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신평 원머리 성지

모든 2 2020. 9. 28. 20:57

 

1868년 무진년 가을 벼 타작을 하던 박 마르코와 박 마티아가 체포되어 옥에 갇힌 지 15일 후 둘은 함께 순교했다.

 

 

신평 원머리 성지

무진박해 때 순교한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에 있는 원머리 성지는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가 내포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1785년부터 조선 교회의 시작과 함께 교우촌이 형성된 아주 오래된 곳이다. '원머리'라는 명칭은 바닷가 갯벌을 논으로 개간하여 사용하기 위해 둑을 쌓은 '언(堰)의 첫머리'에서 유래한 이름인 '언두리'가 변형되어 생긴 말이다. 지역의 자연환경상 이곳에서 살았던 신자들은 염전,어업,농업에 종사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 시기에 원머리 출신 20명의 신자들이 홍주와 해미,수원에서 순교하였다. 특별히 1868년 무진박해 때 수원 감옥에서 순교한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의 유해가 원머리 성지에 안장되어 있다. 순교자 박선진 마르코는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모친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게 되었는데,외교인이던 부친이 천주교를 엄금한 까닭에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의 부친은 사제가 원머리에 와서 성사를 줄 때마다 가족이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금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그는 부친으로부터 가정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친의 뜻에 따라 열심히 수계하는 모범을 보여주었고,원머리 교우들과도 비밀리에 교류하면서 신앙을 굳게 지켰다. 그의 동생 박 요셉에 따르면 1868년 무진년 가을 벼 타작을 하던 중 박 마르코와 박 마티아는 체포되어 수원으로 잡혀갔다고 한다. 그는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면서 "천주님의 뜻대로 천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 영혼을 구하는 일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위로하였다. 또한, 박 마티아가 모진 고문을 못 이겨 배교할 뜻을 비치자 '주님을 배반하고 영원한 지옥벌을 받으러 하느냐?"고 깨우쳐,옥에 갇힌 지 15일 후 둘은 함께 순교하게 되었다.

 

  원머리 성지가 교회사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순교자들의 무덤이 현존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이 순교하고 난 후 이들의 시신은 같은 마을에 살던 외교인 서덕행이 거두어 원머리의 박씨 집안 땅에 안장하였다.

1989년 4월 4일 두 순교자의 해를 신평 성당 구내로 옮겨 모시며 현양비를 세웠다. 2009년 11월 3일에는 순교자 현양과 성지 개발을 위해 본래 두 순교자가 묻혔던 원머리 순교사적지 묘역으로 유해를 다시 이장하였다. 그리고 현양비로 수정하여 다시 세우고 묘역 또한 새정비하였다. 현재 두순교자는 한국교회에서 진행 중인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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