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한다>함은 무슨 뜻인가/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예사로 쓰는 그런 뜻으로 <그분>(인격)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모르는 분,전혀 다른 분이다.<그분>이니 <그것>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을 뛰어넘어 계신 분이다.
청중이 장내에 가득하다 할 때와 성악가의 음성이 장내에 가득하다 할 때,우리는 같은 낱말로 전혀 다른 두 현실을 가리킨다.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 할 때와 친구를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 할 때 역시,같은 낱말로 전혀 다른 두 현실을 표현한다. 성악가의 목소리가 홀 안에 실제로 <가득한>것은 아니다. 또 우리가 하느님을 낱말의 예사스런 뜻 그대로 <사랑할> 수는 없다.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함은 삶과 삶에 따르는 모든 것을 온 마음으로 긍정함이다. 자기 삶을 위하여 하느님이 안배하신 모든 것을 유보조건 없이 받아들임이다. 예수께서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하셨을 때의 그런 마음가짐이다.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함은 다그 함마슐드의 저 유명한 말을 자신의 말로 삼음이다:
지나간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다가올 모든 것을 긍정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하느님께만 바칠 수 있다. 여기서 하느님께는 경쟁자란 없다. 이것이 하느님을 사랑함의 뜻임을 깨달으면 동시에 그것이 친구들을 온 마음으로 다정하게,열정적으로 사랑함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성악가의 음성이 장내에 넘쳐흐를 때,사람들이 아무리 발디딜 틈도 없이 몰려들어도 그 소리는 여전히 거침없이 울려퍼진다. 사람들의 존재가 그 소리에 위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일한 위험이라면,그 소리와 맞부딪쳐 방해해 오는 다른 소리일 뿐이다.
네 마음속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들어찼다 해도 하느님은 네 마음에 거침없이 사무쳐 오신다.
사람들이 있다 해서 하느님의 사랑에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일한 위협이라면,네 삶에 대한 하느님의 모든 안배에 네가 온 마음으로 긍정함을 훼방하려는 그런 사람들 편에서 생겨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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