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흙발/ 손남주

모든 2 2018. 6. 17. 14:59

 

 

흙발/ 손남주

 

변두리 비탈밭이 가뭄에 탄다

아프게 껍질을 깨는 씨앗,

물조로의 물도 목이 마르고

덮었던 마른 풀 걷어내자, 후끈

숨막히는 흙냄새 사이 노란 떡잎,

무거운 흙덩이 이고

푸른 뜻 굽히지 않는다

힘겨운 고개,

세상이 아무리 짓눌러 와도

하늘 보고 꼿꼿이 일어서는

흙발 지그시 디디고 섰다.

 

  - 시하늘 2008 가을호 -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거나 대수롭잖게 생각해서 그렇지 둘러보면 세상에는 경탄의 대상으로 가득하다. 인생은 매순간 그 경이로움을 만나는 여정이다. 겨울엔 식물이 다 죽은 듯 보이지만 씨앗으로 겨울을 나고, 뿌리로도 겨울을 견딘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삭정가지를 긁어모으기 위해 찾은 뒷산에서 문득 작고 푸른 것들이 발에 채이기도 하며, 말라죽어 뽑아내 버린 아파트 베란다의 난화분에서 배시시 푸른 기운으로 새끼가 올라 온 걸 볼 때도 있다.

 

 하물며 봄 가뭄 정도에 못 견딜 콩이나 수수는 없을 것이며, 아무리 목이 말랐다한들 스스로 ‘푸른 뜻’ 굽힐 만큼 연약한 생명체란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의지라기보다는 자연의 순연한 응답일 따름이 아닐까? 다만 애당초 세상이란 그리 연약하지도 말랑하지도 않기에 그만한 분량의 대응이 발휘될 뿐이다. 본능이라 해도 되겠고 응전을 통한 적응이라 해도 좋겠다. 노란떡잎이 보일 때면 숨 막히고 무거웠던 기억은 이미 유전자에 차곡히 입력된 상태.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지 않은 환경과 소망스럽지 못한 여건이 ‘힘겨운 고개’고, ‘세상이 아무리 짓눌러 와도’ ‘흙발 지그시 디디고’ 설 수 밖에 없음 아니랴. 때로 ‘희망’이란 이렇게 꼿꼿이 일어서서 견디는 것 말고 달리 품을 것이 어디 있으랴. 라즈니쉬가 그렇게 말했던가. “그대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태어나기 위해 그대가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대는 성장했다. 성장하기 위해 그대가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대는 숨을 쉰다. 숨쉬기 위해 그대가 어떤 노력을 하는가? 삶이 그자체로 흘러가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