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여자/ 김운향

모든 2 2018. 6. 17. 16:07

 

여자/ 김운향

 

나비들은 저마다

꿀만 탐하다가 날아갔다.

꽃은 날아가려다 말고

이젠 아름다운 별만을 쳐다본다.

 

그립다 외롭다 말 못하고

홀로 바람 속의 말씀만을 듣는다

오늘도 늑대 울음소리 들리는 이 벌판에서

꽃은 그래도 아름다운 별의 말씀만을 듣는다.

 

- 월간 '스토리문학' 2009년 1월호 -

 

 

 이 시에서 꽃은 여성, 나비는 남성을 상징하는 전혀 낯설지 않은 전통적인 은유를 채택했다. 꿀만 취하고 날아간 나비, 따라나서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그리움만 켜켜이 쌓아 올리는 꽃. 이만하면 감춰진 메시지의 구도는 대충 짐작할 만하다. 그리고 ‘오늘도 늑대 울음소리 들리는 이 벌판에서 꽃은 그래도 아름다운 별의 말씀만을 듣는다’니 지고지순의 사랑을 지키는 순종형 여인네의 미덕이 고스란히 녹아있기는 한데, 과연 지금 시대의 시선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지, 시대에 합당한 여인상을 그린 것인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윌리엄 블레이크(W. Blake)는 ‘병든 장미’란 시에서 ‘오오 장미여, 병든 장미여!/ 밤을 날아가는 보이지 않는 벌레가/ 울부짖는 폭풍 속에서 그대 침상을 찾아냈어라./ 진홍빛 기쁨의,/ 그리하여 그의 어둡고 비밀스런 사랑이/ 그대 삶을 무너뜨리도다.’고 하였다. 장미는 여성의 고전적 상징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남성의 성애적 요소의 상징인 벌레에게 약탈당하고 있다. 또한 관능적인 기쁨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파괴적 심상으로 나타난다. 성적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뒤섞여 있어 에로스적 사랑의 파괴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김운향 시인의 ‘꽃’역시 블레이크의 ‘장미’와 다르지 않지만 그 ‘여자’는 ‘그립다 외롭다 말 못하고’ 홀로 조용히 그 상처를 다스려 간다. 하지만 남자의 권위를 내세우던 시대도, 여성이 핍박받던 시대도 지나간 지 오래다. 과거의 대표적인 여성 콤플렉스로 착한 여자, 맏딸,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여전히 유효하다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퇴행이다. 여성이 순종적이고 자기희생적이며 지적 능력보다는 외모를 중요시하고 자신의 능력개발보다는 좋은 배우자 선택에만 치중했던 시절의 관행적 의식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남성에 대항하는 온전한 주체로서의 여성상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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