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사순 제 2주일 2019년 3월 17일(다해)

모든 2 2019. 3. 17. 15:58

 

도보 성지순례(2008년)

2008년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으면서 도보 성지순례를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내포지역에서는 매년 두 차례 정기적으로 도보 순례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10주년이 되는 2018년 9월 1일에 제21차 순례가 솔뫼성지-합덕성당-신리성지-여사울성지에서 있었다.

 

   +  루카 복음 9,28-36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말씀의 향기>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송인찬 아우구스티노 세종성프란치스코 주임


  열흘 전 우리는 머리에 재를 받으며 회개와 보속의 사순 시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산에서 눈이 부시도록 변모하신 오늘 복음은 사순시기의 여정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오히려 부활 시기와 잘 어울리는 듯 싶습니다. 제의 색깔도 부활을 상징하는 '흰색'이어야 할 것 같은데, 여전히 회개와 보속을 상징하는 '자색'입니다.

 

  그렇다면 전례 분위기가 왜 이렇게 묘하게 짜여진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잠시 예수님의 발자취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앞부분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내용과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러한 흐름을 종합해 보면, 머지않아 돌아가실 것을 내다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상황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당신 말씀을 굳게 믿으라고 제자들에게 미리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때까지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라고 권고합니다.  '십자가의 신비'는 당연하면서도 참으로 오묘합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더욱 가깝듯이 고통과 죽음이 가까울수록 생명과 부활의 새벽 또한 가깝기 마련입니다. 동시에 이 십자가의 신비는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말해 줍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순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분 십자가의 길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먼저 이 사순 시기를 보내는 '목표'을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사순 시기를 단순히 극기나 희생을 실천하는 것만으로 끝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확실한 목표는 바로'주님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부활의 찬란한 영광은 누리길 원하지만,그 과정 중에 겪어야 하는 고통은 싫어합니다. 주님이 주실 달콤한 선물은 좋아 하지만,회개와 보속이라는 쓰디쓴 잔은 거부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주님께서는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시며 격려하십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겠지만,주어진 십자가를 잘 지고 가라고, 그러면 분명 부활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주님께서는 오늘도 축 처진 우리 어깨를 토닥 토닥 두르려 주십니다. 다 함께 부활을 향하여 힘차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시다.

 

 

  태양광,대안은 시민참여형 성공방정식...가톨릭에코포럼       -cpbc 뉴스 (요약)-


  서울대교구가 지난해 서울시와 태양광 발전 확대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교구 내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한 성당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가톨릭교회의 관심을 반영하듯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는 '한국천주교회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제로 서른 번째 가톨릭에코포럼을 개최하였습니다.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에 태양광 휴대폰 충전기가 들어섰고 수원교구 산북성당 교육관, 태양광 발전 시설이 햇빛을 흡수해 전기를 생산합니다.
  가톨릭에코포럼은 이와 같은 재생 에너지 확대를 위한 가톨릭교회 차원의 노력을 고민하고, 실질적인 행동 방안까지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전체 국토 면적의 2.5%만 있으면 가능하고 게다가 해상 풍력 발전이나 지열 발전까지 함께 활용하면 재생 에너지로 충분히 자립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가로세로 한 50km정도 태양광을 설치하면 우리나라에서 쓰는 모든 전기 사용량을 다 태양광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비용도 세계적 수준으로 보면 1kwh 당 140원으로 현재 우리가 가정용 전기요금으로 1kwh 당 280원 가량을 지불하는 것보다 저렴합니다"
  다만,재생 에너지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산을 깎고 나무를 베는 등의 모순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경계했습니다.
  아울러 재생 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이렇게 재생에너지가 확대될 수 있을  만한 성공 방정식을 갖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참여하고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모델이 독일이나 데마크 같은 경우에는 국가 전체에서 필요한 재생에너지 중에 50에서 70% 정도 시민이 직접 투자했습니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강우일 주교는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해야만 하는 당위와 실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일구고 돌본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을 멋대로 남용하고 훼손할 권한을 통째로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창조하신 창조주의 설계 의도대로 그 피조물을 잘 살려나가라는 책임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리스펙트~!!!

 

 

 

  다시 볼 필요가 없는 사람은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두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에게서 어떤 존경심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과는 행여 마주치기라도 할 까 봐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심지어 멀리서라도 그 사람이 보일라치면 눈에 띄지 않게 오던 길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단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사람은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두 번을 봐도 늘 고개가 숙여지는 사람에게서는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멀리서라도 보게 되면 한걸음에 달려가 인사하고, 용건이 없어도 그 사람 곁에 오래 머물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요즘 방송에서 유행어처럼 자주 듣게 되는 단어 중에 '리스펙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존경' 혹은 '존경하다'라는 뜻의 영어 'Respect'를 소리 나는 대로 읽어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Respect가 '다시'라는 뜻의 're'와 '보다'라는 뜻의 'spect'가 결합되어 '존경'의 의미가 되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내 주변에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리스펙트~!!"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린 그분들로 인해 좀 더 지혜로워질 겁니다.

 

  반대로 나 자신은 타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까요? 한 번 더 보고 싶어지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단 한 번이라도 마주치기 꺼려지는 사람일까요?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씀은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부단한 노력과 기도로 언제 어디서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이충무 바오로/작가,건양대학교 교수

 

 

 

들숨과 날숨

빛에서 빛

 

내 영혼 일깨워

말갛게 씻어주는

그런

날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