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신리 성지(1)

모든 2 2020. 9. 16. 02:23

 

성당 벽면에는 순교자들의 부활을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강복하는 모습과 다섯 성인의 대형 부조상이 설치되어 있다.

 

 

신리 성지가 위치한 충남 당진군 합덕읍 신리는

내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신리 성지(1)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1784년 이후 신리에도 천주교 신앙이 전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충청도 서북부 지역 즉 지금의 당진,서산,예산,홍성,청양을 일컫는 내포라는 지명은 '안쪽에 자리 잡은 갯가'를 의미한다. 이 내포지방은 삽교천과 무한천 두 물줄기가 평야와 어우러져 자궁모양을 하고 있는데,조선 시대에 수용된 천주교의 모태로서 '신앙의 못자리'역할을 하였던 지역이다.

 

  내포 천주교회의 역사는 1784년 여사울 출신 이존창(루도비코 곤지자)이 서울에서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존창이 전한 천주교 신앙을 내포주민들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생활 속에서 그 믿음을 실천하면서 내포지역의 천주교는 다른 어느 곳보다 빠르고 깊고 넓게 퍼져나갔으며,조선 시대 내내 확고한 신앙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다. 이처럼 내포 지역에 천주교가 왕성하게 전파된데에는 개방된 종교적 심성,신분적,제도적 차별이라는 동질성,외부 문물의 쉬운 유입과 이를 해석해 줄 실학자들의 포진 등의 이유가 큰 역할을 하였다.

 

  신리 성지가 위치한 충남 당진군 합덕읍 신리는 내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평야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지만,조선 시대에는 밀물 때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내포의 사도'이존창이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1784년 이후 신리에도 천주교 신앙이 전해지게 되었다. 이 시기 신리에 정착해 살고 있던 밀양 손씨 집안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했고,1866년 무렵에는 마을 주민의 대부분인 400여 명이 천주교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신리는 바닷길을 통해 외부와 접촉하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내포의 다른 교우촌들과 쉽게 연결된다는 이 점이 있었기에 조선 천주교회의 중요한 거점 지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865년부터 신리에는 제5대 조선교구장 성 다블뤼 주교가 거주했으며, 프랑스 선교사들과 선교 물품의 입국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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