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5년 주보

연중 제 21주일 2015년 8월 23일(나해)

모든 2 2015. 8. 23. 05:54

천안 봉명동 성당(천안 서부지구)

본당 설립: 1985.2.19/주보성인:유대철 베드로

 

+요한복음. 6,60-69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말씀의 향기>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윤종학 베르나르도 강경 주임

 

  성체성사 안의 에수님의 살과 피!

  이것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육적인 몸이 아니라 부활하시어 영광스럽게 되신 몸이다. 성체성사에서 믿는 사람들이 함께 나눌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느님의 영역에 올라간 성령으로 가득 차고 성령으로 변화된 그분의 살과 피인 것이다.

 

  당신의 말씀을 믿기 어려워 못마땅해하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향해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시며 당신의 말씀을 수정하거나 번복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너희도 떠날 테면 떠나라!" 하신다. 그러면서 제자들의 결단과 선택을 요구하신다. 그때 베드로 사도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대답을 드린다.

 

  베드로 사도의 이러한 신앙고백은 먼저 알고 믿은 것이 아니라, 먼저 믿고 알아진 것이다.  우리가 안다는 것이 믿음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육적인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고 머리로 인식할 수 없는 것까지 믿음, 신앙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세상은 믿기보다 알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이렇게 때론 믿음보다 아는 것이 앞서기에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거북하게 들었던 제자들과 같은 마음을 먹게 된다. 때론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앎보다 믿음이 앞서야 한다고 들어 알고 있지만 믿기에 서툰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도 자주 신앙의 기로에 서게 된다. 우리도 예수님이 가르침에 회의가 생기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 어려워 신앙의 위기에 봉착할 때 예수님이 도우심을 청하고 의탁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묻고 계신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라고 하시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 드릴까?

 

  우리도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께는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하고 고백 드리자. 우리가 아는 것과 육적인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기억하며 한 주간 동안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하자.

 

 

봉헌 생활(3) -윤진 니꼴라 수녀/거룩한 말씀의 회

따름, 더 자유롭게 더 가까이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교회에는 초기부터 복음적 권고의 실천으로 말미암아 더 자유롭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더 가까이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여 각각 자기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하느님께 봉헌된 생활을 한 남녀들이 있었다."(수도 교령 1항) 이렇게 교회 역사의 초기부터 이미 열심한 신자들의 자발적인 희생을 통한 복음적 권고를 살고자 하는 삶의 형태는 있어 왔습니다. 특히 가난과 공동생활에 있어서는,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씩 나누어 받으며, 사도들의 지도를 받는(사도 2,44:4,35 참조) 신자 공동체와 예언의 능력을 지니고 동정을 서약항 처녀들도 있었습니다.(사도 21,9) 이러한 봉헌의 형태는 3세기에 접어들면서 교회 안에서 공적으로 천국을 위한 동정을 약속하는 관례가 생겨나면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한 박해가 끊이지 않았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최상의 신앙 고백은 순교의 화관을 받는 것이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신앙의 자유를 선포함으로써 박해시대가 지나가고 평온한 시대가 오자, 세상이 주는 평화에 젖어드는 느슨한 신앙생활도 더불어 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속적 평화의 상태에서 벗어나 하느님만을 섬기고 주님이 평화 안에 ㄱㅍ이 머물기 원했던 신앙인들이 세속을 떠나 광야에서 살며, 천상의 일을 위해 세상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고자 열망하는 삶의 형태가 새롭게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6세기까지를 수도  생활의 역사가 태동되는 사막 교부들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4세기 초 안토니오 성인(251-356)은 수도 생활의 근본이 되는 분명한 동기를 가지고 현재 우리가 일컫는 수도 생활의 역사를 열게 됩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어느 날 미사 중에 듣게 된 마태오복음 19장 21절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비유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하신 부르심의 말씀으로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자기 삶을 완전히 바꾸는 "복음적 회개"를 통해 자기에게 주어진 말씀을 굳게 믿고 따르게 됩니다. 또한 그의 복음적 회개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교회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끊임없는 기도와 보속을 바치는 지향과 함께 사막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영적 도움을 줌으로써 은수자들의 삶의 형태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가지는 영적 도움과 필요 외에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공수(共修)의 생활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보다 더 적극적인 신앙 고백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노력의 한 형태로서의 수도 생활의 역사는 점차적으로 공동체적인 회(會) 수도 생활로 발전해 가기 시작합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75)>

 

   사랑에 대처하는 다섯 가지 자세

 

사랑, 인생여행의 동반자

 

  살아가며 사랑을 주고받다 보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보게 마련입니다.

 

   1.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대개 무척 바쁜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안타깝게도 주변에 있는 그 누눈가가 자신을 배려하고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없습니다.

