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공소 현황과 약도(1968년)
예산군 덕산면의 덕산공소는 삽교본당에 소속되어 있었다. 해외 원조를 요청하면서 공소 현황과 공소 건물을 신축할 장소의 약도를 그려 교구로 보냈다. 공소의 위치가 "(덕산)면소재지에서 800m 떨어져 있는 옹기 공장 내"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자료 제공 :내포교회사연구소(041)362-5028
+ 루카복음2,41-52
<부모는 육법 교사들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을 찾아냈다>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하자,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말씀의 향기>
聖가정? 성한 가정이 있을까?! -맹상학 마르첼리노 천안불당동 주임
가족의 형태가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가족이 해체되어 가고 있습니다. 혼밥,혼술,혼영,가족보다는 식구를 기반으로 하는 다른 형태의 가족공동체가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 모두 살고 있습니다.
공영 TV 뉴스에 단골뉴스로 이런 기사들이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부모가 자신들의 아기를 그냥 집 안에 버리고 아이들은 지쳐 방 안에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돈 때문에 자신을 소외한다는 이유로 살해합니다. 부모는 자식을,자식은 부모를 버립니다. 단순히 가정이 흔들리는 수준이 아니라,이미 무너져 버렸습니다. 바벨탑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가정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 하느님이 원하시는 聖가정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지혜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가정은 분열이 아니라,사랑이 언제나 머물러야 합니다. 가정이 이기주의와 욕심이 아니라,사랑의 하느님이 숨을 쉬는 작은 성전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가정을 닮은 성가정이 되려면,다른 무엇보다 가장의 역할이 중요함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한 집안을 이끄는 가장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정도 처음부터 성가정은 아니었습니다. 성가정은 이루어 나가는 것이며,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요셉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약혼자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마음 먹었지만,하느님께 순종한 남자였습니다. 그리고 가장의 위치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하느님이 가리키는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 순종하였던 남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가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도 비록 고통 속에 있었지만,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렇게 성가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소년 예수님도 부모님의 속을 태우며 제가 아버지의 집에 있을 줄 몰랐습니까?하고 맹랑하게 대들었지만,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순종하며 지냈습니다. 그래서 성가정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콜로새서 3장 18절에서 성가정을 이루려면 이렇게 하라고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내된 사람들은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된 사람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자녀된 사람은 무슨 일에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집회서 3장 2절 이하에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인 동시에,"자신의 죄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을 하게 하는 힘은,바로 주님께 순종하는 데에서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얼마만큼 하느님 말씀대로 "가정에" 충실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가정 안에서" 주님을 얼마나 기쁘게 해 드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가정 안에서" 주님께 얼마나 순종하고 있습니까?
순종은 누구의 명령에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성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흐뭇한 웃음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오늘 하루 가정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 한가지씩 선사하셨음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아내는 남편에게,자녀된 분들은 부모님이 웃으실 수 있는 일 하나씩만 실천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고 성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길일 것입니다.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본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박동호 신부_
"사회정의는 오늘날 전 세계적 사회문제와 관련하여 요청된다. 이 사회정의는 사회,정치 경제적 측면들,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의의 구조적 차원과 그 해결책과 관계된다." 이 '불의의 구조적 차원'을 회칙은 제3장에서 다루고 있는데,이를 '무차별이며 일차원적인 패러다임' 곧 '세계화'의 논리라고 지적한다. 이를 반영한 것을 일부만(1장에서 밝힌 것들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진보와 인간 능력에 대한 비이성적 자신감" (19항): "기술과 기업 이익의 결합"(20항), "내다버리는 문화와 자원보존능력을 결여한 산업시스템"(22항)과 악순환(24항),광범위한 무관심과 동료에 대한 책임감 상실(25항): "일부 더 많은 자원과 사회적 정치적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의 이기적 관심"(26항): "물 자원을 사유화하여 시장의 규칙에 종속된 상품으로 만들려는 경향"(30항)과 "거대다국적 기업의 물 관리 시도"(32항)과 "기업의 이익과 소비에 기여하는,악순환을 가져오는 인간의 자연에의 개입"(34항): "거대한 경제세력,초국적 기업들의 경제적 이익"(38항): "지금의 문제의식 방식"과 "사회적 약자들과 멀리 떨어져","부유한 도시에서","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을 향유하는 "전문가들,여론 형성가들,소통 미디어와 권력"의 "실재의 중요 부분들을 무시하는 편향된 분석제시"(49항): "지금의 분배모델을 합법화하려는 시도"(50항): "구조적으로 부당한 상업관계와 소유 시스템"과 "차별화된 책임의무시"(52항): "정치,자유,정의에 대한 기술-경제 패러다임에 기초한 새로운 권력 구조들의 압도"(53항): "경제와 기술 사이의 동맹과 나약한 정치적 대응"(54항): "투기와 금융 소득을 우선하는 경제권력"(56항): "충돌에 대처해야 할 정치에 강하게 저항하는 막강한 금융세력"(57항)
"지구를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일
건전지 끝까지 쓰기,제대로 버리기."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 받으소서. 아멘
-한국천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동안 유지 비법
젊어 보인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입니다. 젊은 사람들도 '동안'이라는 말에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면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 만합니다.
한살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서 사람들은 참 많은 노력들을 하곤 합니다. 피부를 관리하는 건 기본이고 다양한 제품들로 주름 하나라도 더 생기지 않게 관리하기 위해 신경을 씁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주름이 생기지 않게 자외선 차단제도 열심히 바르고, 마스크 팩을 얼굴에 쓰고 종종 TV를 볼 정도면 나름 동안 관리에 노력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제 더 이상 피부로 젊어 보이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피부로 증명되는 젊음도 어느 정도 젊을 때나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떤 노력과 관리로도 더 이상 젊어 보일 수 없게 되자,저는 저보다 더 나이 더신 분들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며 유독 젊어 보이는 '동안고수'분들을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들의 동안 유지 비법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피부 관리가 아니라 '표정 관리'에 있었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많아도 웃는 분들은 한결 더 젊어 보였습니다. 반면 표정이 없거나 화난 듯한 얼굴을 하신 분들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이셨습니다.
옛 어른들이 어째서 '일소일소(一笑一小)일노일노(一怒一老)'하는 말로 웃음을 그렇게 강조하셨는지 이제야 그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옵니다. 한 살 더 먹어도 새해엔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젊어지는 신비를 체험해 보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가 더 크게 와 닿는 한 해의 끝자락입니다.
-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한 꽃처럼
묵묵히 피었다 지는
이 해는
늘 그랬듯이
보석이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했습니다.
2018년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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