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친구 / 강승남

모든 2 2018. 6. 17. 17:06

 

친구 / 강승남

오래간만에 대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니
모두 다 대학생이 된다

삼십 년 전 그날로 돌아가
대학생처럼 낄낄거린다

얼마 전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서는
모두가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이 든 게 아니다
대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잠시 헤어져 있었을 뿐

중학교 때나 국민학교 때 친구들과 만나면
나는 금세 코흘리개 어린애가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더 먼 옛날로 돌아가
나 태어나기 전의 친구들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다시 어린 나무가 될 것이다
나뭇잎에 앉아 놀던 순한 바람이 될 것이다

아무런 걱정이 없던
그 오랜 날들의 친구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 다음 카페 ‘詩하늘’ 자작시코너에서 -

 

 

 오래 사귀어 도타운 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벗을 만날 수 있는 최대의 근거지는 역시 출신 학교다. 자원의 풍부함과 더불어 동창이란 전통적이고도 배타적인 유대, 그리고 가장 순수했던 시기의 추억을 공유하였기 때문인데, 이 시처럼 언제 만나도 부담 없이 그 시절로 돌아가 함께 추억의 목마를 탈 수가 있다. 그 때의 추억이란 대체로 먹고 사는 일과는 무관하다. 게다가 그 추억의 유전자끼리 맞붙기라도 한다면 이후의 나이는 몽땅 차감해도 좋을 만큼 그 인자는 매우 강력하다.

 

 하지만 근년엔 인터넷과 동호회를 통해 사귄 친구, 여성의 경우 학부모 모임 등에서 만난 친구와 더 가깝게 지내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새 친구를 사귐에 있어 옛 친구를 서운케 하지 말라'란 공자의 말씀도 있지만, 아예 새로 사귄 친구들로만 진용을 개비한 사람들도 있다. 같은 기호와 감성의 주파수를 가진 마침맞은 친구를 만날 가능성은 더 높아졌어도 양은냄비처럼 확 달고 팍 엎어졌다가 사소한 일로 어느 순간 싸늘하게 식고 찌그러지고 마는 경우도 인터넷 공간에서 흔히 보았다.

 

 그렇다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 동창을 만났다 해서 마냥 ‘나뭇잎에 앉아 놀던 순한 바람’이 되기도 어렵다. 세속적 타산이 개입되지 않았기에 마음을 활짝 열어 보여도 무방할 것 같은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풍진 세상은 ‘아는 놈이 도적놈’이란 경구를 환기시켜주는 일도 심심찮게 있으며, 호의에 등을 후려치는 호랑말코같은 동창도 가끔 있긴 있다. 

   

 하여 참을 수 없는 우정의 가벼움으로 결코 좋은 친구가 될 수는 없겠다.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란 말이 있다. 친구 없는 것만큼 적막한 인생은 없다. 함께 비를 맞아도 좋을 친구, 깨진 무르팍 어루만져줄 친구, 그와 함께라면 바보가 되어도 좋을 친구, 새벽 3시에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는 친구 (몇 년전 계명대 법대 교수였던 신현직이란 친구가 자살을 할 때, 죽기 2시간 전 새벽 3시 몇몇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받지 않은 일이 실제로 있었다), 긴 메아리로 부르고 응답하는  친구, 그대 그리고 나, 그런 ‘찐한’ 친구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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