 

   2.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주로 상처에 대한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입니다.

받을 때의 기쁨보다 상실했을 때의 허전함을 더 오래 기억하기에 사랑은 마주치기 두려운 트라우마가 돼 버립니다.

 

   3. 사랑을 받았으나 계속 받기만 하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습니다. 처음부터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채워 있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냅니다. 늘 배고픈 상태로 사랑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합니다.

 

4. 사랑을 받았기에 주고 싶어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을 주는 기쁨으로 늘릴 줄 알기에 사랑을 할수록 점점 더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이들에게 다가가면 '긍정'이 전염됩니다.

 

5. 사랑을 받지 않았음에도 주고자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받아보기도 전에 사랑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반응으로 시작하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으로 채워 다른 사람에게까지 이르도록 하는 건 분명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현실은 언제나 힘겹고, 사람들은 언제나 차가워 보일지라도 행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사랑'...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사랑의 여행을 떠나고 있는지 뒤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일 년에 딱 한번

나를 기억하는 친구가 있다.

 

매년 요맘때 받는 목소리

"어떻게 지냈어?"

 

364일을 잊혀진 나는

간간히 그를

떠올린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한국 천주교회 성지 111곳

순례를 모두 마치고

 

  어느 날 문득 젊었을 때 즐겨 탔던 오토바이가 다시 타고 싶어 졌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타보기로 하고는 크고 멋진 오토 바이를 하난 장만하여 주말이면 날개 단 것처럼 여기저기 쏘다니곤 했다. 공연히 대둔산을 한 바퀴 돌아오기도 하고 강으로 바다로 틈만 나면 몰고 나갔다. 그러기를 1년여, 슬슬 재미가 덜해질 즈음「한국 천주교 성지순례」란 책자가 시중에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구입하게 되었다. '오토바이로 성지순례를 해보면 어떨까?'재미와 신심 제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요량이었다. 또 책자에는 방문하는 성지마다 스탬프 확인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이를 다 이행하면 주교님 축복장도 준다고 하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곳도 많지만 강원도나 부산 등 먼 곳을 가려면 연휴나 휴가기간을 활용해야 했고, 제주도 성지순례를 위해서는 배에 오토바이를 싣고 가야만 했다. 일기예보에 늘 신경을 썼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할 수 없는 날도 있었다. 작년 봄부터 1년 반 동안 이렇게 틈틈이 성지를 다녔다. 이번 여름휴가 때 추자도에 있는 황경한 묘 참배를 끝으로 책자에 소개된 111곳 성지를 모두 완주해 냈다.

 

  성지에 도착하면 일단 스탬프부터 찌고 나서 다음 일(기도하기 등)을 하였으니, '성지순례'라기보다는 '성지 순찰'이란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우리나라 성지 곳곳을 둘러보면서 이제까지 맛보지 못했던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서소문은 우리나라 103위 성인 중 44위가 성인품에 오른 곳으로 그야말로 한국 최고의 순교성지라 일컬을 만했고, 해미 등 또 다른 많은 순교성지에서 순교자들이 고귀한 생명을 바치면서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던 산하를 그 자리에 서서 똑같이 바라보며 그분들의 당시의 절박함과 애절함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굳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힌 곳, 태어나고 피난을 가고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던 곳 등 그분들의 발자취를 둘러보며 박해시기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굳은 신앙심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던 위 선조들의 삶의 향기가 얼마나 진하고 깊은지를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갈매못성지 기념전시관 입구에 걸려있는, 한국 천주교회 순교사의 토대를 마련하신 더블뤼 주교님의 좌우명이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

 

-유헌식 요한/원신흥동 성당-

 

 

생각의 끝자락에서

 

부모님이 계신 곳이

집이고

친구가 있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래서

집에 가거나 고향만 생각하면

언제나 설레이고

웃음이 절로 납니다.

 

꽃 필 때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르신지요?

 

첫 눈 올 때

누구와 찻잔을

기울이고 싶습니까?

 

황금만을 쫓다가

정작 중요한 지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바로

내 곁에 있는데

 

어디를 그리 헤매고 다니십니까?

 

집 그리고 고향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행복입니다.

 

가까이 있는

보석, 울타리

지금부터 찾으시고

누리십시오!

 

눈이 희미해져 오네요

머리가 희끗희끗 하네요

팔다리가 시려옵니다.

 

천당에 간 정주영 씨가

이병철 선배께

5만 원 꿔달라고 하니까

자네도 한 푼도 못 가지고 왔는가?

나도 한 닢도

못가지고 와서 없네!

 

숨이 가쁘기 전에

조금은 아쉬워도

즐기면서 삽시다.

 

마음먹기 달린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