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여사울 성지(3)

모든 2 2020. 10. 18. 22:09

 

 

 

  여사울 성지(3)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의 아들 김희성 프란치스코는 1765년 여사울에서 태어났다. 1801년 부친이 순교하자 그 모범을 따르겠다는 의지로 그의 신앙은 더욱 굳건해져 갔다. 이후 모든 재물을 버리고 경상도로 이주하여 신앙생활을 하던 그는 1815년 3월,을해박해로 안동 관아를 거쳐 대구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관원들이 놀랄 정도로 항구한 신앙을 보여주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오랫동안 옥중생활을 하고 1816년 12월 19일, 당시 나이 51세로 대구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여사울 출신으로 대표적인 순교성인은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 형제이다. 이들의 조부는 복자 홍낙민 루카로 1786년 가성직제도 안에서 사제로 활동하였고,1791년 신유박해 때,정조 임금의 권유로 배교 하였지만,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보례와 고해성사를 받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1795년 배교자 한영익의 밀고로 주문모 신부의 입국 사실을 알게 되고 체포하려다 놓치게 되자 을묘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때,홍낙민 루카도 연루되어 두 번째 배교를 했다. 하지만 1801년 신유박해로 다시 체로되었을 때,그는 '저는 천주교 신앙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억지로 사악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10년 동안 이를 멀리하였으니 죄를 받아 마땅합니다. 이제는 천주교를 벌릴 수 없으며,예수 그리스도를 욕하지도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배교를 철회하고 서소문밖 형장에서 참수로 순교하였다. 아버지의 순교후 아들 홍기영 루카는 가족을 데리고 충청도 내포의 여사울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여사울에서 성장한 성 홍병주 베드로와 성 홍영주 바오로 형제는 회장으로 임명되어 열심한 신앙생활로 교우들을 꾸준히 보살펴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그들의 일상은 남을 가르치는 것과 격려와 병자 간호와 그밖의 자선사업에 골고루 바쳐졌다. 선교자들은 그들의 정성과 헌신에 감격하여 여러 차례 아주 중요한 일을 그들에게 맡겼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들은 선교사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일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순교자의 자손답게 혹독한 신문을 받으면서도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한 두 형제는 형조로 이송되어 그곳에서도 배교의 유혹과 형벌을 받았다. 어떠한 형벌에도 굴복하지 않는 그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1840년 1월 31일 성 홍병주 베드로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후 그 이튿날 동생 성 홍영주 바오로가 당고개에서 순교하였다. 당시 조선 법률에 형제나 부자를 함께 처형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생인 홍 바오로의 사형 집행일을 하루 늦추었던 것이다. 이들 형제는 1984년 5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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