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텔로「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453,188cm,나무,피렌체 대성당 부속박물관,피렌체
+ 루카 복음 10,38-42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주님,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지기 않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가톨릭농민회'가 기후변화를 막는다 -강승수 요셉 대전가톨릭농민회 담당
세계의 청소년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여 시급하게 행동하지 않는 어른들을 향한 분노다. 매주 금요일마다 10대 청소년들이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광장으로 나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미래를 빼앗지 말고, 제발 책임 있게 행동해 주세요!"라며 절규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말씀하신 "세대 간의 정의"의 실현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하는 지구상의 재앙들을 대략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갈수록 혹심해지는 가뭄과 홍수, 태풍과 폭풍,대규모 산불,벌과 나비 등 곤충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수많은 종들의 멸종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도 녹아내리고 있지만, 히말라야와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그리고 안데스산맥의 만년설이 급속히 녹아내리고 있고, 그런 하천에 의지해 살아가는 세계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의 운명이 갈수록 위태로워져 가고 있다.
대량 난민 현상 역시도 그 근본적인 원인은 혹심한 가뭄에 따른 대규모 기아 사태가 핵심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혹독한 가뭄 역시도 온난화와 무관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더욱 극심해진 미세먼지 역시 기후변화에 의한 현상 중에 하나이다.
이토록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것이 기후변화다. 현재 지구의 환경적 위기는 제2차 세계 대전 때보다 더 심각한 비상사태로 간주해야 할 상황이고, 따라서 전쟁상황에서 취하는 수준 이상의 비상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기후변화를 막는 효과적인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산업농'을 지양하고, 생태적인 농사와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농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가톨릭농민회'에서는 작은 규모로 생태적인 유기농을 실행하고 있다. 이분들은 당신들이 기르시는 작물과 함께 우리의 지구를 아름답게 유지하고 생태환경을 지켜내는 지구의 수호자들인 것이다.
후손들이 미래를 도둑질하지 말고 생태적인 농사로 생산된 먹거리를 적극적으로 선택하여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어야 한다.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편찬-
15. 가족이나 친지의 중대사를 이웃종교의 예식에 참석해야 할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효과적으로 보여 줄 수 있으려면, 그리스도인들은 존경과 사랑으로 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야 하며, 그들이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인식하여야 하고, 온갖 인간적인 교류와 활동을 통하여 사회 문화생활에 참여 하여야 한다. 또 그들이 민족적 종교적 전통에 익숙해져야 한다."(선교 교령 11항)
혼례식이나 장례식 등 이웃 종교 예식에 가게 될 경우,기톨릭 신자들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예식에 참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참석은 이웃종교를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따르는 적극적 참여나 참례와는 다릅니다.
이웃 종교와 자신이 가진 신앙의 차이를 분별하고 예식에 참석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따른 이웃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 경우 이웃 종교의 예식과 관련된 적극적인 행동을 피하고 존경을 표하는 합장, 인사,분향 등의 범위에서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러한 동작은 특정 종교의 예식이라기보다는 어느 종교에나 있는 공통된 의식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이웃 종교의 예식에 참석하는 가톨릭 신자는 예식 당사자를 위하여 하느님께 조용히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16. 설과 한가위 등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이웃종교의 예식입니까?
"너희는 타작마당과 술틀에서 소출을 거두어 들 일때, 이레 동안 초막절 축제를 지내야 한다. 너희는 축제를 지내는 동안, 너희의 아들과 딸,남종과 여종,그리고 너희 성안에 사는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기뻐하여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모든 소출과 너희가 손대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어, 너희가 한껏 기뻐하게 될 것이다."(신명16,13-15)
농경 국가였던 우리나라에서 한 해를 시작하는 정월 초하루와 풍성한 결실의 시기인 음력 팔월 보름인 한가위 등 명절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이어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며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를 합니다. 명절에 행하는 여러 풍습 가운데 조상 제사라는 유교적 요소, 집안의 평안을 비는 무속적 요소, 한해의 운수를 살피는 민간 신앙요소도 있지만, 명절의 주된 의미는 돌아가신 조상을 기억하며 살아 있는 가족과 친지가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의 풍습은 특정 종교의 예식이라기보다는 전통 미풍양속입니다.
각 민족 고유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것을 신앙의 빛으로 이해하려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명절을 뜻깊게 지내야 합니다. 농경문화가 사라진 지역의 신앙공동체와 가정에서는 명절의 의미를 계승하기 위하여 형편에 맞는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얼마 전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집 안이나 단지 내 곳곳에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들이 많아 돌아보는 내내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가장 특이하게 비춰진 곳은 엉뚱하게도 엘리베이터 안의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뜻밖의 생존경쟁의 치열함을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입주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 엘리베이트 안은 이삿짐들로 내부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사방이 두터운 보호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보호벽에는 대학노트 크기의 광고전단지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는데, 허가를 받은 업체들이 입주민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광고하기 위해 그 공간을 활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주민들은 애써 시간을 들이지 않고 필요한 정보를 쉽게 알 수 있고, 업체 입장에서도 주민들에게 직접 회사의 장점을 홍보하니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홍보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간 것처럼 놀랍도록 세세한 곳까지 배려한 제품들이나 서비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회사들이 소비자 한 명이라도 더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현실이 피부에 와 닿기 때문입니다.
한 장 한 장 안에 담긴 광고문구 뒤에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가장의 모습이 보입니다. 제품 사진 뒤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소중한 땀방울도 보이는 듯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 몇 초 동안 위로 올라가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주님,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주소서! 살아남는 곳이라기보다, 살아있음으로 행복하고자 하는 곳이 바로 당신이 만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내가 하늘을
짊어질 수 있는
부피는
어깨 넓이만큼,
이 좁디좁은 곳에
쏟아지는
하늘같이 넓은
사랑.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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