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소년직업보도소 개소 기념(1962년 6월 13일)
이 시설은 6.25전쟁 후 방항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훈련소였다. 민관합동기관으로 대흥동 본당에서 비용을 부담하며 운영하였다.
+ 마르코 복음 6,30-34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그때에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말씀의 향기>
오늘 다시 처음으로 말씀하시는 분 - 이윤제 베드로 서천어메니티 복지마을 총원장-
직업상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같은데,듣는 사람이 다를 때 그렇습니다. 같은 과목을 여러 반에서 가르치는 교사가 그렇고,늘 똑같은 장소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그렇고,레지오 마리애 훈화를 여러 번 해야 하는 사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같은 내용이라고해도,듣는 이의 태도에 따라서 내용이 다르게 전해집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사람과 비몽사몽 졸면서 듣는 사람은 같은 말을 다르게 듣습니다. 같지만 다릅니다.
이런 경험을 떠올리며 복음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됩니다. 익히 알고 있는 말씀이 그날의 복음으로 나오면 천천히 머물며 마음 깊이까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겉만 훑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말씀에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때문입니다. 다음주부터 5주 동안 연속해서 듣게 되는 요한복음 6장도 단순히 성체에 담긴 생명과 사랑을 바닥에 흘려버리는 일이 되고 말것입니다.
쉬려고 도착한 곳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군중들을 보았을 때 예수님 마음은 어떠셨을까?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어서 몹시 시장해 이제 막 식사를 하시려던 상황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과 상상이 들지만 복음서에는 "지금,나와 내 일행이 막 식사를 하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라든가,"좀 쉬었다가,당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테니 당분간이라도 우리를 쉬게 내버려 두면 안 되겠소?" 라는 말이 없습니다. 또한 당신의 계획이 어긋났지만,짜증이나 불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고,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신이 처한 상황보다 당신을 원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더 우선하십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십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이러한 마음과 행동이 우리가 배워 실천해야 하는 측은지심[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로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는 당신보다도 듣는 사람들을 생각하시면서 늘 처음처럼,새롭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선포하시고,듣는 이들에게 맞춰서 찬찬히 풀이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군중을 만나서 복음을 처음 선포하시듯,오늘도 미사에 참례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늘 들어온'말씀으로 흘려듣는지,아니면 '지금 새롭게'하시는 말씀으로 새겨듣는지는 우리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일을 날마다 반복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 삶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한다고 해서 정성을 덜해도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사람들을 대할 때,미사에 참례할 때,복음을 대할 때는 습관적으로 살던 모습에서 벗어나서 늘 처음처럼 정성을 다하셨던 예수님의 태도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아멘.
via의 시선(내가 사는 방법>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저의 기질인 것 같습니다. 안에 들어오면 밖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남을 하고 거처에 들어오면 만났던 사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청양에서 사목을 하고 있을 때,대전에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오기 싫어서가 아니라 대전에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미리 약속을 정하고 일정표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가야할 일이 있을 때만 나옵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즐거움과 고민을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예,맞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제가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곧 나의 삶이지요. 그래서 저는 저의 시간을 나눠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살핍니다. 제게 그가 맡고 있는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처해 있는 삶의 상태가 중요하지요.
필요로 할 때 거처를 떠납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만남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제가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모두에서 시간을 사용하다 보면,정작 제가 판견된 곳에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만나지 않아도 되는 만남을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혹은 모임의 효율성은 증진시키기 위해서 심지어 정치적으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밤이 있어서 좋은 시기입니다. 도시가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의 시간을 보내는 지금,밤이 있어서 좋습니다. 포장된 콘크리트와 건물의 냉방장치에서 분사되는 열기와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뒤집어 쓰고 사는 도시의 삶 속에서 움직임의 멈춤을 알려주는 밤의 시간은 하느님 섭리입니다.
오늘 밤,내일을 살펴봅니다. 가야할 곳과 가지 않아도 될 곳을 구분합니다. 가야할 곳을 위해서 가지 않아도 되는 곳을 일정표에서 지웁니다. 지워내는 만큼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겠지만,굳이 성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괜찮습니다.
어서 옵셔! 어서 옵셔!
새 동네로 이사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저와 동생을 불러 특별 지침을 내려셨던 어린 시절 일이 기억납니다.
"오늘 아빠 생일인 거 알지? 동네 사람들에게 절대 아빠 생일이라고 말하면 안 돼,알았어?"
어째서 이런 부탁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동생과 저는 대답 하나만큼은 큰 소리로 시원하게 해드렸습니다.
"걱정 마세요. 오늘이 아빠 생일이라고 절대 말 안할께요!!!"
하지만 그 약속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저와 동생은 엄마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번개같이 집을 뛰쳐나가 동네방네에 그 기쁜 소식을 널리 알렸기 때문입니다.
점심 무렵이 되자 한두 분씩 동네분들이 마당 안에 들어서기 시작했고,당혹스러워하시는 엄마의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저와 동생은 오히려 대문 입구에서 큰 소리로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어서 옵쇼~~~! 어서 옵쇼~~~!"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먹을 거 하나씩 싸들고 와 갑자기 근사한 생일상이 차려졌고,서로 서먹했던 관계는 그날로 사라지고 그 이후 동네 사람들과 우리는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모두 살기 어려웠던 시절,생일잔치 하나 하려고 해도 걱정부터 앞섰던 엄마의 마음이 훈훈한 인정으로 따뜻해지셨고,덕분에 저와 동생은 야단 대신 뜻밖의 칭찬을 듣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날이 아빠 생일 중에 최고의 생일날이었습니다. 마음만 가난해지지 않으면 매일매일이 생일잔치하는 그런 기쁜 날임을 우리 가족 모두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이 마음
담을 수 있을까
조금은
출렁거려도
믿음의 잔.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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