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꽁치와 시 / 박기섭

모든 2 2018. 6. 17. 15:43

 

꽁치와 시 / 박기섭

 

포장집 낡은 석쇠를 발갛게 달구어 놓고

마른 비린내 속에 앙상히 발기는 잔뼈

일테면 시란 또 그런 것, 낱낱이 발기는 잔뼈

 

-가령 꽃이 피기 전 짧은 한때의 침묵을

-혹은 외롭고 춥고 고요한 불의 극점을

-무수한 압정에 박혀 출렁거리는 비애를

 

갓 딴 소주병을 정수리에 들이부어도

미망의 유리잔 속에 말갛게 고이는 주정(酒精)

일테면 시란 또 그런 것, 쓸쓸히 고이는 주정(酒精)

 

- 시조집 ‘비단 헝겊’ 중에서

 

 

  밥상 위 잘 굽힌 꽁치는 그저 밥의 찬이나 술의 안주일 뿐이다. 그러니 다른 생각 없이 젓가락으로 살을 발려 먹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시인은 꽁치의 살아생전 저 태평양 푸른 바다 깊숙이 자유롭게 유영하던 기억을 애써 발라낸다. ‘낱낱이 발기는 잔뼈’에서 고생대의 적막을 들쑤시기도 하고 꽁치의 운명을 떠올렸다가 그 비애를 건져내기도 한다.

 

 시는 그런 것이고 시인은 그런 인간들이다. 시인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면 삼라만상 그 모든 것에 촉수를 들이대는 탐구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잔뼈 갈라내듯 단지 시 한 편 건지려고 잔머리 굴리는 사람은 아니다. 한 편의 시에는 고스란히 시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가 담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없는 시인의 시를 읽을 때는 영 싱겁고 찝찝하다.

 

 20년 전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킨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일반인의 글쓰기도 그리 주문하는데 시인은 더 말해서 무엇 하랴. 진지한 열정, 몸을 내던지는 연소는 시인에게 필요 불가결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시인은 때로 시대의 산소량을 재는 계기이며, 밤에도 깨어있는 정신의 불침번이다.  

 

 서정시건 서사시건, 시의 제재가 자연이든 우주이든 그 침묵과 고독과 비애는 결국 인간 문제에 귀결되어 존재의 근원인 삶을 탐색하는 것 아니겠나. 그 과정에서 때로 반성적 사색의 시상을 전개할 때 ‘갓 딴 소주병을 정수리에 들이’붓기도 하는 것이다. 시는 정신의 배설물이면서 동시에 정신을 정화하는 기능을 갖지만 꽉 막혀 변비가 심해질 땐 도리 없이 스스로 흠뻑 적셔보는 것이다. 그때 말갛고 쓸쓸히 고이는 주정이 비록 지독한 비린내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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