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참 좋은 당신/ 김용택

모든 2 2018. 6. 17. 16:46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

 

- 시선집 '참 좋은 당신(2004 시와시학사)' 중에서 -

 

 

 원폭으로 모든 게 폐허가 된 절망의 땅 히로시마에서 맨 먼저 새싹을 틔운 것이 쇠뜨기라는 잡초였다고 합니다. 들판에 지천으로 널린 쇠뜨기의 새싹 안에는 핵폭탄보다 더 강한 에너지가 숨어있고, 그 새싹의 실제 팽창 압력은 수십 기압에 이르러 아스팔트까지 뚫고 나오는 것이겠지요.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무거운 흙의 두께를 뚫고 나올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닌 것은 희망과 생명력 밖에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그만한 유전인자가 왜 없겠습니까. 깊숙이 내재되어 방치되는 경우는 있겠지만 어느 구석인가에 그 에너지는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 에너지가 희망이란 또 다른 동력 에너지와 결합해 싹을 틔우는데 봄이란 계절만큼 적기는 없겠습니다. 봄은 해가 바뀌고도 다잡지 못한 우리의 자세를 쇄신토록 요구합니다. 얇은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소리와 절집 주춧돌에 닿아 튀는 빗방울소리가 봄을 재촉하였습니다. 봄은 원치 않는 사람에게도 오고, 난리블루스를 치지 않아도 옵니다.

 

 봉곳하게 망울졌던 홍매화가 휘파람새 노래에 어느새 활짝 피어 알레그로로 다가왔습니다. 때로는 사각사각, 몽실몽실, 보송보송 샤방샤방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참 좋은 당신‘으로 오셨습니다.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이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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