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연중 제 18주일 2018년 8월 5일(나해)

모든 2 2018. 8. 5. 22:30

 

라리보 주교의 문장과 표어

라리보(원형근)주교는 1948년 대전교구의 초대 교구장이 되었다. 그의 사목표어는 '별을 따라서'(Stella Duce)로 동방박사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별처럼,교우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료 제공 내포교회사연구소(041)362-5028

 

 

 

  +  요한 복음 6,24-35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군중은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라삐,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

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김수겸 프란치스코 대전가톨릭대학교 영성관장-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 자국 하나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픔의 자국으로 생각하고,어떤 사람은 아프더라도 피하지 않고 살아낸 삶의 자국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상처 자국의 의미는 무엇을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당신의 지워지지 않는 신앙자국을 남겨 주십니다. 이 신앙의 자국은 우리 안에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요한 14,10)입니다. 우리 안에 이루어 가시는 하느님의 일이 바로 신앙 자국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 자국의 의미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우리의 믿음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표징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수많은 군중은 이미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표징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요한 6,14)을 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표징이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 카파르나움까지 예수님을 찾아가게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놀라운 일만을 보았을 뿐 표징의 참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이 세상 안에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굶주린 배를 채워 주시는 표징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표징을 바라보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주린 배를 채웠던 많은 빵만을 바라보며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하고 말합니다. 이처럼 빵만을 기억하며 요구하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표징으로 주시며 '내가 생명의 빵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놀라운 일들이 예수님을 찾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시지 않는다면 그래도 예수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시지 않아도 우리가 예수님을 당신의 표징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 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우리 안에서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며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하느님을 알아보는,하느님의 살아 있는 표징을 알아보는 참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via의 시선(왜???)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땀방울이 흘러 내립니다. 애써 실내 온도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몸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알려고 하지 않아도 이미 몸이 반응합니다. 제가 할일은 대비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유기체인 지구가 전하는 소리는 절규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듣는 이 소리는 지구의 인내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제가 거처하는 공간 앞에 도솔산이 있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늦은 저녁이 되면 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뜨겁게 달궈진 건물 사이사이를 헤치고 불어오는 바람이 주는 느낌 그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감각입니다. 좋습니다.

 

  살다보니 삶을 위협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삶을 위협하는 수많은 것들이 이전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고 만들어진 것들이며 또 그렇게 선전되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해 준다는 어떤 것을 선전하고 사람들은 더 건강하고 오래살기 위해서 그것을 구입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건강하게 만드는 그 어떤 것을 발생시키는 원재료가 무엇이고 그 재료의 주된 성분과 혹 그것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은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좋다고 하니 믿고 구입합니다. 그리고 속았다고 분노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립니다.

 

  참 순종적인 국민입니다. 우리는 묻고,확인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재판관은 시간이라는 사실에 복종합니다.

 

  상존하는 위험 속에서 지냅니다. 먹고,마시는 것과 입고 자고 심지어 쉼과 회복을 위한 집까지.. 안전하지 않습니다. 위험사회 속에서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고 기쁘게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혹시 다른 이들이 규정한 포장된 행복을 얻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밤 12시, 몸을 스쳐가는 바람을 느낍니다. 부드럽고 시원합니다. 이 바람을 사제관 거처에 가득 초대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주는 바람입니다. 이제 잠시 눈을 감고 평화 속으로 들어가야하겠습니다.

 

 

소심과 세심의 차이

 

  때때로 별 것 아닌 일로 걱정을 하고 있으면 친구들은 어김없이 저를 보고 이렇게 놀리곤 합니다.

 

  "소심한 걸 보니 혹시 A형? 맞지?"

  "그냥 A형이 아니라 트리플 A형 같은데.."

 

  혈액행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을 별로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그래도 그런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해 이런 변명을 합니다.

 

  "소심한 게 아니라 세심한 거야!"

 

  소심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한 변명이었지만,그 변명 속에는 기왕이면 세심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저만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소심과 세심은 확실히 다릅니다. 소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염려에서 비롯되지만,세심은 상대방을 최대한 이해해 보려는 노력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소심이 돋보기로 자신을 확대해서 보는 일이라면,세심은 돋보기로 타인을 확대해서 보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소심해지고,타인에게 집중할수록 세심해집니다.

 

  소심해지면 불필요한 고민이 많아지지만,세심해지면 따뜻한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소심할수록 친구들과 소원해지고,세심할수록 새 친구가 하나둘 생기게 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소심함까지 더해져 더 무더운 밤이 되기보다,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세심함으로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내 영혼이 빈 곳간에

아름다운 삶을 채우는 것

 

하느님이 내리신

생명의 빵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