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연중 제 18주일 2019년 8월 4일(다해)

모든 2 2019. 8. 4. 21:00

라파엘로「성녀 체칠리아와 성인들

1514, 220×136cm,볼로냐,국립미술관

 

 

  +  루카 복음 12,13-21


  <내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그때에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허러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내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말씀의 향기>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자  -안성준 도미니코 관저2동 주임

 

  돈이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사실 이런 이분법적인 질문은 그리 좋은 질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유용한 매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로 인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지요. 달리 말하면,어떤 것이 되었뜬 우리는 그것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독서와 복음은 좁게는 돈에 대해서, 좀더 넓게는 어떤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쉽게 접하곤 합니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지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근검절약하며 악착같이 모으지만,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 믿었던 돈은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싸움을 낳기도 하고, 심지어 자기파멸과 패륜범죄까지 이르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연을 잃고 재물을 개인의 만족이나 성취의 수단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1독서 코헬렛의 저자는 이렇게 외쳤나 봅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주신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가치는 허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지면 만족할 줄 알았건만, 더 채우기 위해 쩔쩔매고, 십 년 후 이십 년 후의 계획을 세우며 아등바등 살다가 결국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며, 현재도 미래도 살아본 적 없는 듯 허무해질 수 있습니다. 삶이 허무하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좌절감과 깊은 우울감에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허무에서 멈추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허무함을 통해서 우리는 추구해야 할 본연의 하느님을 닮아 창조된 사람이며,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이어 받아 하느님 뜻에 맞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오늘 제2독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본연의 가치, 하느님의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부유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임을, 재물이 모으는 것이 아닌 나누는 것임을, 욕구가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것을 추구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깨달아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고, 나에게 주어진 삶 안에 만족하여 감사드릴 수 있으며, 가난 가운데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천주교회와 이웃 종교   -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히 편찬 -

 

19.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부모님이나 가족의 묘지는 어디에 마련해야 합니까?

 

  "교회는 시신을 매장하는 관습을 여전히 선호한다. 이는 죽은 이들에 대한 깊은 존중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교리에 어긋나는 이유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화장을 금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하여,4항)

 

  죽은 사람의 장례를 경건하게 치르고 그가 묻힌 묘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조상을 공경하는 우리나라 전통문화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톨릭 교회의 신앙에도 부합합니다. 그러나 핵가족화와 거주지의 이전 등으로 선산 등 묘지관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매장지의 부족으로 화장이 널리 시행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에게 시신을 땅에 묻는 경건한 관습을 보전하기를 권장하지만 화장도 금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법률은 매장과 화장과 자연장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족 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분이 장묘와 관련하여 유언을 남기셨을 경우에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유가족의 도리일 뿐만 아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마태7, 12)라고 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그렇지만 별다른 말씀을 남기지 않으셨을 경우, 가족들과 상의하여 후손들이 돌보기 좋은 곳에 묘지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후손이 모두 가톨릭신자인 경우나 이들이 새로이 가족묘를 조성할 경우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분의 시신이나 유해를 가톨릭 묘지에 모실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를 화장하였을 경우, 유골을 납골당이나 묘지에 안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골을 자연에 뿌리는 산골(散骨)은 죽음을 자연이나 우주와 융합되는 순간으로 오해하도록 하거나 허무주의의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에 교회는 이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사잇길>

 

당신의 침묵은 죄악입니다.

 

  한 여학생과 그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름은 '그레타툰베리',현재 16세, 스웨덴에 살고 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에 가지 않고 그 나라의 국회 앞으로 나가 시위를 하고 있는데, 피켓에는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라고 적혀 있다.

 

  "우리가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미래를 구하려고 뭔가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죠! 우리는 기후를 위해서 학교에 가지 않고 있어요."

 

  스웨덴의 여름 평균기온은 섭씨 16.6도였다. 우리나라의 봄,가을과 같았던 여름이 작년에는 34도까지 올라 260년 만의 폭염에 시달렸다. 오랜 가뭄에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고, 만년설까지 녹아내려 산 높이가 줄어드는 등의 기상이변을 경험한 그레타 툰베리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이런 일들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후 정치인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질타하며 작년 8월 20일부터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돌입하게 된다. 열다섯 살 소녀의 1인 시위에 많은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광장이 아닌 학교에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우리가 기후학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기후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해결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정신을 차리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위기를 위기라고 알리지 않는 모든 언론들, 그리고 기후 위기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인 '척'만 한 모든 정치인들... 당신의 침묵은 죄악입니다."

 

  나는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는가? 기후 문제를 위해서 내가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강승수 요셉 신부  가톨릭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

 

 

 

희망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

 

나눔은

여름의 꽃처럼

선명한 사랑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