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거산 성지 성당은 지상 1층 성당과 지하 1층 수산나 피정의 집으로
지어져 2011년 5월 7일 봉헌식을 가졌다.
성거산 성지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위례산길 394/ http://www.sgm.or.kt
+ 마태오 복음14,22-33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그동안에 당신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배는 이미 물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하시자,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주님,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다.
<말씀의 향기>
용기를 내어라 -노호영 미카엘 온양 보좌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늦은 밤,배를 타고 나간 호수에서 강한 맞바람으로 인한 험한 파도를 만나게 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베푸신 빵의 기적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벅찬 마음과 더불어 놀라운 마음을 금치 못했었는데, 한순간 상황이 180도 바뀌어 이제는 세상의 풍파를 만나게 됨으로써 두려운 마음,불안한 마음으로 호수 한가운데에 있게 됩니다. 오늘 제자들이 겪고 있는 이 상황은 어쩌면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늘 그랬듯이 벅찬 마음으로 교회에 모여 많은 일들을 하였습니다. 때로는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들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다양한 신앙 활동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올 초에 시작된 엄청난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불가피하게 제한 되고 또 사회적으로 완전히 다른 길을 맞이하게 될 것 같은 예측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오늘 복음에서 표현된 강한 맞바람,또 그로 인해 생긴 거친 파도가 제자들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상황을 우리도 똑같이 겪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동안 공동체 미사를 드리지 못했고, 지금도 서로가 모여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 더 조심하게 되며 때로는 자신이 속해 있는 직장에 따라 신앙의 모습이 위축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오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오십니다. 불안과 두려움 고난의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용기를 내어라,나다,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하시며 다가오십니다. 그리하여 베드로 사도는 그 누구보다도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다가섭니다. 비록 중간에 거친 바람과 파도를 보고 의심이 들어 물속에 가라앉게 되었지만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 도움을 외치며 그분을 향한 마음을 보여 줍니다.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베드로 사도의 이 모습이 팬데믹으로 인해 위축된 신앙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리 노력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두운 밤과 같은 상황이어도 먼저 주님을 바라봅시다. 바람과 파도가 거세도 주님께 다가서려는 용기를 잃지 맙시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잠시 물에 빠지는 현실의 어려움이 찾아온다 하여도 다른 그 어떤 대상이 아닌 주님께 도움을 청하며 주님을 향해 부르짖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라,나다,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편찬-
76. 대화란 무엇입니까?
"인간은 인격들 사이의 대화에서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기도 하지만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체험한다. 그는 자신이 진리를 완벽하고 온전하게 소유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하지만,깊은 신뢰를 가지고 다른 이들과 함께 그 진리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음을 발견한다. 상호 확인과 상호 수정,각자가 지니는 은사의 형제적인 교환은 늘 더 깊은 성숙으로 이끌며 그로부터 인격간의 공동체가 성장한다."(「대화와 선교」,21항)
일반적으로 대화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누며,혼자서 말하는 독백이나 일방적인 통보와는 구별됩니다.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과 오해를 극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상대방의 좋은 점과 다른 점을 알게 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대화는 우리를 성숙한 인간이 되게 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잘 알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존중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77. 대화는 어떻게 합니까?
"대화는 계략이나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유한 원칙과 요구와 품위를 지닌 활동입니다. 그것은 어디서나 불고 싶은 데로 부시는 성령께서 인간 안에 이루어 놓으신 모든 것에 대한 깊은 존중을 요구합니다."(「교회의 선교사명」,56항)
우리는 진실하고 겸손하며 솔직한 자세로 대화해야 합니다.
단순한 대립을 피하려고 겉으로만 대화를 하는 척하거나,남을 설득시키려는 전략적 의도에서 대화하거나,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하는 분별력 없는 솔직함은 피해야 합니다.
이러한 여러 모습은 보통 자기 확신이 부족하거나 자신감이 지나친 어리석은 사람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은 자신을 방어하고자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우월감을 가지거나 열등감으로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거나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입니다. 진정한 대화를 위해서는 마음의 정화와 회심이 필요합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사잇길>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전해 듣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사실이 아닌 잘못된 내용을 듣기도 합니다. 들은 이야기에 대한 진위를 따지기보다 자신이 들은 그 내용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평소 자신이 생각하고 의심했던 일과 맞아 떨어질 때 더욱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여진 내용을 다시금 다른 이들에게 퍼 나르기(?)시작합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 사이에 비일비재하리라 생각됩니다.
얼마 전 미국의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특별히 책의 내용 중 주된 관심은 남북미 한반도 평화에 관련해서 이루어진 회담의 뒷이야기들이었습니다. 글의 저자는 자신이 바라본 과정들을 열거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 남북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서술했습니다. 이에 당시 함께했던 다른 참도들과 우리 정부 측에서 회담에 관여했던 인물들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한 사람의 입에만 관심이 쏠렸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 언젠가 밝혀지겠죠.그리고 진실은 언제나 이길 겁니다.
남과 북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북측에 선의의 마음으로 다가가도 그 마음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다른 의미로 재해석해 비난합니다. 북측은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비난의 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측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없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정부에서 통일을 위해 행하는 모든 노력을 헐뜯으며 그저 퍼주기식,혹은 보여주기식의 '쇼'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편에서만 생각을 강조하고, 상대의 편에서 서로 바라봐 주지 않는다면,우리 모두가 바라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더 나아가 통일은 딴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과정은 모든 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아무런 대책 없이 반대만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비판하더라도 대사회적으로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진실한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의견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저 어느 한쪽을 비판하기 위한 반대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최소한의 구체적 제안과 노력을 함께 보여 주면 좋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전해 주신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기 생각에 갇혀 편협한 모습이 아닌,'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이끌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권지훈 베드로 신부 대전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소리 없이 오며
순간으로 머물다
바람처럼 스치는
삶의 시간들
주님!
제 손을 잡아주소서.
그 순간이
영원 하리이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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