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거산 성지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위례산길 394/http://www.sgm.or.kr
▲순교자의 길
순교자와 관련된 조각품과 한국의 103위 성인과 성거산 소학골 출신 순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55개의 대형 호롱등이 설치되어 있다.
+ 마태오 복음 15,21-28
<아,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주님,저를 도와주십시오."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말씀의 향기>
마부위침(磨斧蔿針): 노력과 인내 -서용원 다미아노 천안신부동 보좌-
말이 오가는 가운데 감정싸움(자존심)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사실은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라고요. 오해는 작은 데에서 오고,갈등과 분노는 아주 크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상대를 위하는 본질은 훼손되지 않으므로, 누구나 진의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달을 향한 손가락이 아니라 달의 그 모습을 볼줄 아는 지혜의 눈을 사용해야겠지요.
연중 제20주일 복음은 주님이 바닷가 근처 마을로 나아가시다가 만난 어떤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 여인은 자기의 딸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여인의 청에,훌륭한 치유자라고 소문났던 저 유다의 젊은 스승이 '모욕감'을 선사했습니다. '평화의 왕'이라고 불리신 예수님의 언사가 자못 공격적이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하였던 평상시의 처사에 부합하지 않아서 놀랍니다. '강아지들'이란 표현은 그 당시 이방인들을 낮추어 부르는 표현이었고, 듣기에 따라 '모욕감'을 느낄 만했습니다.
이쯤 되면 이방인 여인은 반발감을 가질 법도 했을 테데,오히려,'자비'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쓴 표현인 '다윗의 자손'이자 '주님'은 메시아를 드러내는 칭호이자 하느님을 가리키는 유대인들만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어떻게 그 이방인 여인이 그런 고백을 드린 가나안 부인은'소중한 딸을 살려야 한다'는 간곡함이 있었고,그래서 계속 소리치면서 부탁드렸습니다. 여기서 쓰인 '소리 질렀다'의 그리스어 동사 '에크라젠'은 미완료 시제로,한두 번 소리치고 만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엎드려 절하다'와 '주님,저를 도와 주십시오'도 멈추어있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없던 한 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생명의 원천'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살리기 위한 진심을 예수님께 건네 드릴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가나안 여인과 예수님 사이에 과격한 언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진의와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이 마주하였습니다.
혹시 누군가와의 대화로 단절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먼저 그 사람의 속뜻을 곰곰이 헤아려 봅시다. 그렇게 막바지 더위로 가득한 8월의 중간을 지나며 가나안 부인이 전하였던 열린 모습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시원한 물이 되어줍시다. 아멘.
한국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편찬-
78. 종교간 대화는 무엇입니까?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양식과 행동 방식뿐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비 그리스도교 선언2항)
제2차 바티칸 공의화(1962-1965년)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종교 간 대화를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으로 표명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여러 이웃 종교를 통하여 인간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기 시작하였으며,이들을 존중할 필요성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웃종교를 들여다보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와는 다른 행동 방식과 생활양식 그리고 계율과 가르침을 만나게 됩니다. 그 안에도 하느님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거룩하고 옳은' 내용이 적지 않으며 성령께서는 이웃 종교인들 안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을 활동하고 계십니다. 사실 서로 간의 공통점 때문이 아니라,차이점 때문에 종교 간 대화가 가능합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사잇길>
몸을 통해서 만나는 하느님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단절이라는 범유행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코로나19의 범유행 상황은 마음은 몸의 소통을 통해 안정되고 성숙하여진다는 것을 알려 준다. 즉 머리(사고)중심으로 마음을 통제하는 문제 해결방식에서 '몸을 통해서~'로 마음을 이해.소용하는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몸은 두 가지 양식을 가지고 있다.
삼자적 몸(body)과 일자적 몸(soma)이 있다. 바디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적 대상으로서의 몸이고,소마는 내 안으로 느끼는 감각적이고 주관적인 몸을 말한다. 마음과 분리되어 가는 대상으로서의 몸이 자기 자신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몸의 상호 작용 즉 마음과 몸이 연결되어지는 것,이를 자기로 통합되어 가는 심신(psychosomatic)작용이라 한다. 그리고 이 고정이 소마의 통합치유작용이다. 몸(soma)은 생명체이다. 그리고 소마는 인간의 구체적 움직임과 삶의 의미를 드러내는 생명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몸(soma)을 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자녀인 우리의 존재적 본질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일어나는 움직임 속에서 그 본질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그 움직임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관계 안에서 찾아야 하는 움직임의 진실한 동기와 방향에 관해서 묻고 선택해야 한다. 몸은 영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다.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잘 순환하여 건강해지면 이를 토대로 영성은 깊어진다.
교구생태환경위원회에서는 생태적 걷기와 걷기피정,초등부생태캠프를 통해서 영성으로 들어가는 몸의 인식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과의 공명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몸으로 삶을 충분히 향미하고 하느님과 소통하며 행복을 발견하시기를 기도한다.
-김혜원 요셉피나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내 마음 깊은 주름에
꾹꾹 눌러 쓰인
한 줄의 글
"언제 어디서든
이 어미는 너를 사랑한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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