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 성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동상
솔뫼 성지(1)
한국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지
솔뫼는 '소나무가 산을 이루고 있다'하여 순우리말로 이름 붙여진 곳으로,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탄생한 장소이다. 1784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큰할아버지 김종현과 할아버지 김택현이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권유로 서울 김범우의 집에서 교리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자 가장인 증조할아버지 김진후 비오도 입교하여 가문이 천주교 신앙으로 귀의,솔뫼를 '내포 신앙의 못자리'로 만들었다. 1801년에 시작된 신유박해로 인해 증조할아버지 김진후 비오는 감옥에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1804년 체포되어 해미로 압송되었고 10여 년간의 옥살이 끝에 1814년 해미에서 옥사하였다. 또한,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는 1816년 안동에서 체포되어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당하였다.
1821년 8월 21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면천 고을 솔뫼에서 태어났다. 당시 가문은 증조할아버지 김진후와 작은할아버지 김종한의 순교로 집안의 가세가 기울었고, 또 언제 박해가 닥칠지 몰랐던 할아버지 김택현은 성인이 7살 되던 해에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로 가족들과 함께 이사하였다. 1836년 성인은 15세에 은이공소에서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학업을 이어나가던 중 1839년 기해년 조선에서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때 성인의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아들을 서양에 사제 수업을 받게 하려고 유학을 보낸 중죄인으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당하였고, 당고모였던 김 데레사는 앵베르 주교의 처소를 돌보며 신앙을 전파하다 체포되어 1840년 초 서울포청에서 순교하였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1844년 12월 15일경 최양업 토마스와 함께 부제품을 받았고, 1845년 8월 17일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조선인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조선교회의 3대 교구장인 페레올 주교와 5대 교구장이 될 다블뤼 신부와 라파엘호를 타고 제주도를 거쳐 강경 황산포에 상륙함으로써 조선 입국에 성공했고, 조선은 새로운 목자와 함께 최초의 조선인 사제를 얻었다.
조선으로 들어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45년 11월 서울에 도착하여 서울과 용인 일대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중 계속해서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라는 페레올 주교의 지시를 받고 1846년 5월 백령도로 향해 길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6월5일 관장과 시비가 벌어져 사공들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고문을 받았지만 배교하지 않고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순교했다.그렇게 조선의 첫 번째 사제인 김대건 아드레아는 사제로 서품을 받은 지 1년 1개월 만에 자신의 피로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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