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환공소 강당 봉헌(1958년 6월 9일)
성환공소는 1910년대에 안성본당의 공소로 시작하여,1939년부터 천안본당의 관할이 되었다. 1958년 기와집 강당을 지엉 봉헌식을 했고,2년 후 1960년 3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교우들과 새집의 기와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사진제공:내포교회사연구소(041)362-5028
+ 마르코 복음 6,1-6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야고보,요세,유다,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말씀의 향기>
나의 약점,나의 성화 - 노승환 요셉 천안쌍용2동 주임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2코린 12,9) 바오로 사도는 나의 약점이 예수님의 힘을 끌어오는 자석이 된다고 하십니다. 내 실수와 허점을 인정하는 것이 예수님의 힘을 초대하는 힘이 됩니다. 내 단점과 약점과 허점을 그리스도와 이웃 앞에 겸허히 내어놓을 때,하느님과 이웃의 힘,그 사랑이 나와 합쳐져 우리의 힘도 강해지고,우리의 사랑도 커지고,우리의 삶 또한 풍요해집니다.
저는 아주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버럭버럭 화도 잘 내고,뭔가 집중하다 살짝 방해만 받아도 앞에 것을 다 까먹을 정도로 여유도 없고,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능숙하지 못합니다. 독선도 강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쉽구요. 철저하게 뭔가를 하려 해도 항상 빈틈이 많은 허당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이 약점,결점들을 하느님께서 어떻게든 메워 주시리라는 압도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실제로 저의 부족한 경륜은 총회장님을 비롯한 사목위원님들이 메워 주시고,부족한 지식과 영성을 수많은 신자분들이 채워 주고 계십니다. 저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허점,약점,결점들을 메워 주면서 이 교회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성령께서 우리를 채워 주고 계십니다. 살아 계신 성령께서 우리의 온갖 단점들까지 이용하셔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우리를 풍요롭게 해 주십니다. 우리의 빈곤을 이용하셔서 더 큰 풍요로 바꾸어 주십니다.
반면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가리려는 잘난 체,변명과 핑계는 우리의 단점구멍을 점점 벌어지게 만듭니다. 그 구멍으로 성령의 활동,다른 이들의 배려와 충고를 빠뜨려서 성숙과 성화의 힘으로 사용하지못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근간은 겸손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실수투성이,단점투성이,죄인입니다. 이 겸손이 하느님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은총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겸손을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더불어 이웃의 단점과 결점을 보완하고 덮어줄 관용과 포용 또한 청해야 합니다. 다른 이도 저를 그렇게 덮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나와 우리 공동체와 교회의 신비체가 무럭무럭 자라나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해서 하느님 당신이 필요합니다. 나는 우둔하여 안젤라,당신이 필요합니다. 나는 약해서 안드레아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인정과 요청이 하느님의 힘을 가져오고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via의 시선(어떻게 살까?) -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많이 저축(축척)할 수 있어서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위해 좋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매일 들을 수 있는 소리,'경제가 어렵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경제성장 혹은 발전은 역설적이기도 가난을 필요로 합니다. 즉 경제발전 혹은 성장의 조건은 가난의 체험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선까지 도달해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일까요. 경제발전이 성장을 전제하고 성장이 모두가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케이크를 충분히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면,현대사회에서 경제발전은 소득의 불평등 그것도 일반화된 불평등을 전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르주라투슈는 경제발전은 '소득목표에 한계를 두려는 인간성향을 이겨내도록 하는 전략을 상상하는 것과 연관된다'고 주장합니다. 저도 일정부분 그의 주장에 동의 합니다.
성장은 필연적으로 역설을 지닙니다. 성장의 대가로 치뤄야 하는 대기오염,미세먼지 등 환경문제로 공제해야 하는 가치가 복지를 위한 가치보다 커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미 우리는 성장의 역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점은,우리 사회가 축적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축적의 길을 성공의 길로 포장하고 추구해야 하는 우선의 가치로 홍보합니다.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나는 가난합니다. 심지어 가난의 경험은 생리적으로 불행감을 느끼게 만들고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새로운 필요는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이중적 불행이 성장에 대한 갈망을 불러 일으키는 요인이 됩니다. 그리고 축척이 가능한 사람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불평등을 더 확대시키는 정책을 해결책으로 내놓습니다.
1995년 UNDP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의 부유한 사람 225명의 재산 총액이 1조달러를 넘고,이 금액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연간 수입의 47%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전세계 인구의 부유한 1/5이 세게 GNP의 81%를 차지한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부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었을 것입니다.
솔로몬도 들에 핀 꽃보다 화려하게 입지 못했다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발전과 성장이 축척의 확대를 지향하는한,하느님 창조의 바닥은 파괴되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자리는 사라질 것입니다. 소득의 대규모 불평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소리의 분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유혹의 소리,지속가능하다고 말하면서 내놓는 소리들을 '보시니 좋았다"는 창조공명의 가치로 분별해야 합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그렇게 살면 무엇을 얻는가?" 저는 대답합니다. 행위한 만큼 창조의 바닥을 지켰다는 "보람"을 얻고, "아이들의 미래"를 얻습니다.
오늘은 레모네이드
최근 읽은 책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겐 장막절 기간 동안 네 가지 식물을 들고 기도하는 풍습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룰라브(대추야자나무),하닷사(도금양나무),아라바(버드나무)그리고 에트록(레몬)이 바로 그 나무들인데,각각의 나무들은 흥미롭게도 인간의 여러 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룰라브'는 맛은 있는데 향기가 나지 않는 식물입니다. 사람에 비유하면 성경이나 율법에 대해 아는 건 많은데 행동은 아주 그 반대인 사람들이 바로 룰라브형 인간에 해당됩니다.
'하닷사'는 거꾸로 향기는 나는데 맛이 없는 식물입니다. 천성적으로 선하긴 한데 성경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 선행을 행하는 데 한계가 있는 사람들이 하닷사형 인간에 속합니다.
버드나무인 '아라바'는 맛도 향기도 없는 무취무미의 식물입니다.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순간의 이익을 좇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라바형 인간으로 분류됩니다.
끝으로 '에트록'즉 레몬은 향기도 좋고 맛도 좋은 식물입니다. 사람들 중에 끝없이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레몬형 인간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는 것도 없고,그나마 알고 있는 것마저도 실천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한쪽 귀로 흘리고,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데 인색하다면 그 사람의 삶에서는 그 어떤 향기도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평소 커피를 마셨는데,오늘은 특별히 레모네이드를 주문해 봅니다. 아라바인 제가 언젠가 에트록이 될 날을 꿈꾸며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 잔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 봅니다.
-이충무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오늘 만난
마음
난 누구에게
내 등을
내어준 적이 있는가
혹
그 등에 모난
뿔은 없었는가
돌아보는 오늘.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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