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여사울 성지(2)

모든 2 2020. 10. 12. 00:12

 

 

 

여사울 성지(2)

여사울 출신 김광옥 안드레아와 그의 아들 김희성 프란치스코는 2014년 복자품에 올랐다.

 

  1795년 말에 이존창 루도비코는 다시 체포되어 천안으로 옮겨져 6년 동안 연금생활을 하던 중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다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서울로 이송되어 의금부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했지만,누구도 밀고하지 않았다. 해음정법(고향으로 보내 처형하여 그곳 사람들의 경각심을 갖도록 하라는 판결)의 명에 따라 공주로 이송되었고, 4월 9일 정약종(丁若鍾)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아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어 참수되었다. 이때 그의 목은 여섯 번째 칼질을 받고서야 떨어졌는데,친척들이 그의 시체를 거둘 때는 머리가 목에 단단히 붙어 있었고,단지 실낱같은 흉터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가 수차례 배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회심하여 열성적으로 신앙을 살았던 평신도였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가경자'최양업 신부는 편지에 이렇게 남겼다. "이존창의 집안이 처음에는 모르고서 가짜 사제를 냈으나 나중에는 진짜 사제를 내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집안의 딸들에게서 두 명의 사제가 탄생되었습니다. 그의 딸 이멜라니아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조모이고, 저의 모친 이 마리아는 이존창의 사촌누이 멜라니아의 조카딸입니다." 이렇게 그가 한국교회의 전교 활동과 성장에 끼친 공헌은 지대하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두 분도 여사울 출신이다. 바로 김광옥 안드레아와 그의 아들 김희성 프란치스코이다.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는 대흥봉수산에서 순교한 복자 김정득 베드로와 함께 '의좋은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김 안드레아는 여사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그 지방의 면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50세쯤 되었을 때,같은 마을의 이존창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게 되었다. 본래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었지만,지나치게 사나운 성질을 지닌 그가 입교함에 이웃들은 몹시 놀랐다. 그러나 열심한 신앙생활로 자신의 한계를 잘 극복한 김 안드레아는 1801년 신유박해로 체포되어 수 차례의 신문을 받고 청주로 이송되었다가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고향에서 참수하라.'는 판결에 따라 복자 김정득 베드로와 함께 고향길을 향하던 그는 갈림길에 서서 손을 마주잡고 작별인사를 하였다. '내일 정오,천국에서 다시 만나세."고향에 도착한 이튿날 예산 형장에서 칼날에 목숨을 바친 그는 60세 가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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