 종으로 임명된 나는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마음으로 호소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겸손되이 주님께 되돌아가고,주님 안에서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교구장 착좌식 강론(취임사)중에서-

 

  경갑룡 주교님은 1930년 3월 11일 서울에서 출생하셨고, 1951년 9월 육군에 입대하여 1956년 5월 포병 대위로 전역하셨습니다. 군대 말년인 1956년 3월 성신대학(현: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셨으며,1962년 12월일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명동본당 보좌로 첫 발령을 받았기에 1964년부터는 황민성 주임신부님(제2대 대전교구장)과 함께  활동한 경력도 있습니다. 이후 주교님은 금호동본당 주임(1967~1969)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교구청과 성모병원 등에서 재무를 담당하셨습니다. 1971년 유학길에 올라 미국,로마,필리핀에서 영성신학과 상담학을 1976년 2월 3일 서울대교구 보좌 총대리 겸 명동본당 주임을 역임하셨습니다. 이 기간 중 1981년 11월에 구성된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주교 위원회에서 기념행사 위원장을 맡아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방한과 103위 시성식 행사를 총괄하셨습니다.

 

  1984년 7월 2일 주교님은 대전교구의 제3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1984년 8월 29일 착좌식을 거쳐 대전교구는 제3대 교구장으로 경갑룡 요셉 주교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새교구장이 임명될 때까지 통상 1년 이상이 걸렸기에 2대 교구장 황민성 주교님이 선종하신 지 5개월 만에 교구장으로 임명된 일은 이례적으로 빠른 결정이었습니다.

 

  경갑룡 주교님은 교구 사제인사와 재정 구조를 개선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구 조직을 1처4국(사무처,사목국,교육국,관리국,홍보국)으로 개편하고 인사원칙을 만드셨습니다. 또한,재정자립 원칙을 세워 해외원조를 더는 받지 않기로 하고 본당 교납금 제도를 정착시켜 재정을 확보하였습니다. 또한,사제들의 재능에 따라 봉사할 수 있도록 사제단에 각종 위원회를 두었고,늘어나는 신자와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많은 본당을 신설했으며 소외된 농촌 사목을 위해 공소 지도자 학교를 개설하셨습니다. 특히 성소의 개발과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셔서 1993년 '대전가톨릭대학교'를 설립하시고 교구 자체적으로 사제를 양성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몽골 등에 해외 선교사를 파견하시고,전파를 통한 복음화를 위해 '대전평화방송'을 개국하셨으며,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성가정 생명장학금'을 마련하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대전교구는 2004년 말 본당 107개,사제 236명,신하학생161명,신자수 21만 9천여 명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내외적으로 교구의 든든한 기틀을 마련한 경갑룡 주교님은 2005년 4월 1일 교구장직에서 은퇴하셨습니다. 2015년 12월 30일 뇌출혈로 쓰러지셨고,약 5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2020년 12월 16일(수) 새벽 1시 50분에 선종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