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남부 침례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느 작은 본당을 방문해서 설리번 신부님과 대화를 나눈 다음이었다. 그러나 개종을 반대하는 가족들과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 가족 중에 가톨릭 신자는 한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3년 후 플로리다 잭슨빌에 있는 성 마태오성당의 예비신자 교리반에 들어가서 브라리언 캐리 신부님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나는 예비신자 교리반이 좋았고 캐리신부님도 참 좋은 분이셨다.
1990년 봄,예비신자들은 첫 고백을 준비하게 되었다. 우리는 말 할 수 없이 긴장했다. 우리는 플로리다 스위스의 메리우드로 갔다. 내 대모는 메리 코손 자매로 잭슨빌의 원죄 없는 잉태성당에 성 프란치스코 무료 급식소를 세운 분이었다.
우리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23년 동안 지은 온갖 죄들이 떠올라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신부님이 셀 수 없이 많은 죄를 들으시고는 충격을 받으실것이 뻔했다. 보속으로 '십자가의 길'을 열일곱 번은 해야 할 것이 분명했다! 고해소에 들어갔을 때 신부님과 나 사이의 칸막이가 고해에 지장이 될 것 같아 낮은 소리로 물었다.
"신부님,마주 보고 고해하면 안 될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3년 전에 만났던 설리번 신부님이 반갑게 맞아 주시는 것 이었다! 고해성사를 마친 후 걸어 나오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세상의 무거움이 내 어깨에서 전부 사라진 느낌!
정말 깨끗해지고 가벼워진 것 같았다! 대모님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기다리고 계셨다. 가톨릭신자가 아닌 내 가족들이 개종을 말리려고 애를 썼던 일이 생각나서 소리 내어 말했다.
"가톨릭 신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대모님은 내 말을 듣고 쓰러실 것같이 좋아하셨다. 그 후 몇 년이 흘렀고 그날을 회상하면서 내 생전 처음으로 느꼈던 그 날아갈 듯한 홀가분함이 지금까지도 고해성사를 볼 때마다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고해성사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멋진 선물을 주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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