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성녀 아녜스」6세기,모자이크,로마,성녀 아녜스 성당
+마태오 복음 3,13-17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말씀의 향기>
의로움을 이루는 길 -전원석 베드로 대전가톨릭대학교 전례음악원장 겸 신학원전례담당-
본당 주임 신부로 있었을 때 신자분들의 신앙 생활을 보면서 가끔 아쉽다고 느껴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세례 받으시고 곧바로 냉담하시는 분들을 볼 때입니다. 예비자 교리 시간에 주일의 의미를 그렇게 강조했고 앞으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겠다는 예비 신자분들의 다짐도 몇 번이나 듣곤 했지만 이내 성당에서 사라지신 분들을 보고 사목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많이 낙심해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온 지 1년이 조금 지났는데 작년 첫 학기에 부제님들과 세미나를 함께 준비하면서 이러한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죠. '새 영세자들과 정기적인 기도 모임을 만들겠다','반'구역 모임이나 레지오에 모두 참여시키겠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었던 건 다름 아니 부제님들의 눈빛이었습니다. 1년 후 실제 사목의 현장을 앞두고 사제직에 대한 열정과 다짐의 그 눈빛 속에 공생활을 앞두고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담겨 있는 듯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려고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십니다. 온전한 하느님이셨으며 죄에 물들지 않은 참인간인 예수님이 세례 받을 필요가 없어신데도 죄인들이 받는 세례를 받기 위해 찾아가신 것입니다. 왜일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모든 '의로움'을 이루기 위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의로움'을 이룬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겠죠. 인간을 첫 창조 때처럼 죄에 물들기 전의 하느님의 모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일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받으시고 성화시켜 주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반문하듯 인간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그 세례는 예수님 자신이 정화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물을 정화시키시고, 나아가 그 물에 닿는 모든 이와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례는 한 번 받고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도 성령의 도움으로 계속해서 완성되어야 할 성사생활의 시작임을 오늘 예수님 위로 내려오시는 성령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세례를 받고 홀로 공생활의 길로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요한은 어떠한 눈빛을 품었을까요? 앞으로 그분께 닥쳐올 수많은 유혹들,멸시와 배반의 아픔들,외롭고 험난한 십자가의 여정... 하지만 요한은 세례를 받으시고 당당한 그 길로 나아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부활과 구원의 길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확신했을 겁니다. 하느님을 "아빠,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모두는 이러한 구원의 확신을 가슴에 품고 다른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아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의로움'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길에 동참하도록 합시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3,27)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편찬-
51. 천주교의 전래과정에서 유교는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가톨릭교회는 민족들의 문화를 무시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거기에서 온갖 오류와 불순을 정화시켜 그리스도교 지혜로 완성시키고 완전하게 만들었습니다."(비오12세,회칙 Evangelii Praecones,1951sus 6월 2일)
명나라 말과 청나라 초에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중국에 전래 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에 온 선교사들은 중국의 문화를 존중하여 중국의 유학자들도 놀랄 만큼 한문실력을 쌓았으며, 유교 경전을 깊이 연구하여 중국인들이 이질적으로 여겼던 천주교을 쉽고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은 천주교가 결코 낯선 가르침이 아니라 유교의 가르침과 상통하는 종교이며, 더 나아가 유교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는 사상임을 설득하려고 힘썼는데, 이러한 선교사들의 신학을 '보유론(補儒論)이라고 합니다. 곧 유교의 경전애인 사상을 통하여 하느님에 대한 대충대효와 대군대부 사상을 가르치고, 유교의 인(仁)에 그리스도교의 사랑을,삼강오륜 등 유교의 윤리에 그리스도교의 윤리와 계명을 접목시키고, 유교의 조상제사와 상선벌악 사상을 통하여 그리스도교의 영혼 불멸과 천당 지옥을 설명하셨습니다.
이처럼 유교는 천주교의 동양 전파에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였습니다. 만약 선교사들이 유교의 개념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우월 의식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중국인들이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천주교는 이러한 보유론적 저술을 통해서 조선에 전해졌습니다. 초기에 천주교를 받아들인 이들은,한양과 그 인근의 남인에 속하던 유교 선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주실의』들을 읽으며 천주교를 유교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가르침으로 이해하였을 뿐 아니라,이를 조선의 상황에 맞게 더욱 실천적인 신앙으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교와 천주교의 만남은 조선의 천주교 전파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두부밥,인조고기밥' 함께 드실래요?
점심식사를 위해 어느 한 가정에 일곱 명이 모였습니다. 음식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랴 배우랴 만들랴 아주 분주합니다. 1,2년 전만 해도 어휘 소통이 다소 어려웠는데 이제는 제법 소통에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외국인들과의 식사였냐구요? 아닙니다.
한국 출생자 세 명,북한 출생자 세명,그리고 한구어를 제법 잘하는 중국 출생의 한 아이가 모였습니다. 메뉴는 두부밥!
고향을 북에 두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과 제3국을 지나 삶의 터전을 마련하러 대한민국에 온 사람들을 우리는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하지요. 하지만,저는 그냥 '윗동네 친구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한국 도착 후 국정원 조사와 하나원에서의 한국적응교육을 마치고 각 지역에 정착하게 됩니다. 각 지역에는 하나센터(북한이탈주민 지역적응센터)가 있어서 북한이탈주민들의 초기정착을 지원합니다. 하나센터에는 초기정착을 돕는 봉사자들이 활동하는데, '초기정착도우미'라고 부릅니다. 초기정착도우미는 윗동네 친구들이 지역에 도착하기 전에 그들이 살 집을 미리 청소(입주청소)하고, 1:1 매칭 봉사자가 되어 6개월 동안 지역의 관공서,은행,마트,재래시장 등을 안내하며 동행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를수록 서로의 신뢰가 쌓이고 두터워지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데요. 북한과 중국에서 아팠던 개인사와 정신적,심리적 어려움까지도 함께 나누는 이웃,친구가 되어 갑니다.
3년 정도 초기정착도우미 활동을 하다 보니 제법 많은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이 한국이었듯이 그들도 북한이었을 뿐입니다. 자유와 인권을 찾아 새로운 삶의 터전을 선택했고, 자신을 보호할 신분을 얻기위해 같은 민족이 사는 땅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따뜻하리라고 기대했던 곳에선 여전히 말투와 출생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낯선 시선을 경험하거나 또 다른 상처를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머지않아 옆집 길동이 엄마도 거리낌없이 윗동네 친구들과 함께 두부밥,인조고기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기대해 보니다.
*두부밥: 조미되지 않은 밥을 튀긴 두부사이에 넣어 매콤한 양념을 발라 먹는 것,유부초밥을 떠오르게 함.
*인조고기밥:인조기(콩고기)에 칼집을 내어 사이에 밥을 넣고 찜기에 쪄낸 후 매콤한 양념을 발라 먹음.
-오미영 수산나 대전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주님!
세례성사의 맑음으로
우리를 일깨우소서.
그 신선함으로
우리의 영혼을 씻어 내어
새로 나게 하시고
세상의 의로움이
빛이 나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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