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본당 방계공소(1967년)
당진본당 관할이었던 방계공소(당진시 송악읍 방계리)의 교우들. 공소 강당을 짓기 위해 해외 원조를 신청하며 사진을 찍었다. 오랜 숙원에도 불구하고 강당 건립은 1986년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 루카 복음 3,1-6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본시오 빌라도가 유다총독으로,헤로데가 갈릴레아의 영주로,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말씀의 향기>
다 함께 더불어 잘 살아보세! - 김용태 마태오 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오늘은 인권 주일이다. 이 세상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이들의 인권회복을 위한 노력을 다짐하고 기도하는 날이다. 인권을 회복한다는 것은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성을 회복시킨다는 것은 어떤 거창한 일이 아니다. 추우면 따뜻하고 싶고, 더우면 시원하고 싶고,힘들면 쉬고 싶고,병들면 낫고 싶고, 슬프면 위로받고 싶고,외로우면 함께 있고 싶고, 가책이 되면 용서받고 싶고, 보모님께 효도하고 싶고, 자식에게 잘해 주고 싶고, 배우자에게 더 멋있고 싶은 것, 그것을 인정해 주고 그렇게 하도록 기회를 주고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인권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고 인간성을 회복시켜 주는 거다.
결국 인권이란 인간답게 잘 살아야 할 권리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잘 살도록 창조하셨다. 당신 닮은 모습으로 잘 살아라고 당신의 사랑으로 창조하셨다. 당신 닮은 모습으로 잘 살아가라고 당신의 사랑으로 창조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이루어 가야 할 삶이란 것은 단순히 숨이 붙어 있다는 의미의 연명이나 구사일생의 생존이어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삶을 영위하면서 충만하게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홀로 잘 살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어떤 부분은 남지만 어떤 부분은 부족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 나의 남는 것으로 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너의 남는 것으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줌으로써 모두가 온전해지는 식으로 잘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처럼 산과 언덕들은 깎여 줘야 한다. 그래야 그 흙으로 깊은 골짜기를 메울 수 있다. 필요 이상의 것들은 나누어야 한다. 어려운 사람에게 더 큰 관심과 정성이 집중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가 더 많이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모든 곳이 두루두루 채워지고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구원의 모습이다.
이는 성탄 즉 강생의 신비 안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을 하느님처럼 만들어 주셨다. 존귀하신 하느님이 비천한 인간으로 내려오심으로써 비천한 인간을 존귀하게 들어 높여 주셨다. 이처럼 산과 언덕이 깎여서 골짜기를 메워 주는 삶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살리시는 당신 사랑의 구원방식이다. 내어 줌으로써 먹이시는 성체성사의 신비나,죽음으로써 살리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모두 이러한 하느님 사랑의 구원방식을 드러낸다.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오심에 앞서 선포한 회개란 이러한 하느님의 구원방식을 온전히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의미한다. 지금이야말로 그 회개가 절실한 때다. 결국 인권회복 혹은 인간성 회복이란 우리의 회개를 통해 받아들여지고 뿌리내려 열매 맺는 하느님 구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엄마의 신앙,삶의 여정 - 김명자 리드위나(향촌2구역)
철없이 젊은 날들을 다 보내고,이제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나. 먼 길 떠나야 할 그날을 현실로 받아 드려야하겠기에 엄마(모니카)를 생각하며 그리워합니다. 엄마는 훤칠한 키에 외모가 단정하고 사리판단이 분명한 분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꼭 미사포를 쓰시고 단정이 앉아 신공(기도)을 드렸습니다. 조과,만과,묵주기도는 물론 연도문 까지도 빠짐없이 낭랑하게 바치셨습니다. 83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병원에 한번 가지 않고 아픈데 없이 생활하셨습니다. 6남매의 맏이신 엄마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여자는 공부를 하면 안 된다고 매일 서당에 동생들을 데리고 가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어깨너머로 한글과 한문을 통독 하였습니다. 조침문,열하일기,사씨남정기,옥루몽 책을 일고 또 읽었습니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고 일주일만 아프다가 주님을 뵙게 해 달라고 염원 하였지만, 그 소망을 다 채우지 못하고 3일만에 성모님께서 오신다고 홀연히 막내딸 손잡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유복녀인 저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가셨셨습니다.
저는 엄마의 그 뼛속깊이 박힌 신앙심에 영향을 받아 많은 시련과 고통을 주님께 의탁하고, 엄마의 신앙의 정체성을 마음에 간직하고 엄마를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지구를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일 나무와 지구,그리고 나를 위해서 종이를 아껴요."
무분별한 벌목으로 숲이 파괴되고 지구 대기오염과 온난화 문제는 물론 생태계파괴,질병문제,어린이 노동문제까지 확산됩니다.프란치스코 교황님께 함께 기도합시다.주님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찬미 받으소서. 아멘
-한국천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메밀묵이나 찹쌀떡
겨울을 소리로 기억한다면 과연 어떤 소리일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명확하게 잘 떠오르지 않던 순간, 갑자기 소리 하나가 생생하게 허공을 가르며 제 귀에 들려옵니다. "메밀~묵이나 찹쌀~떡!"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하필 지금 왜 묵과 떡이라는 외침이 들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지만,그 소리가 참 반갑고 정겹게 느껴지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입김에 호호 불 만큼 추운 겨울밤,어김없이 어둑한 골목길에 들어서서 큰 소리로 메밀묵과 찹쌀떡을 외치던 그 청년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 정겨운 소리보다 더 따뜻하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소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저기요,잠깐만요! 찹쌀떡 두 개만.."
배가 출출하지 않으실 때도 어머님은 종종 메밀묵 청년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그리곤 두 개의 찹쌀떡을 들고 오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추운데 한 개도 못 팔고 가면 속상할 텐데 하나라도 팔아 줘야지.."
자주 간식거리를 사먹을 형편이 아니었음에도,추운 밤 담 너머에서 메밀묵과 찹쌀떡을 팔고 있는 청년을 걱정해 주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 때문인지 찹쌀떡은 늘 맛있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주전부리를 할 수 있게 된 지금,문득 어린 시절 그 겨울밤 그 아름다운 소리들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교수
주님이 삶에서
한 가닥 실을 뽑아
저 촛불을 밝히는
심지가 되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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