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산행/ 김종근

모든 2 2018. 6. 17. 16:37

 

산행/ 김종근

 

대청봉 별빛 배낭 속으로 쏟아져 온다.

그 무게만큼 오히려 가벼워지는

내 일상의 무게들

 

시름 한 줌 들어내고

염소자리 별 넣고

짜증 한 줌 떨어내어

물병자리 별 넣고

귀때기봉 새벽바람에

더운 몸 땀방울 절로 씻기어지면

 

아침 배낭 속 별들이

햇빛 한 잎 문 산새 되어

푸드덕 날아오른다.

 

- 문학예술 2007 겨울호(23회 시부문 신인상 수상작) -

 

 

 70년대 중후반 군 생활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 밤마다 부대 뒷산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점호를 받았다. 그다지 힘들지 않게 오르는 산길이라 내무반에서 빳빳하게 도열하여 받는 것보다야 낫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역시 강제된 집단산행이고 보면 결코 가볍고 산뜻할 수는 없었다.

 

 대청봉은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가장 짧은 코스인 오색약수에서 올라도 4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힘든 산행이다. 그래서 아마 시인도 꼭두새벽부터 산에 올랐을 것 같은데, 대청봉 정상에 당도하여 배낭 속의 일상들을 내려놓고 대신 별들을 채운다. ‘시름 한 줌 들어내고 염소자리 별 넣고, 짜증 한 줌 떨어내어 물병자리 별 넣고’ 별빛으로 가득 채워진 배낭이 보물단지 같았겠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기꺼이 즐겁게 오르는 산행은 이처럼 무위자연이다. 노자의 생각처럼 사람은 자연 그 상태에서 자연의 일부로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기원전부터 내려온 주장이기도 하고, 18세기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며 한 번 더 강조한 바도 있다.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시름’과 ‘짜증’은 자연친화적 모드로 전환할 때 모두 ‘별 것이 아닌 것’이 되어 별빛 아래 묻혀버린다. 이성과 욕망이 충돌하지도 않으며, 욕망과 근심이 조우하지도 않는다. 다만 ‘귀때기봉 새벽바람’과 ‘더운 몸 땀방울’이 만나 나를 가볍게 탈속시켜줄 뿐. 그때 ‘아침 배낭 속 별들이 햇빛 한 잎 문 산새 되어 푸드덕 날아오른다.’

 아, 산이 나를 부르지 않아도 내일은 가까운 산에 한번 올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