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0년 주보

연중 제28주일 2020년 10월 11일(가해)

모든 2 2020. 10. 11. 23:50

여사울 성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여사울길 22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기념 성당

 

 

  +  마태오 복음 22,1-14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혼인 예복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하고 물으니,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말씀의 향기>

 

  포기하지 않는 하느님의 부르심  - 권선중 세례자요한 홍보국 차장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어떤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푸는 모습의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이 비유가 왜 기쁜 소식인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임금의 태도에 있습니다. 첫 번째,임금은 자신의 왕권을 이어받을 아들의 혼인 잔치에 이 나라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이는 바로 세상을 대표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초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백성의 대표들이 먼저 오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임금이 먼저 초대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이 임금은 초대장을 보낸 것으로도 부족하여 잔치 당일 종들을 보내어 초대받은 사람들을 데려오게 합니다. 종들은 바로 예언자들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임금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번째,초대받은 사람들은 무시와 냉랭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종들을 보내어 그들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어떤 이들은 폭력적으로 그 초대를 거절합니다.

  임금은 왜 자기 아들의 기쁨과 사랑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을 초대하여 어떤 이득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히 자신의 기쁨과 사랑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사람들을 초대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기쁨과 사랑을 우리와 함께하기 위하여 당신의 나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이기에 이것이 우리에게는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초대에 응답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폭력적으로 거부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들에게 있어 임금은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삶에 임금은 어떠한 영향력도 끼칠 수 없고 자신들이 임금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임금의 초대이지만 이를 거절하고 심지어 두 번째로 그들을 데리려 온 종들을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점점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하느님의 말씀과 계명보다 자신의 말과 기준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냉대와 무시보다 하느님께서는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기쁨과 행복을 우리와 함께 나누시려는 당신의 의지입니다. 그렇기에 다시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이 초대를 영예롭게 생각한 사람들은 혼인 잔치에 걸맞은 옷을 입고 참석했습니다. 그 옷은 바로 회개의 삶으로 엮어진 옷입니다. 헐거워지고 더럽혀진 누더기가 아니라 회개로 새것처럼 깨끗하게 된 옷이 바로 이 초대에 응하는 사람들이 입어야 할 옷입니다. 여전히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랑과 기쁨을 함께 나누길 원하시기에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과연 어느 옷을 입고 이 부르심을 응답하고 있나요?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편찬

 

83. 종교간 대화에는 어떤 유형이 있습니까?

 

  "여러 종교 전통의 전문가들이나 공식 대표들 간의 교류에서부터 종교적 가치의 완전한 발전과 수호를 위한 협력에 이르기까지,또는 영적 체험의 나눔에서부터 이른바 '삶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그 영적은 다양합니다."(「교회의 선교 사명」,57항)

 

  종교 간 대화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유형은 삶의 대화입니다. 지역 종교인들과 일상에서 서로의 기쁨과 슬픔,고민과 관심을 나누는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면서 종교 간 대화를 실천합니다.

 

  둘째 유형은 활동의 대화입니다. 지역 사회 문제의 해결 또는 인간 발전과 해방이라는 보편적인 공동선을 실현하고자 많은 종교인들이 어떤 형태로든 협력하고 있습니다. 기아와 질병,가난과 문맹,환경과 난민 문제를 해결하려는 종교인들 사이의 협력은 활동을 통한 대화에 속합니다.

 

  셋째 유형은  학문적인 대화입니다. 각 종교의 전문가들이 이웃 종교의 신념과 교리를 지성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 대화를 통하여 각 종교의 전문가들은 서로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발견하고 인정하며,시대가 당면한 문제와 도전에 대한 해답을 함께 모색합니다.

 

  넷째 유형은 영성적인 대화입니다. 이를 통하여 이웃종교인들은 기도와 영성,묵상과 수행 등 하느님이나 절대자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체험한 영적 풍요로움을 서로 나눔니다.

 

 

 

<사회와 교리를 잇는 길잡이>

 

탈북자들과의 삶에서 바라보는 통일

 

 

  탈북자들은 한국 땅을 밟으면서 많은 꿈과 희망에 큰 기대를 하고 들어옵니다. 그토록 꿈꿔 왔던 자유와 더는 누군가에게 감시받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마주한 한국은 너무나 차가웠습니다. 말 그대로 '탈북자'라는 꼬리표 때문에,남한의 사람들은 선을 그어 놓고 그들을 멀리합니다. 힘든 역경을 딛고 들어온 탈북자들의 남한에서의 삶은,함께 어울려 살기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곳에서,식당의 주방 안쪽에서 지내야만 합니다.

  탈북자들은 북한 땅을 넘을 때만 해도 남한 사람들을 한 민족으로 생각했습니다. 비슷한 외모,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다른 외국보다는 편안하게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북한에서 왔다.'라는 말한마디에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같은 민족이 갈라진 시간 동안 서로는 완전히 남남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우리도 지금 살기 어려운데 왜 자꾸 북한 사람들을 받아주는지 모르겠다."라고,"그 사람들이 한국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세금만 축내는 것"이라고,"우리도 살기 힘든데 정부에서 이들을 무조건 받아주니까 자꾸 넘어온다."라고 합니다.

 

  2019년 말 탈북자들은 대략 3만 3천여 명입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0.06%를 차지하는 탈북자들은 남과 북이 하나되어 사는 미래를 보여주는 작은 표본입니다. 하지만,현실에 있어 서로의 관계를 비추어 보면 '과연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만큼 부정적인 결과를 떠올리게 합니다.

  통일연구원이 국민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남북통합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이 57.8%입니다. 이는 절반 이상이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이기도 하지만,아직도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남아 있다는 의미도 새겨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의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에서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법합니다. 통일의 참된 의미를 새겨본다면,많는 이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권지훈 베드로 신부 대전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꽃이 지니

잎이 난다

 

잎이 지니

꽃이 핀다

 

알싸한

알뿌리 같은

우리의 믿음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