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조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오는 어린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드리겠습니다
-13인 시집‘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 중에서 -
사람이란 원래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장 누워있으면 좀이 쑤셔 그만 일어서 걷고 싶다. 그 속물적 인간의 비틀림 과정 가운데 가장 유용한 도구로 존재하는 물건이 의자다. 사람은 바닥에 닿는 신체의 표피 면적이 넓을수록 편안하며 반대로 그 면적이 작을수록 불편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온종일 누워만 있으면 그게 어디 죽음이지 산목숨이겠는가. 그래서 앉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있어 최소한의 축복일 런지 모른다.
의자는 자리이며, 자리는 곧장 인사를 떠올린다. 직장인들이 가장 중하게 여기는 것은 승진(프로모션)과 이동(로테이션)이다. 이형기 시인은 ‘낙화’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앞선 세대의 겸허를 아름답게 그렸지만,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는 걸 뻔히 보고 알면서도 ‘세대교체’란 남의 일인양 팔짱을 끼고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는 이들을 더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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