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부여 지석리 성지(1)

모든 2 2020. 10. 26. 11:14

 

 

 

 

부여 지석리 성지(1)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는 100여 년 한국 박해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성 정문화 바르톨로메오(1801-1866년)와 성 손선지 베드로(1820-1866년)의 고향이다. 일명 기식이라고도 하며 1801년 충남 임천에서 태어난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는 한때 고을 원님을 지낸 바 있는데,손선지 베드로의 영향으로 입교하였고 입교한 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만 전념하였다. 박해가 일어나자 고향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하다가 동향인인 손선지가 이주하여 사는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 신리골에 정착하였다.

 

  신리골에 들어온 후,그는 교우뿐만 아니라 외교인까지도 차별 없이 상대했다. 또한,그가 당시 사회에서 행해지는 예법이나 규범을 잘 가르쳤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두 그에게 모든 예절을 물어서 행했다고 한다. 특히 교우들에게 교회에 관련된 예법이나 교리를 소상하게 잘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모든 교우들이 그를 대단히 존경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정문호는 전주 지역까지 박해가 진행될 것을 예감하고 오사현을 보내어 박해에 대한 전주 감영의 정세를 알아보게 하였다. 오사현은 비신자이기는 했지만,그 고을의 관직을 갖고 있어 감영에 쉽게 드나들 수 있었고, 평소 교우들을 많이 도와주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문호는 비신자이기는 했지만,그 고을의 관직을 갖고 있어 감영에 쉽게 드날들 수있었고, 평소 교우들을 많이 도와주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문화는 그가 감영의 소식을 알려오기도 전인 12월5일 담배 상인으로 가장한 전주 진영의 포교들에게 손선지,한재권과 함께 체포되어 감영 앞 구류간에 갇혔다.

 

  이곳에는 앞서 잡혀온 조화서,조윤화 부자와 이명서,정원지 등의 신자들도 있었다. 노구의 정문화는 3차에 걸쳐 심문을 받는 동안,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순간적이나마 마음이 흔들려 배교하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치명하자는 조화서의 권고와 격려를 받고 마음을 바로잡아 치명키로 결심했다. 그래서 원님에게 "하느님을 배반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라고 서슴없이 말했고 열심히 기도를 바치면서 마음의 평온과 기쁨을 잃지 않았다.

 

  12월 13일 그는 감옥을 나와 형장으로 가면서도 기쁜 얼굴로 열심히 기도드렸다. 사형장인 숲정이로 향하는 길에는 조화서 베드로에게 "우리가 오늘 천당 과거시험을 보러 가고 있으니 오늘이야말로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이오."하였고, 조화서 베드로 성인은 '그렇고 말고요,우리의 행복은 참으로 큰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끔찍한 형벌 중에 있지만,잠시 후는 곧 진복을 받으러 지금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응수하였다. 정문호는 자기 차례가 되어 휘광이가 칼을 내리쳤지만,칼이 빗나가자 고개를 들고 휘광이를 바라보며 "어찌하여 단칼에 목을 치지 못하느냐?"고 호령했다. 세번째 칼에 목이 잘렸는데 그의 목에서 흰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막골.작은재 줄무덤 성지  (0) 2020.11.09
부여 지석리 성지(2)  (0) 2020.11.01
여사울 성지(3)  (0) 2020.10.18
여사울 성지(2)  (0) 2020.10.12
여사울 성지(1)  (0) 2020.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