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녹슨 못을 보았다. 나는/ 송진환

모든 2 2018. 5. 25. 23:03

 

녹슨 못을 보았다. 나는/ 송진환

 

길을 가다 문득

녹슨 못 하나 보았다

얼마나 거기 오래 있었을까

벌겋게 시간 속을 삭고 있다. 허리는 꺾인 채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게다

손바닥에 올려본 못은 세월의 부스러기들

비늘처럼 털어 내며

허리는 이내 부러질 듯하다

순간 나도 온몸의 살들 떨어져나가고

녹슨 못처럼 뼈만 앙상히 남는다

언젠가 저 못처럼 뼈마저 삭아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을

허우적거리며 오늘도 바삐

가고 있다

 

『조롱당하다』(2006, 만인사)중에서

 

 

 생각해 보라, 어느 누가 길을 가다 땅 속에 박힌 못을 볼 수 있는지. 그 못 앞에 잠시 멈춰 설 수 있는지. 그 못이 3,40년 뒤의 자기 몸처럼 느껴지겠는지. 그래서 동격인 녹슨 못 앞에서 잠깐 죽었다 다시 깨어날 수 있겠는지를.   

 

 시인이 아니면 도무지 어렵겠다. 시인이라도 시 쓰는 일로 무슨 양지를 꿈꾸거나 사유의 틀이 폼을 잡는 시에 길들여진 시인이라면 아무래도 거리가 멀겠다. 송진환 시인은 “물질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시를 쓴다는 게 소모적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시 쓰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으니 나는 시대 속에서 밀려난 인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를 써서 밥이나, 옷을 얻고자 한 것은 아니었으니 물질적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건 그리 서운할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리하여 시를 쓴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왜 시를 쓰는가?’ 라는 의문은 여전히 강하게 남는다. 사람의 생로병사를 골똘히 성찰하는 것, 희로애락을 진하게 느끼는 것, 인간의 넓이와 우주의 깊이를 헤아리는 것, 녹슨 못처럼 하잘 것 없는 물상 하나에도 애련의 감성을 띄워 보내는 것. 아무래도 시인은 세상을 그렇게 살다 가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신경림 시인이 그랬던가. ‘두리번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간다는 생각으로 시를 쓴다’고. 그대 시인이여, 세속의 부귀와 영광이 혹여 이솝우화의 신포도 일지언정 침 뱉어내지 말고 작심한대로 두리번거리며, 갈길 느릿느릿 걸어가라. 가다 돌쩌귀에 발 걸리면 주저앉았다 다시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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