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제라늄/ 박정남

모든 2 2018. 6. 17. 16:01

 

제라늄/ 박정남

 

일 년 내내 붉은 꽃을 피워대는

제라늄은 그 붉은빛 자체로

꽃숭어리가 뜨거워

들여다보는 내 얼굴도 화끈거려

 

주렁주렁 붉은 성기들을 쏟아 내놓는 제라늄이

언제부터인가 두 딸뿐인

내 음이 강한 집을 밝게 비춘다

 

그 줄기차게 피워대는 생식성 때문에

집에 들이게 된 우리 집의

사철 붉은 젊은 남성

아침마다 환하게 웃으며

딸들이 물뿌리개를 들고 달려가 물을 준다

 

- 시집 '명자' 중에서 -

 

 

 음의 소굴(?)에 들인 양의 붉은 생식성이라니 화끈거릴 만 했겠다. 하지만 시인이 부러 양의 기운을 집에다 들이려 그 꽃을 키우진 않았을 게다. 그저 꽃이 예뻐서 그 모던한 꽃 이름에 끌려서 집에다 들였을 터인데, 무엇보다 제라늄의 매력은 사철 붉은 꽃을 피우는데 있는 모양이다.

 

 시인은 그 붉은 꽃을 성기라고 하였으나 그건 은유가 아니라 사실을 은폐시키지 않고 곧이곧대로 진술했을 뿐이다. 박방희 시인도 ‘꽃’이란 제목의 시에서 ‘꽃은 식물이 몸속에 은밀하게 감추었다가 비로소 내놓은 내장된 성기라 할 만하다’고 했지만 그건 새로운 시안의 발견이기보다는 구체화된 과학적 설명이다. 나아가 꽃은 인간의 언어로 치장하고 결박하지만 순수한 자연의 포르노그라피다. 순결의 상징인 백합은 가장 되바라진 욕망이다.

 

 그리고 제라늄을 ‘붉은 젊은 남성’으로 본 것은 자연스럽다. 사실 어느 꽃은 음기만을 줄기차게 방사하기 때문에 집안에 두면 곤란한 것도 있다. 가령 안개꽃이 그러한데 생화뿐 아니라 말려서 거꾸로 걸어두는 것도 양기를 흡수하므로 피해야 한다고 들었다.

 

 ‘딸들이 물뿌리개를 들고 달려가 물을 주는’ 행위 역시 양기의 항진에 도움을 주어 적절하다. 음이 강한 시인의 집을 그만큼 밝게 비추는 것도 흔치는 않으리라. 그래서 음양의 조화가 요긴하긴 하나보다. 일본 온천지역의 대욕탕은 그것을 위해 하루씩 번갈아가며 남탕과 여탕을 교환한다니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