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 서비스/ 장경린
봄이 오면 제비들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비 내리는 밤이면
빗소리에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
덤으로 얹어 드리겠습니다 아기들은
산모의 자궁까지 직접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꽁치를 구우면 꽁치 타는 냄새를
노을이 물들면
망둥어 뛰는 소리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정경유착이 용이하도록 국회와 증권회사는
여의도에 몰아 놓겠습니다
돌아가신 이들의 혼백은
가나다순으로 잘 정돈해 두겠습니다
가을이 오면 제비들을 데리러 오겠습니다
쌀쌀해지면 코감기를 빌려 드리겠습니다
-현대문학, 2001년 5월호-
퀵 서비스는 말 그대로 빠른 배달 서비스입니다. 일정액의 수수료만 지불하면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보낼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제 시간에 받을 수 있지요. 요즘엔 임신한 아내가 갑자기 먹고 싶은 별별 희한한 것들도 전화만 하면 바로 해결해 주는 곳이 퀵서비스입니다. 처음엔 고작해야 서류나 작은 물품을 주고받는데서 출발했겠으나 지금은 시장의 과다경쟁이 촉발한 측면도 있지만 그 밖에 다른 여러 이유로 취급하지 않던 서비스까지 많이 늘어났습니다.
실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란 욥기의 말씀처럼 이 시에선 온갖 버라이어티한 서비스 품목을다 보여줍니다. ‘봄이 오면 제비들을’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돌려 드리는’ 얌전한 서비스로부터 시작해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와 ‘꽁치 타는 냄새’같은 아직은 서정적인 것들을 거쳐 ‘아기들을 산모의 자궁까지 직접 배달’하는가 하면 자신이 남처럼 느껴질 때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까지 해준다니 서비스의 다변화가 참으로 놀랍군요.
낡고 헛김 빠지는 정경유착 이야기는 건너뛰고요. 혼백을 정리해 주고 코감기까지 빌려주겠다고 하니 가히 우리네 삶 전반이 퀵 서비스의 대상이 아닐 수 없네요. 화이트데이 주말에 함께 출장갈 종아리 싱싱한 여인이 필요하십니까? 아니면 재미없는 얘기에도 웃어주고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사람이 필요한가요? 자 그대들은 연분홍 치마 바람에 휘날릴 이 봄날 저 만능의 도우미에게 무엇을 주문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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