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연중 제8주일 2019년 3월 3일 (다해)

모든 2 2019. 3. 3. 20:30

 

 

예산본당 회장 피정(1938년 12월 29일)

회장 피정은 공소와 본당의 회장들이 며칠간 본당에 모여 기도하며 교리를 공부하는 자리였다. 일반적으로 농하기를 이용하여 시행되었고,피정 강사를 초대할 경우 교우들도 함께 강의를 들었다. 예산성당은 황정수 신부 재임기간인 1934년에 지어져 봉헌되었다.

 

 

 

  +루카복음6,39-45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말씀의 향기>

 

  생명을 만들어가는 말  -박상병 루드비코 대전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겸 학생처장

 

  "세 치 혀가 사람을 잡는다."말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우리의 신앙도 말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간직하고 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생명을 간직한 그 말씀은 저 하늘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사람이 되어 이 땅에 내려와 우리와 함께 사시며 생명을 주셨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머물지 않고, 생명이고 신앙 그 자체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말을 하며 산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 무언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어떤 말이 사람을,세상을 변화시키고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오늘 복음을 보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나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세 치 혀로 누군가를 바꾸고 변화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없을 때가 많다. 내 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남의 티를 뽑고 있지는 않는지 의기소침해진다. 들보와 티는 비교가 될 수 없는 크기이다. 그래서 입 다물고 다른 사람 일에는 신경쓰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에게 아무런 충고도,조언도 하지 않으며 살면 되는 것일까?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말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 내가 누군가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말의 속마음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참으로 저 형제를 내가 사랑하고 있고, 그를 생명으로 옮아가게 하고 싶어서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인지,아니면 다른 형제의 잘못을 지적하여 그를 깍아내리고 싶은 것인지,스스로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이라도 어떤 방법을 쓰는지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식별기준은 다름이 아니라,나의 말로 인하여 어떤 열매가 맺어지고 있는지를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좋은 나무로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우리의 길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스승이신 예수님의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잘한다 하여도 예수님만큼만 할 수 있다. 즉 사랑한다면 죽음을 선택하는 길이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나의 말을 옮기는 속마음과 방법에 사랑을 위한 죽음이 동반되고 있는지 늘 성찰하는 것이다. 그것이 상대방의 티를 가장 잘 빼낼 수 있는 길이다. 이제 이번 주부터 재의수요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그 길을 배우게 된다. 은총의 40일 동안 예수님의 사랑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되는 길을 배우자.

 


  3.1 운동 정신의 완성은 참평화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올해 우리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각계각층에서 활동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독립운동을 재평가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백 년 전에 많은 종교인이 독립운동에 나선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조선 후기 한 세기에 걸친 혹독한 박해를 겪고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한국 천주교회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런 까닭에 외국 선교사들로 이루어진 한국 천주교 지도부는 일제의 강제 병합에 따른 민족의 고통과 아픔에도,교회를 보존하고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교분리 정책을 내세워 해방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외면한 채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신자들에게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여할 것과 신사 참배를 권고하기까지 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천주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며 반성합니다. 그리고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침묵과 제재에도,개인의 양심과 정의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천주교인들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 기억하려는 것은,한국 천주교회의 지난 잘못을 덮으려는 것이 아니라,시대의 아픔과 좌절에도 쓰러지지 않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던 그들을 본받고 따르기 위함입니다.

 

  3.1 독립 선언서는 우리 민족의 독립이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단계라고 했습니다. 신분과 계층,이념과 사상,종교가 다르더라도 우리 민족은 독립이라는 목표를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 마주한 민족의 또 다른 고통,곧 분단과 전쟁,오랜 대립과 갈등을 겪었으며,이제 이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참평화를 이루기 위한 과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로의 다름이 차별과 배척이 아닌 대화의 출발점이 되는 세상,전쟁의 부재를 넘어 진정한 참회와 용서로써 화해를 이루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200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9항 참조)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과거를 반성하고 신앙의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한반도에 참평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덜어내기로 새로워지기


 

 

  1. 한 번도 안해 본 일을 새롭게 시작한다.

  2. 지금까지 해온 일들 중 불필요한 일을 멈춘다.

 

  이 두가지 중에서 어떤 일이 더 어려울까요? 둘 다 쉬워 보이진 않지만,개인적으로는 후자가 전자에 비해 조금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미지의 일을 시작하고자 하는 용기보다,습관적으로 반복해 온 일에 대한 타성을 버리고자 하는 결단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종종 회의를 열곤 합니다. 헌데,회의시간은 거의 늘 이런 말들로 채워집니다.

  "뭐 새로운 것 좀 없나요?"

 

  획기적이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느라 시간을 소모하는 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문득 이런 의문이 들곤 합니다.

  "왜 해 오던 일들 중 정말 불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는 논의 하지 않을까?"

 

  새 옷이 필요하다면 우선 옷들 가운데 불필요한 옷부터 정리하는게 순서일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옷장은 새 옷에 대한 욕망으로 자꾸만 비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리의 달인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로 정리의 비법을 요약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냈습니다.

 

  설렘이 없음에도 그저 버리기 아까워 움켜쥐고 있는 건 물건만이 아닐 겁니다. 설렘 없이 간직하고 있는 우리 안의 낡은 욕망은 생각보다 무겁고 다양합니다.

 

  사순 시기가 시작됩니다. 아무런 설렘 없이 반복된 타성의 옷을 버리고,진정한 설렘으로 이웃을 만나고 진정한 기쁨으로 서로 사랑하고자 하는 부활의 순간을 준비할 때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참 아름다운

영혼으로

피는

맑은 꽃

 

사람 꽃.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